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는 얘기 by 조규찬

by 인아

출산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삶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2019년도 가을, 아이는 갓 6개월을 넘겨 돌도 되지 않았다. 자유로운 나 홀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13년간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늦잠도 자고 낮잠도 자며 온종일 집순이로 지냈다. 육아가 체질인가 봐 생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무력감과 산후 우울증이 조금씩 몰려왔다. 아직 엄마 소리도 못하는 아이와 24시간 붙어있으며 대화다운 대화는 나눠본 지 오래였고 남편이 바쁠수록 우리 사이의 대화는 아이에 대한 얘기가 고작이었다. 입에 밥 숟가락이 들어가는 때와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주는 짧은 시간 외에 내 입술은 열릴 기회조차 없었다. 누군가와의 소통이 몹시 그리웠고 가끔 주말에 시장에 나가 장을 볼 때면 물건 값을 계산하며 사장님과 한마디라도 하려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기도 했다. 사람은 그립고 감정은 메마르고 육체와 정신은 지쳐가고 있을 무렵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정확히 그 노래를 언제쯤 내가 처음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노래의 발매일은 1997년 8월 19일이지만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좋아하던 건 H.O.T와 젝스키스였지 그 노래의 가수는 아니었다. 아마도 회사에 다니던 무렵에 들었을 테니 발매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그 노래를 처음 듣게 되었다.

조규찬의 [믿어지지 않는 얘기].

그룹 조트리오의 막내 조규찬은 가수 조규만의 동생으로 더 익숙했다. 조규만 역시 내가 좋아했던 가수라기보다는 드라마 OST로 나온 [다 줄거야]의 노래가 유명했기에 알게 된 가수였다. 사실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하고는 나이대도 다르고 노래 스타일도 달랐기에 관심이 없기도 했다. 아마도 우연한 기회에 그 노래를 듣게 되었고 언니에게 가수와 제목을 물어봐서 한동안 출퇴근길에 그 노래를 들으며 다닌 기억이 난다. 나는 한번 어떤 노래에 꽂히면 몇 날 며칠 동안 그 노래 한곡만 무한반복으로 재생하며 듣는 습관이 있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도 한동안 그렇게 듣고 다녔던 곡이었을 거다. 그리고 아마 또 다른 노래가 내 귀에 꽂히자마자 금세 가수와 제목을 잊어버렸겠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은 저녁 마지막 수유를 하고 방안의 창문을 암막 블라인드로 꽁꽁 가린 채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폰에 다운로드한 어플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핸드폰 불빛에 아이가 깰세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어폰을 꽂고 듣는 일 그 하나였다. 그때만이 아이에서 벗어나 내가 유일하게 홀로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라디오를 듣던 중 조규찬의 믿어지지 않는 얘기가 선곡되어 흘러나왔다. 노래 전주를 듣는 순간 어? 하는 추임새는 조규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아! 하고 바뀌었다. 내가 이 노래를 잊고 있었구나. 이 노래 한 곡으로 가로등 불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새까만 방에 누워있는 아이 엄마는 20대 초중반 시절 지하철을 타고 길고 긴 출퇴근을 하던 젊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눈을 감고 듣는 [믿어지지 않는 얘기]는 나를 20대의 한 지점으로 툭 떨어뜨려 놓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또르르 흘려버렸다. 그 시절의 나와 조우한 듯한 묘한 기분이 반갑기도 아련하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 내가 생각했던 것들, 느끼던 것들, 꿈꿨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감성적이고 생생한 사람이었는데 육아에 지쳐 무색무취의 무생물이 된 것만 같아서 속상했다. 한동안 아이를 재우고 유튜브에서 조규찬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TV에 잘 나오지 않아서 몰랐는데 아침 9시에 라디오도 진행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신곡도 발표하며 나름 원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조규찬이 진행하는 라디오도 듣고 방송에 사연을 보내기도 하며 조금씩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재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노래로 하여금 다시 내 음악 취향에 맞는 다른 곡들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고, 아주 가끔씩 보는 드라마 요약본이나 웹툰에도 재미를 붙였다. 작지만 묵직한 아이를 안아 들 떼는 허리와 손목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서는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주파수를 맞췄다. 우연히 다시 듣게 된 반가운 예전 노래 한 곡이 나에게 작은 생기를 되찾아주었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예전의 나를 조금씩 더듬어가는 순간의 시작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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