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대수명이 100세라고 가정했을 때 (요즘은 120세 시대라지만 100세도 충분히 길다. 정말 100세까지 살까 봐 심히 걱정스럽다) 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그 말이 아직은 젊은 세대에 비벼볼 수 있는 나이라는 의미 같아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다. 객관적으로도 사실 나는 젊은이에 속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20살 때 몇 살이냐는 어른들의 물음에 스무 살이라 대답하면 그들은 캬~감탄사를 내뱉으며 좋은 나이라고 연신 얘기했다. 빙그레 미소 짓는 내 속마음은 스무 살이 뭐 어쨌다고 다들 하나같이 저런 반응일까? 물음표였는데 요즘은 내가 그러고 있다. 심지어 상대방의 서른이라는 대답에도 연신 부럽다를 연발한다. 아!! 그들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밝고 싱그럽고 빛나고 영롱하다. 그들의 풋풋하고 아직은 순수하고 조금은 여유 있는 그 젊음이 참 부럽고 또 눈부시다. 나의 그때 그 시절은 어땠을까? 젊음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그 황금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어깨는 굽어 있고 얼굴에는 온갖 시름을 다 짊어지고 자신감 없이 주눅 들어 살았던 그때.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넌 지금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예쁘니 꼭 행복하게 지내라고 안아주고 싶다.
불과 몇 년 전까지의 나는 중년의 여성들 그리고 노년의 여성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의 혐오감마저 가지고 있었달까? 그들의 촌스럽고 이상한 옷도 싫었고 주름지고 늙은 얼굴도 싫었다. 우악스럽고 무례하고 창피를 모르는 말투도 싫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 눈엔 그저 늙음 그 자체로 보였다. 언젠가 나도 겪어야 될 그 나이가 나에겐 평생 오지 않는다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했다. 흡사 그들의 늙음이 나에게 전염될 것만 같아 그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랑 띠동갑보다 한 살 더 많았던 회사 선배에게 다른 사람이 물었던 적이 있다. 나이 들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생각해 보니 참 무례한 질문이다. 그때 그 선배는 [나도 젊었을 때는 나이 들면 무슨 재미로 사나 생각했었다? 근데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그 재미가 또 있더라고. 난 지금이 더 재밌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이 든 자의 변명일 뿐이라고 치부했으나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 말의 뜻이 와닿는다. 대신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이제는 할머니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우리 엄마 세대 혹은 그 위 세대들은 과연 어떤 재미로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아직 4,50대도 젊다. 그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 위 세대는 어떨까? 더 주름지고 할머니란 호칭이 더 익숙하고 몸은 더 아파지고 살아갈 날보다 지나온 세월이 많은 그녀들... 길에서 수없이 지나치는 중년과 노년의 여성들... 같이 운동하고 인사 나누는 나이 든 여성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나이 듦이 옮을세라 관심도 가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주름진 얼굴과 목, 손에서 난 그녀들의 소녀 같음과 천진난만함을 보고 놀랬다. 나보다 순수하고 순진한 그녀들이 조금은 사랑스럽기도 했다. 어떨 때는 그들이 농후함으로 나를 감싸주고 토닥여주고 위로해 준다. 가식 없고 담백하고 진실한 그 모습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내가 그녀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도 한참 어린 아래 세대에게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고 가까이하고 싶은 인생 선배이자 언니가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회사 선배의 말마따나 인생은 정말 그 나이대의 재미가 따로 있는 게 맞는 말이었다. 비록 지금은 아이돌 노래에 흥이 나지 않지만 새로운 장르의 음악 혹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음악에 관한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아이들이 해맑은 웃음소리가 얼마나 눈물 나도록 예쁜지 알게 되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소박한 밥 한 끼가 뷔페 못지않게 맛있다. 미세먼지 없는 날, 내 발에 잘 맞게 변형된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걷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비 오는 날의 풀과 나무냄새가 장미보다 더 향기롭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와 둘은 알아도 열까지는 미처 내다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즐기지 못했던 삶의 소박한 즐거움이다.
그때 내가 싫어했던 그녀들은 아마 지금 풍성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겠지? 그 당시에 이유 없이 혐오감을 표현한 걸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들의 남은 삶이 지금보다 10배, 100배, 1000배 더 빛나길 바란다. 그와 더불어 앞으로의 나의 삶도 계속 계속 향기로워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