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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Oct 23. 2024

엄마의 사랑에 대한 진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첫 글…'깃털' 외할머니 추억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첫 글이 공개됐다. 지난 15일 오후 온라인 무크지인 '보풀' 3호에 한강의 글이 게시됐다. 제목은 '깃털'로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겼다. 글에서 한강은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뉴시스, 2024.10.16. 조수원 기자>>


10월 16일, 이 기사를 읽으며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라는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불안함이 안도감에게 자리를 내주고 공허함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엄마의 사랑에 대해 부족함과 서운함을 느꼈지만 요구하지 않았고 스스로 포기하며 살아왔다. 자식이 많은 우리 집의 아이들은 사랑해 주는 어른이 달랐다. 장남과 장녀는 할머니의 사랑을, 동생들은 엄마의 사랑을,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면서도 나는 엄마의 사랑이 항상 그리웠다. 엄마는 왜 나에게 무표정할까. 왜 다정하지 않을까. 나를 왜 좋아해 주지 않을까.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면 감당 못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집안일에 농사일에 시부모님 봉양에 자식 키우는 일에 바쁘시니 그러시겠지라며 혼자 명분을 세우고 나를 다독였다.


나에게 무심하다 느껴왔던 엄마가 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활짝 웃어주신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함빡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벌리고 빠른 걸음으로 마당에 내려오셔서 우리 아이들을 안아주신다. "우리 OO이, 우리 ㅁㅁ이 왔냐." 나에게 그렇게 웃어주신 적 없었던 엄마가 우리 아이들은 좋아하시네. 그래 다행이야. 우리 아이들이라도 사랑받으면 좋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생각으로 엄마의 사랑을 규정지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를 읽는 순간, 우리 엄마도?. 내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어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용돈 듬뿍 주신게 나를 향한 것?! 설레면서도 엄마의 진짜 마음은 어떠하신지 궁금함이 떠나지 않았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엄마에게 여쭤봤는데 그냥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런데도 너무 묻고 싶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괜찮다.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전화드렸다.

"엄마, 우리나라 작가가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

"그래. 한강 작가"

"그 작가가 최근에 외할머니에 대한 짧은 글을 발표했는데, 그 글에 [외할머니가 사랑이 담근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사랑이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라는 글귀가 있어. 엄마도 그래? 엄마도 우리  OO이, ㅁㅁ이 보면서 그렇게 활짝 웃어줄 때 나를 생각해?"

"당연하지. 내 자식이 제일 먼저지."

"그럼 OO이, ㅁㅁ이는 나를 대신해서 예쁨 받고 있는 건가?"

"내 자식이 젤 중하고,  손주들은 손주대로 이쁘다. 너희들 키울 때는 여유가 없어서 못해준 것이 많았는데 다 크고 나니까 지금은 풍족하다. 너도 나중에 알게 될 거다."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돈도 풍족하다 그래서 맘껏 웃어주고 사랑해 줄 수 있어서 나도 좋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계신 거였구나. 너무 좋았다. 행복하고 설레고 그동안의 서운함, 공허함, 외로움, 불안감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자취를 감췄다. 그랬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어. 그래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보면 알지 않는가. 우리 아이들 한시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 바쁘고 몸이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사랑을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엄마도 그러셨겠구나. 나보다 더 힘들게 사셨던 우리 엄마니까 그러셨겠구나. 지금도 우리 집 김치 떨어질 때쯤이면 어떻게 아시고 각종 김치와 반찬을 한가득 보내주시는 엄마. 당신 건강보다 내 건강을 더 걱정하는 엄마. 내가 독차지하고 있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오해해 왔구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날밤은 쉬이 잠들 수 없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랑고백을 받은 날이어서. 설레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고, 진정시키고 싶지도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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