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대화로 풀어가고 싶은 주제를 적어오라는 과제.
노란 식탁등 아래에서
노트에 과제를 적으려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사실 이 과제를 받은 건 부부상담이 80%~90%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이었다.
그간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남편에 대한 이해를 쌓아갔기에
감정적으로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꼬여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듯,
꼭 남편과의 대화가 아니어도
원장님이 시댁 구조 분석,
남편의 기질 분석 등을 해 줄 때면
내가 보지 못하던 면을 조금씩 보게 되면서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부분이
하나씩 녹는 기분이었다.
(사르르)
부부상담을 받으면
남편에 대한 감정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고,
상담을 받는 내내 조금씩 변화하는 우리 모습에
실제 감정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배우자와 대화로 풀고 싶은 주제를 적어오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이다.
(불길)
감정이 좋아졌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남편에 대해 서운한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화가 난다 화가 나...)
남편과 대화 나누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그간 시댁과의 일들과 중간역할을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 섞인 감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분이었다.
하아....
긴 한숨만 내 쉬다 끝내 젖은 노트를 덮고
그 위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두덩이가 모기에 물린 듯 빨갛게 부풀어있었다.
아무 죄도 없는 노트에
괜히 화풀이라도 하듯
노트를 서재방 책꽂이 한편에
던지듯이 꽂아 넣고는
침대로 향했다.
(울고 잤더니 꿀잠 잤음 주의 ^^;;;)
다음 날.
이성을 찾고 다시 노트를 펼쳤다.
여전히 고민은 됐지만,
그냥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1. 결혼하고 시댁으로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다.
2. 나와 시댁 사이에서 시댁을 우선했던 부분에 대해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다.
3. 출산 후,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중간역할을 못한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
(온통 시댁 이슈 ^^;;;)
(물론 막판에는 남편 개인에 대한 것도 적음)
하나씩 적다 보니 요구사항이 폭발할 것 같아서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순식간에 대화 주제 10개 넘게 적음^ㅗ^)
노트를 덮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로 갔다.
쏴아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내 마음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대화 주제만 적었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부부상담 효과 <부부상담 과제 효과?)
(쿨럭)
다시 상담센터에 간 우리 부부.
원장님은 우리에게 전에 했던 결혼 만족도 검사
결과를 알려주셨다.
결과: 불만족
(ㅋㅋㅋㅋㅋ)
상담을 어느 정도 진행을 했었음에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었음에도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저렇게 불만족이라고 말씀하시진 않으셨지만,
대문자 T인 나에게는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을 들을 때마다
불. 만. 족.
불! 만! 족!
이렇게 들렸다.
(메아리 수준^ㅗ^)
원장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음... 사실 결과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저도 그렇습니다만....)
"두 분이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보기 좋기도 했고,
감정적인 부분도 많이 좋아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담을 시작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에
이게 맞나 싶었어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
남편도 나도 할 말을 잃고
허공만 바라봤다.
부부상담을 받아온 시간과 돈이
내 눈앞에서 퍼드득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상담비!!!!)
상담이 거의 막바지로 흘러간 상황에서
청천벽력 같은 결과였다.
원장님은 뭔가 결심하셨다는 듯,
우리에게 마지막 히든카드를
알려주시겠다고 얘기했다.
부부상담의 마무리 단계에서 맞은 위기상황.
우리 부부는 과연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됐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