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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상담에 1,000만 원을 쓰고 배운 것 -1편

배우자의 단점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by 글로업

부부상담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상담받고도 변화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이었다.


무. 변. 화.


이것 만큼 두렵고 소름 돋는 일은 없을 듯했다.




상담 1시간 30분에 15만 원 정도 하는


부부상담 비용을 내고도


변화가 없다면 투자 실패!

(눈물)






그러다 이 문구가 퍼뜩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주 같기도....)

(응?!)

(ㅋ)


그렇게 난 도박 아닌 도박을 시작했다.

(변화냐 무변화냐 그것이 문제로다.)







상담센터 원장님은 우리의 시댁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부부상담을 바로 받기보다는


개인상담을 먼저 진행할 것을 요구하셨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불만과 생각을


먼저 개인적으로 풀어 가는 과정이었다.


갈등의 실타래가 어디서 꼬였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사실 말이 거창한 개인 상담이었지,


결론은 하소연 타임!


"하... 이런 특이한 시댁이 있을까요?"


"코로나에도 신생아 있는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고


날이면 날마다 사진에 영상에 페이스톡까지 요구하시는..."


(시댁 이야기라면 자다가 툭 쳐도)


(랩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바로 나다.)


(주부 래퍼 신인 탄생)


(쏴리 질러~~)




나는 시댁 스트레스와 남편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을 쏟아내기 바빴고,


남편 또한 개인상담에서 불만을 내뿜었을 것이다.

(불만 폭주족 2인)

(누가 누가 잘하나~)

(꿀잼)





개인상담을 한창 진행하던 어느 날,


원장님이 드디어 부부상담을 제안하셨다.


"글로업님, 이제 부부상담을 받아도 좋을 것 같네요."

(와우!! 올 것이 왔구나...)



"부상담 전에 각자 해 와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배우자의 장점 100가지 써오기!"

(롸?!)

(잘못 들었습니다만?!!...)



최근 육아에 지쳐 환청이 왔나 했다.

(말이 되냐고....)

(배우자 장점 100가지라니)

(똥구멍까지 칭찬해야 할 판이네 이거...)

(대략 난감 ^ㅗ^)



원장님은 내 당황한 표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척을 하고 싶으신 건지


웃음 지으며 말을 이어가셨다.


"99가지도 안되고, 100가지를 다 채워오셔야 합니다."

(하....)

(과제 이탈 방지 선언)



단호하게 과제를 내주시는 원장님을 바라만 보다


뭐라 말도 못 한 채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저벅저벅)

(털썩)






집에 오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배우자의 장점 100개라....




펼쳐놓은 노트에


의미 없는 선들만 끄적끄적 하게 되고


정작 채워야 할 번호들 옆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여백의 미 사랑함 ^ㅗ^)

(쿨럭)



시댁 스트레스가 심할 때,


중간 역할은커녕 시댁 편에서 나를 공격했던 사람.


출산 후에 가장 힘든 시간에도 야근과 회식으로


나를 괴롭게 한 사람.




'내가 남편 장점을 100가지나 쓸 수 있을까'


하....


한숨이 바닥에 닿도록 깊이 내쉬고는


노트를 접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보 후퇴)

(호다닥)








다음 날, 고민은 여전히 이어졌고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적지 못할 것 같아서


빈칸을 하나씩 채워봤다.


1. 순한 성격의 소유자

2. 계산을 잘한다.

3.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청소한다.

4.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



하나씩 채우다 보니 나름 속도가 붙어서


쓸 만 해졌다.


99.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있다.

100. 설득하면 설득당해 준다.


마지막 한 톨까지 어찌어찌 쥐어짜서 100개를 채웠다.

(인간 승리)



그리고는 다시 한번 내가 쓴 배우자의 장점을


하나씩 읽어봤다.



1. 순한 성격의 소유자

-> 시댁에도 순해서 나를 방어해주지 못했다.


2. 계산을 잘한다.

-> 계산이 빨라서 약삭빠름

(응?!)

(이 계산이 그 계산은 아닌데...)

(후비적)


3.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청소한다.

-> 싱크대에 물때를 보고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


4.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 인간 안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 나 빼고 다 잘 챙긴다.

(화가 마이 나네?!)

(ㅋㅋ)


.......


99.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있다.

-> 지금까지는 별로 책임감이 없었고,

지금이라고 딱히 책임감이 큰 건 아님 주의.


100. 설득하면 설득당해준다.

-> 그냥 못 이긴 척하는 거잖아....






100가지 장점을 다 읽고 나니


묘하게 다 단점을 돌려 까기 한 것 같아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과제를 가지고 상담실에 다시 마주 앉은 우리 부부.


원장님이 각자 100가지 적어온 것 중에


10개씩을 뽑아서 읽어보라 하셨다.



다른 사람 앞에서 배우자 장점 10개 읽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내 장점 10가지를 읊는 순간,


이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런 부분을 장점으로 느끼는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




더 웃긴 건 평소에 서로가 단점이라고 읊던 것이


결국 장점으로 나타난다는 점!



예를 들어 회식이나 야근을 자주 하는 남편은


일하느라 가정 돌보는 데에 소홀하다고 느껴졌지만


승진도 빠르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나는 예민한 만큼 세심하고


걱정이 많은 만큼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올레!)

(축배를 들라~~!!)


결국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부상담을 마치고 나니


단점도 단점으로만 보지 않는 효과가 생겨났다.


조금 더 배우자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달까?

(우웩)

(?)



그리고 이어서 원장님은 다음 시간에는


부부대화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다고 하셨고,




이 상담에서 우리는 평소 대화의 방식을


갈아엎고, 새로운 대화방식을 연습하며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데...



- 다음 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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