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YWCA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동네에서 재활용 쓰레기 정리를 하는 일손을 구하였어요.
한 달에 열번, 오전 한 나절 일하고 얼마를 준다는 것이었지요.
딱 다섯달만 고용되는 단기 일자리라 더욱 놓치기 아까운 자리였나봐요.
귀밝은 데다가 일중독자, 엄마에겐 꿀같은 기회였던 거예요.
궂은 일도 마다 않을 텐테, 하물며 동네 회관앞 종이박스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니.
늙그막에 웬 횡재인가 싶은가봐요.
"영감! 나 돈 벌러 가유~."
시덥지 않은 농담을 섞어 가면서 신이나서 회관을 향해 나서는 것이었어요.
YWCA에서 받은 챙 넓은 모자와 노란 색 조끼를 갖춰 입고서요.
조끼의 등허리에 큼지막하게 박힌 YWCA.
이름 석자를 겨우 쓰는 엄마에게 영어 알파벳은 있으나마나 그림인가 하였겠고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날, 교육을 받으러 가는 아침이었어요.
" 교육끝나면 서명을 하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름은 쓰실 수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는 손 끝으로 유리깔린 식탁위에다 본인의 이름을 천천히 그려 보시는 것이었어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한 자 한자 또박 또박이요.
그럴 땐 더 잘 쓰도록 고쳐드리거나 더 반듯하게 쓰도록 훈수를 두지 않아요.
그냥 엄마가 쓰는 모양을 가만 가만히 지켜볼 뿐이에요.
"내 이름은 쓸 수 있으니께, 근디 많이 배운 사람들은 나한티 잘한다, 용타 하더라."
"엄마 또래에 이름을 쓸 수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어둡던 시대 탓이기도 했고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맞장구를 쳐드렸어요.
"워메, 진짜 못 배운 것들은 흉을 보던디. 진짜 잘 배운 사람들은 다르더라, 너 맹키로."
엄마는 이름을 쓸 때마다 진땀을 흘리십니다.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이었어요.
마치 수능입시를 보듯이 덜덜 떨면서 아주 천천히 이름을 그리십니다.
엄마의 이름 세 글자가 비뚤비뚤하고 자음 모음이 저만치 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은 흔한 일이었어요.
처음 한글을 배우는 초등학생 아니 요즘엔 유치원 아이들처럼요.
얼마나 힘들게 이름을 쓰고 있는 줄 알기에 격려의 말 밖에 나오지 않았고요.
"아이구! 잘 쓰셨네. 고생하셨어요."
평생 책과 멀고 글과 먼 삶을 살아오신 엄마에요.
한글로 이름을 쓸 줄 알고 더듬 더듬 한글을 읽으실 줄 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몰라요.
(배움이 짧은 것은 엄마의 탓이 아닌 일,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지요)
평생 부엌 아니면 논밭뿐인 엄마의 세상이고요.
세 시간 교육을 받고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오셨길래 이름은 어찌 쓰고 오셨을까싶어 말을 꺼내보았어요.
"잉, 그거, 젊은이가 내 손을 잡고 같이 써 주드라. 참 친절하더구만.
거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댜."
"누군지 몰라도 그 친철한 사람, 고맙네요."
"근디 교육을 받고도 얼마를 받는 지도 몰러, 첫 달 받아 봐야 알것지."
용돈벌이를 한다면서 소풍가기 전날 아이처럼 기뻐하셔놓고는 당장 월급을 모른다니 순간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요. 내노라하는 큰 단체에서 하는 일이니 똑같이 주겠지요."
부담스럽지 않은 소소한 일거리로 노인복지차원으로 실행되는 사업인줄 빤히 알 것 같았어요.
동네 친한 할머니 두분과 셋이 한 팀으로 운영된다니 재미와 용돈까지 엄마에겐 더없이 좋은 활동이에요.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몰라도 좋구나 하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