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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Jul 25. 2024

10화 : 쥐 잡기 (ネズミ捕り, 네즈미토리)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0화)

차를 받고 첫 날에는 신나서 총 150km 정도의 거리를 드라이브 했었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시골 국도를 탔다.

삿포로에서부터 주위 논밭이 펼쳐진 토베츠 (当別)를 거쳐 신시노츠 (新篠津), 츠키가타 (月形), 비바이 (美唄)를 쭉 돌아 사택에 도착했다.


당시 첫 날 일본 운전 연습 겸 드라이브 끝내고 찍었던 사진 (2021년)



암행어사 출두


일본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순찰차가 있다.

첫번째로는 생김새가 팬더같다고 하여, '팬더' (パンダパトカー)라고 불리는 일반 경찰차와,

나머지 하나는 일반 차량으로 위장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암행 순찰차 (覆面パトカー, 복면 순찰차)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공식적으로 암행순찰차가 도입된다는 얘기가 오갔던 적이 있었지만,


이 일본의 암행 순찰차는 평소에는 일반 차량 같다가도,

신호 무시를 하거나 속도를 위반하는 경우에,

지붕에서 경광등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고 사이렌을 울려 차량을 단속하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차량 종류는 주로 고가의 세단들이 많았는데, 당시 주로 사용되었던 모델은

닛산 스카이라인 (우리나라에서는 인피니티 Q50으로 판매되었던 차량), 도요타 마크 X, 도요타 캠리, 도요타 크라운이었다. (스바루 WRX S4 모델도 간혹 있다곤 하는데 한번도 못봤다.)


저 모델들이 국도 맨 끝 차선에서 살살살 기어다닌다? 하면

과속을 하던 주위 차량들이 하나같이 조용히 지나다니는 마법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G70, G80 암행 순찰차와도 같은 개념이다.


도요타 크라운 암행 순찰차 (찍어둔 사진이 없어,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


특히 크라운 모델의 암행순찰차가 정말 많다보니, 크라운만 보면 다들 속도를 줄인다더라.


여담이지만 회사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일본 경찰은 과속한 선두 차량만 잡는다고 하여,

선두에서 과속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이때다 싶어 뒤에 같이 붙어서 과속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요타 크라운 팬더 순찰차 (2020년, 오키나와 여행 당시)
속도 위반으로 팬더 순찰차에 단속된 한 차량의 모습 (2021년)


아 참고로 난 한번도 교통 단속에 걸려본 적이 없다 ㅎ


오비스? 에비스 맥주는 아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도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사방팔방에 있다는 점이고,

홋카이도에는 몇 되지 않는 스팟에만 존재한다는 점이 달랐다.


회사 과장대리님과 출장을 갈 때 들었던 얘기이다.

“임군, 오비스 조심해. 이 구간에 오비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과속하면 벌금 물어.“


오비스? 그게 뭐지? 에비스 맥주는 들어봤어도 이건 내가 일본어 공부하면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표현이었다.


여쭤보니, 오비스 (オービス)는 고정식 과속 단속 카메라라고 하더라.

시속 50km 제한 구간이면 69km/h까지는 안 찍히고, 70km/h부터 찍히는 시스템으로 의외로 관대했다.


삿포로에는 설치된 구간이 굉장히 많았지만, 삿포로를 벗어나면 국도나 고속도로에 2-3 군데 있을 정도였다.


홋카이도의 오비스 설치 구간 지도


회사 사람들은 ‘레이더’라고 하는 기기를 차 안에 하나씩 설치해두었는데, 이건 뭐에 쓰는 물건인고 물어보니,

경찰들이 잠복해서 과속 단속을 할 때 나오는 전파를 감지하는 기기라더라. 그래서 레이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레이더가 ’방금 전방 500m 앞에 과속 단속 전파가 감지되었다’라는 안내를 해주면 사람들은 속도를 줄였다. 조금 지나가다보면, 저 멀리 숨어 있는 암행순찰차 한 대를 볼 수 있었다.


밤에는 국도에서 100km/h 이상 밟는 아저씨들도 정말 많았는데, 3대가 나란히 달리는 걸 보니 그 때는 아마 경찰 단속이 없던 모양이었다. (레이더 없이 저렇게 달렸다면 강철 심장이었겠지.)



섯!

일본의 교차로 앞에는 토마레 (止まれ)라고 써진 일시정지 표지판과 함께 정지선이 그어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이 앞에서 반드시 일시 정지 후 2-3초 간 좌우를 살피고 통과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그냥 통과하다가 경찰에 걸리면 9,000엔 (한화 82,000원 수준)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항상 골목길 교차로에서는 차들이 멈췄다가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일시정지 표지판 (止まれ, 토마레) (2021년)


에이 설마 경찰에 잡히겠어? 라는 마음으로 생각했다가 그냥 가버리다가는, 어디선가 암행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쫓아올지도 모른다.

(종종 봤다. 교차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잠복해 있다가 어기는 순간 바로 사이렌을 키고 쫓아간다.)


단속 장면 (빨간 차가 위반 차량이고, 하얀색 차가 암행순찰차이다.)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


토마레 (止まれ)는 우리나라로 치면 ‘멈춰!’ 같은 뉘앙스이다.


‘일시 정지’라고 표기된 우리나라 표지판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 이 토마레를 보고 예전 뉴스에서 봤던 북한의 ‘섯’이라는 강렬한 표지판이 떠올랐다.


북한의 직관적으로 '섯'이라고 표기한 정지 표지판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

도로 위쪽에 왠 화살표들이 있지?


눈이 정말 많이 오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과장님과 시공 관리 현장에 출장을 갔었는데,


우리가 달리던 도로 위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거기다가 도로 양 옆에는 지금까지 제설차들이 밀어놓은 눈이 쌓이고 쌓여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도로 끝이고 어디가 인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과장님께 여쭤봤다.

”혹시 이러다가 차가 도로 옆 논밭으로 빠져버릴수도 있지 않나요?“


과장님께서는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도로 위에 설치된 화살표 표지판을 가르키더라.

“왼쪽 오른쪽에 보이는 화살표가 도로 끝이라는걸 알려주는데,
눈 때문에 인도 올라타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할까봐 이걸 설치해둔거야.
이거 보고 운전하면 괜찮아.“


폭설, 눈보라가 몰아칠 때에는 이 화살표에 의존해서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


다른 지역은 모르겠는데, 홋카이도에는 시골길, 국도 할 것 없이 어딜가도 화살표 표지판이 항상 설치되어 있었다.


도로 끝임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해 놓은 화살표들 (2021년)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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