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은 어디서 오는가

낙산사 템플스테이

by 리미

낙산사는 이전에 양양을 여행하며 잠깐 둘러보았던 적이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절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절하면 산이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촉박한 일정에 낙산사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없었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 1년 만에 템플스테이로 다시 낙산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첫 일정으로 스님과 모든 참가자들이 같이 절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낙산사는 큰 규모만큼 템플스테이 참가자도 많았다. 약 한 시간 정도 스님과 같이 절을 둘러보며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첫날 이 일정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전부 자유시간이었다.


관광객이 없는 한적한 낙산사의 저녁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낮에 활기찼던 모습은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가득했다. 이런 여유로움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절답게 경치가 좋았고 덕분에 젊은 나이 때의 참가자가 많이 보였다. 풍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국 사찰들의 템플스테이가 해마다 인기라고 한다. 사람들이 절을 많이 찾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절에는 애교 많은 고양이들도 살고 있었다.

절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도시 고양이들은 항상 주위를 살피느라 예민해져 있고, 다가가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절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마음이 여유로워서일까,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애교를 부렸다.


절에 사는 고양이들과 달리 난 늘 무언가를 쫓으며 살아갔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쳇바퀴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내 취미는 하나씩 늘어났다.


그러던 나에게 다가와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대화도 잘 통했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 사이에 회사에서 일은 많아졌고 의욕 넘치는 상사의 기대에 부흥하기 힘들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했을 일도 머리가 멈춰버려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즐겁게 하던 취미생활도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걸 놓으면 영영 쳇바퀴 속에 갇혀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 상대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가지고 나에게 왔다. 하지만 간신히 버티던 내 불은 내 장작을 다 태우고도 불씨만 남은 상태였다. 불씨만 남은 나에게는 그 불이 따뜻하기도 했지만 너무 뜨거워 데일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내 불씨를 살리려고 애쓰는 동안 상대의 불꽃은 커졌다 작아지며 요동쳤고 나는 그걸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상대는 연기만 남긴 채 떠나갔다.


그렇게 상대가 떠난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을 겪고 나니 내게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는 장작과 같았다.

충분히 쌓아두어야 내 불을 지키며 상대에게도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작을 이미 다 써버린 뒤였고 꺼지려 하는 내 불씨도 지키기 어려운 상태였다. 절에 사는 고양이들처럼 상대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려면 나에게 쓰고도 장작이 남을 정도로 내가 먼저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놓을 수 없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기다려줄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내가 내 안의 장작을 쌓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