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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Sep 25. 2024

남자 운동 요가6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중 하나는 

요가를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남자운동 요가"라는 제목을 달고 

운동의 시작에서부터 겪었던 작은 이야기들과

어설프지만 요가의 아사나에 대해서도 주제 넘게 정리해 보려고 했었다.


요가를 접하고 요가를 꾸준히 수련한지도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꾸준히 수련하고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 문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게

시간히 흐르며 수련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노력이 깊이 스며든 것이 

아니라 그저 표면을 스치듯, 말그대로 흐르는 시간위에 몸을 맡긴 무임 승차같은

시간의 축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시작했을때는 생소한 용어들과 낮설고 기괴한 동작들에 정신없이 따라가기 바빠

한 시간의 수업이 언제 끝났나 싶게 끝나 버렸고,

차츰 선생님의 지시어가 귀에 익을 무렵에는 동작 들을 따라가며 벅찼던 시간들에 

어느새 땀이 조로록 흘러 내린던 경험들은 놀랍기만 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벽하게 따라 갈 수도 없었지만 차츰 수업을 따라가면서 

요가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졌었다.

수업에서는 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없었기에 혼자서

자료들을 찾아보고 요기니들의 동작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찾아 보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동작들을 할 수 있지 라며

혼자서 낑낑대며 연습도 해봤었다.


유연함이 부족한 나의 몸은 삶에 대한 나의 자세 만큼이나 딱딱해서 

어느 동작 하나 쉬운게 없었다.

조급한 마음을 접고 쉬운 동작 부터 차근차근 완성 자세로 가기 위한 준비 동작들을

조금씩 더 깊이 있게 유지하고 늘려가며 하다 보면 나도 멋진 아사나의 한 동작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 이건 다시 태어나야 된다.'

홀로 탄식하기도 했다.

이번 생에는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좌절감이 가슴 깊이 고여,

마치 시간이 지나도 흐르지 않는 늪처럼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남자운동 요가"를 쓰기 시작할때가 

이런 좌절감의 깊은 늪에서 그저 시간 채우기만 하던 요가 수업중 문득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에는 안되는 구나 라는 탄식 후에 더 이상 요가는 재밌는 운동도 아니고

딱딱한 내 삶에 부족한 유연함을 가져다 줄 묘책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한낱 몸을 움직이는 기계적 습관이 되어 버린 시간이 나를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씁쓸한 자각이 그 순간에 나를 당혹시켰다.


"고통이 흘러가도록 호흡을 통해서 지켜보세요"

마침 선생님의 지시어가 깊은 깨달음의 말씀처럼 크게 들렸었다.

내가 멋진 아사나에 매료 되었던 건가,

아름다운 아사나를 흉내내기를 바랬었던 건가

타고난 뻣뻣한 나의 몸은 그런 동작들을 따라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 하는 나의 몸을,

시간이 흘러 이 만큼이면 적당하게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 기대감에 충족 되지 못 하는 것에 실망하고 좌절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해낼 수 없는 실망감이 요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어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은 그저 한 순간이고 

통증은 시간의 착실함 속에서 저 편으로 사라져 간다.

그것을 그저 지켜보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요가적인 실천이다.

아사나는 그저 그것을 이해하고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그 흐름에 순응하도록 돕는 도구일 뿐이다.


한참을 그런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그 뒤편의 중요한 가치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요가에 대한 기록을 해 보자 라는 생각이 그 순간 떠올랐고 나는 "남자 운동 요가"라는 제목을 달고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요가는 내게 있어 여전히 어렵다.

동작의 어려움 뿐 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실체도 더욱 어렵다.

그저 시간의 흐름속에서 나를 들여 다 보면서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 몸의 변화에 집중하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

더 이상 "남자 운동 요가"가 아니라

"내 삶의 운동 요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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