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별다른 약속이 없는 평온한 휴일의 아침.
모든것이 잠잠하고 게으른 잠도 탓할 사람없어 마음껏 침대에 뒹굴뒹굴 거려도 괜찮은데도
나이가 괜찮지 않아 허리가 아파 결국 침대를 벗어나 아침을 시작한다.
캡슐머신에 물을 채우고 새로산 에스프레소 캡슐을 장착 하고 .
새로운 커피는 어떤 맛과 향일까를 궁금해 하면서 레버를 내린다.
푹~ 바늘이 캡슐을 뚫는 소리.
작은 저항이 느껴지며 날카롭게 캡슐 속으로 바늘이 들어간다.
분명 그러해야 하는데 작은 저항이라는 이 부분을 건너뛰고 거의 아무런 걸리적 거림 없이 힘없이 푹 하고 레버가 내려갔다.
그 무저항이 이상해서 잠시 머뭇 거리다가 괜찮겠지 안일한 생각으로 뜨거운 물 공급 레버를 오른쪽으로 민다.
푸쉬쉬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던 머신은 캡슐 너머로 커피를 뿜어 낸다.
이런, 당황한 신음을 뱉어내고 얼른 정지 시키고 캡슐 서랍을 끄집어 낸다.
바늘이 정확하게 캡슐을 뚫고 지나간 구멍은 있다.
그렇지만 압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 한 것인지 바늘을 통해 흘러간 물이 캡슐을 지나 추출되지 못하고 캡슐 위로 흘러 넘쳐 버렸다.
테이블 보는 커피물로 시커멓게 물들고 바닥에 떨어지 커피물로 사방이 엉망이다.
테이블 보는 어차피 세척 할 때가 된 것 같고 바닥은 주말이니 청소도 할 겸 괜찮다.
거기까지는 그래 괜찮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지 못한 나는 괜찮지 않다.
구멍난 캡슐을 관찰해봐도 원인은 알 수 없다.
새로산 캡슐이 불량이었을까, 아님 오래된 머신이 느슨하고 낡아서 그런걸까?
하나 더 해 보자.
역시나 마찬가지로 커피는 정해진 통로로 추출되지 못 하고 사방으로 흐른다.
대비 하고 있던 탓에 얼른 작동을 멈춘다.
제대로 추출되지 못 한 커피였지만 방안은 커피향으로 가득하다.
마시지 않아도 마신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마 따끈하고 향긋한 커피를 입안에서 느끼고 싶다.
그리고 따근한 액체가 목구멍을 흘러 텅빈 위장안으로 흘러들어가 몸을 깨우는 그 느낌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다른 캡슐로 한번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기존의 커피캡슐을 넣고 쉼 호흡 한번을 하고 레버를 내린다,
푹~ 바늘이 캡슐을 뚫는 소리.
캡슐을 뚫는 바늘에 저항하는 힘이 손에 전달된다.
그래 바로 그 느낌.
이번에는 제대로 군 이라는 생각을 하고 뜨거운 물을 내리자
제대로 추출된 커피가 컵안으로 쏟아진다.
제대로 된 커피 향이 퍼진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주말의 아침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치우는 건 커피 한잔을 마신 뒤로 미루고 뜨겁게 내려진 커피를 들고 일인용 흔들의자에 가서 앉는다.
세번을 실패하고 겨우 내린 커피는 유별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커피다.
다만 따근하고 진한 향기가 아침을 깨워주는 느낌이 좋다.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 위에 놓는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긴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낮게 깔리는 첼로의 음율이 평화롭게 방안을 채워나간다.
평화로운 주말에 더 없이 훌륭한 배경음악으로 손색 없는 클랙식이다.
그 순간 뒷통수를 탁 때리는 무언가가 머리위에서 부터 쏟아져 내린다.
깜짝 놀람과 당황스러움, 이 방안에는 나 밖에 없는데 나의 휴일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이것은 무엇인가.
쏟아져 내린것은 침대 머리맡에 불안불안 하게 쌓여 있던 책들.
언제가 책장에 정리해서 넣어야지 하고 아무렇게나 쌓아뒀던 책들이 언제가의 시한이 끝내 찾아오지 않은 것을 원망하듯, 잊혀진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듯 와르르 쏟아져 내린것이다.
내 뒷통수를 치고 무릎위로 쏟아진 뒤 이제 한 모금 마신 커피를 세차게 밀어내서 컵안에 가득 고인 커피를 울컥 토해내게 했다.
울컥 쏟아진 커피는 먼저 침대를 덮치고 다음으로 떨어진 책들 위로도 쏟아진다.
망연자실.
머신에서 쏟아진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침대보에 까맣게 물든 커피는 점점이 스며 들면서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고 책 위에 흩어진 커피도 하드커버지 책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책등으로 흘러내려 책 안으로 파고 들려고 하고 있다.
마음이 급하다.
타올 한장을 얼른 가져와서 책을 닦아내고 침대보를 대충 한번 훔치고 커버를 벗겨낸다.
바닥에 책들은 엉망이고 엉망인 바닥을 미로처럼 돌아다니며 커피를 훔치다 전선에 걸려서 휘청, 그러다 그만 전선너머 선반위에 소모품을 두는 작은 상자를 건드려 그 마저 바닥에 나뒹궁다.
어이없어 헛웃음이난다.
잠잠하고 고요하던 주말 아침은 커피 한잔 때문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 못 된 것인가.
이 모든 혼란은 어디서 부터 시작된 것인가를 떠올려 보려 하지만 그런 순간의 조짐을 찾을 수 없다.
인생에도 예기치 못 한 순간들이 찾아 오곤 한다.
그런 순간에 마주했을때 실타래가 엉망으로 엉켜 버리는 그런 순간에 어디서 부터 잘못 된거야 하고 한 숨 쉬어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예상된 삶은 어디에도 없다.
잠잠하고 한가롭던 주말은 예상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만 일어난 사실을 바라보고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첫번째 캡슐에서의 실패에서 멈췄다면 지금의 상황까지는 안 되었을까, 언제가 책들을 책장에 정리해야지 했던 다짐을 어젯밤에라도 실행 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과 바닥을 닦고 침대보를 벗겨내고 청소기를 돌린다.
침대보는 애벌 빨래를 하고 세탁기에 넣는다.
이미 커피물이 배인 책은 어쩔 수 없다. 글을 읽지 못 할 만큼도 아니고 그저 커피물이 배였을 뿐이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주말은 게으름을 허용하지 않았을뿐 여전히 반나절이나 남았다.
커피를 새로 내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직 치워야 할 것 들도 반남아 남아 있다.
무심하게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끝나지 않았고 커피향은 무질서한 방안에 실패한 캡슐까지 더해져 향기 가득하다.
부엌부터 방안까지 사건 현장처럼 커피가 얼룩져 있는 주말 아침
솜씨 좋은 형사처럼 사건 현장을 정리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