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대화의 방법을 익혀가는 우리 부부
"아니~ 그게 아니라!!!"
대화 연습이 됐다고 생각한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남편은 시댁 이야기가 나오자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바로 변명모드로 따지기 시작했다.
"네가 분만실에서 출혈량 많다고
지켜보라고 하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냥 엄마 전화가 와서 받았었던 거야.
축하해주시고 싶다 하셔서
별생각 없이 전화 바꿔준 거야!!!"
반성의 기운 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출산 직후에 수혈을 해야 할 수도 있어서
출혈량을 지켜보자고 하는 산모한테
무슨 축하 전화냐고!!!"
"내가 시댁에 감정이 얼마나 좋다고
시어머니랑 시이모 축하전화를
분만실에서 받아야만 하는 거냐고!!!"
평소 조곤조곤 말을 하던 나였지만,
상담을 받고 나서 변화가 됐나 하는 기쁨도 잠시
다시 원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득음할 기세)
한참을 대화로 실랑이를 하다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편도 나도 상담에서 배운 내용 회상 중)
(..............)
정적을 깨고 남편이 먼저 입을 뗐다.
"우리 대화는 왜 이모양일까?"
(내 말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네가 잘 못 된 것 같은데 왜 그걸 나한테 묻니...)
또 한 번의 정적타임이 찾아왔다.
(..........)
(절간 같은 조용함)
"우리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
다시 한번 이 주제로 대화해보자."
(응??!!)
약간 당황은 했지만
서로 마음속에 가시가 돋친 채로
이 대화를 마무리하면 다음 날까지도
영향을 줄 것 같았기에
상한 감정을 애써 짓누르며 알겠다고 답했다.
대화를 다시 하자고는 했지만
또 다투게 될까 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대화의 문제점이 떠올랐다.
"근데 내 생각에는 말이야...
우리가 서로 싸우는 이유가
그 '상황'에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아..."
"이미 그 상황은 끝이 나서 돌이킬 수 없고,
내가 대화를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것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결국은 내가 그 상황에서 느낀 감정에 대해
공감받고 싶은 거거든.
그런데 서로 그 상황에서 누가 잘못했는지
왜 그랬는지에 대해 따지기 시작을 하니까
대화로 풀어보려던 그 대화에서
더 큰 상처를 입는 것 같아."
(캬~~ 나 좀 멋있다.)
(나르시시스트의 향기 물씬)
(쿨럭)
남편도 그 말에 동의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내 감정에 공감받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그때 왜 그랬는지 잘잘못을 따지는 질문을 했었고,
그러면 당신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해서
대화가 산으로 갔던 것 같아."
(캬 ~ 논리 정연하고요~)
(나르시시스트 재등장)
남편도 그 말에 동의했다.
남편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걸 본 나는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나 분만실에서 출혈량 지켜보고 있을 때,
어머님이랑 시이모 전화받았던 거....
너무 힘들었어....
몸도 힘든데 마음이 더 힘들더라고..."
"그랬겠다..."
"솔직히 너무 서운했어.
분만실 안에서 전화 걸어서 바꿔달라도 한 사람도,
그걸 바꿔준 사람도.
그냥 내가 너무 힘든 상황이라
축하라기보다는 배려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어."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내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순간 내 안에 있던 감정이 터지면서
소리 내어 울기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울다가 뭔가 이상해서 옆을 보니
남편이 같이 울고 있었다.
(????)
(아니 넌 왜 우냐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힘껏 끌어 마시며
남편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이 나서 우는 거야?"
울음을 멈추고 남편도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그냥 내가 너무 못했던 것 같아서..."
"뭘 못해?"
"네가 상담센터에 간 게
우리 집(시댁)이랑 단절을 하지 않으려고 간 거였다는 걸
상담 중간에 알게 됐는데,
그러고도 내가 중간 역할을 못해서
결국 단절을 하게 됐잖아.....
내가 너무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부. 모. 님.
부모님이라는 말에 지금 내 감정 읽어주는 것보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게 크게 들려서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솔직히 시댁과 단절하기로 한 기간이 끝나서
시댁을 다시 만났을 때
당신이 다시 부모님 편에 설까봐도 두려워.
지금 내가 쏟아붓는 이 시간이
아무 의미 없어질까 봐.
솔직히 너무 무섭고 걱정되고 그래."
(남편: 끄덕끄덕)
(???)
가만히 생각에 잠긴 남편.
정적이 잠깐 흐르고 남편이 나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있잖아...
나도 지금 현재 우리 가족을 지키려고 상담도 받고,
원가족(시댁)의 구조가 잘못 됐다는 것도 알게 돼서
결국 단절하는 기간을 갖게 됐는데...
내가 그 시간이 끝난다고 해서
너랑 아이들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
너랑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반드시 지켜야지."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남편 이야기를 듣던 나는
고개를 들어 남편 얼굴을 바라봤다.
남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속이 다 시원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답을 듣는 순간이었기에.
나는 시댁과의 단절의 시간에도
남편은 여전히 시댁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불안했고,
다시 시댁과 만났을 때
우리 가족이 깨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해왔다.
시댁과 우리 가족 사이에서 여전히 중심을 못 잡고
남편리 비틀거리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 공포 걱정 근심 여러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 날의 대화로 남편이 중심을 잡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 과제를 마치고
상담센터에 다시 마주 앉았다.
빙그레 웃으시며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100점짜리 과제를 해오셨네요."
"대화에서 상황에 대한 비난과 탓 빼기!"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를 찾아오셨네요!!"
원장님의 미소만큼이나 기분 좋은 상담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왜 그전에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았는지,
앞으로도 계속 염두에 둬야 할 것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원장님은 책상 옆에 두셨던 물건 하나를
책상 가운데로 끌어다 놓으며 말씀하셨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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