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반짝반짝 빛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두 조각 나는 듯한 충격이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인 내가 아직 빛나지 않는 것은 적절한 때를 아직 만나지 못한 거라 여겼다. 마치 신데렐라가 호박마차 요정을 만나기 전에 재투성이였을 때처럼, 라푼젤이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높은 탑에 갇혀만 있던 것처럼 빨강머리 앤이 초록지붕의 집으로 가기 전 고아였던 것처럼 극적인 순간이 언젠가 나에게 오리라 믿었다. 더 어렸던 시절엔 주변을 보며 그런 생각도 했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인데 주인공이 아닌 저들이 참 불쌍하다고. 그렇게 맹랑한 생각을 지닌 채로 살다가 오히려 내가 엑스트라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날 작고 작게 부수어 주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없는 채로 그렇게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는 마지막 반전이라던가 백마 탄 왕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비웃을까 봐 그런 희망을 꽁꽁 보자기에 싸서 숨겨놓았다. 그래도 아직 그런 희망이 조금이나마 있을 때는 내가 진흙탕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었다.
내가 그저 수많은 모래알갱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과 타협하면서 나는 전보다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었고 삶은 지리멸렬할 뿐이었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갖지도 못했고 가뜩이나 바닥난 자존감 주머니는 곧잘 구멍이 뚫리곤 했다. 타인을 믿지 못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나에게 남는 것은 사람에게 받은 배신과 상처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혹하기만 했다. 항상 반복되는 패턴은 나조차도 나 자신을 점점 더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딱딱한 껍질을 둘러쓰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그러면 그럴수록 외로워져만 갔다. 딱딱한 껍질 안의 여린 속살은 상처에 짓무르고 썩어갔다. 그 안의 숨겨진 나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해 줄 사람을 기다리에 급급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알아가고 사랑해줘야 한다고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메마르고 고독한 시간이 평생 동안 이어진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금세 불안해졌고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 말하고 해가 지면 곧 그 말을 후회하며 두려워했다.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부터 거울 보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이 즐거워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함께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고 지구는 나를 위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앞으로의 세상을 잘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세상을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었고 사랑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내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만으로 가득한 삶에서 출산과 육아 그리고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졌던 시간들은 낙하산도 없이 비행기에서 스카이 다이빙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보호장비 하나 없이 아래로 하강하면서 나는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아니,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른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 졌고 인사를 나누자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그들이 겪어 온 시간들이 궁금해졌고 그들의 역사가 알고 싶었다. 누군가를 한 박자씩 천천히 알아가는 일에서 소박한 온기를 느꼈다. 함께 마주 보고 앉아 따뜻한 밥 한 끼와 차 한 잔을 나누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 상대라는 책을 읽어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채우고 싶어졌다. 이미 늦어 버린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나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싶어졌다. 이대로 나의 시간을 가만히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욕구를 가만가만 들여다보았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이를 먹이고 보살피는 일은 분명히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다. 단연코 내가 세상에 태어나 행해왔던 일중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그것으로 인하여 발생했고 앞으로도 발생할 괴로움을 감수한다 해도 말이다.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내가 찾아왔다.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는 내가 있다. 조금 더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는 내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깊이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 반면에 누군가와 함께 소통하는 시간도 즐기게 되었다. 타인과 연대하며 그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또 그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내 모습이 좋았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에게 내가 괜찮아 보일수록 더더욱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에게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남에게 친절해지자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도 친절해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에게만 후하고 나에게는 야박한 사람이고 싶지도 않고 그 반대이기도 싫다.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내 마음을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어떤 마음이 날 그렇게 되고 싶도록 이끌었을까?
바로 아이였다. 나의 아이. 아이를 낳고 키워가며 말도 행동도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출산 이전에도 내가 이른바 쌈닭이나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될 위인도 못했다. 소심했고 새가슴이었고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상황에서도 내 입장 한번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참 맘에 들지 않았다. 괜히 오지랖 부리다가 귀찮거나 성가신 일에 엮이는 것도 싫었다. 주변에 관심을 주지도 않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세상이 나에게 차갑게 굴고 야박할수록 나도 세상에게 냉정해졌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맞서기였다. 업보라던가 권선징악을 믿을 만큼 순진할 나이는 지났다. 그러나 남들이 업보를 피한다고 해서 나까지 그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나눠준다면, 다시 내가 되돌려 받지 못하더라도 내 아이에게 선한 마음이 도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한 영향력을 베풀고 그것이 돌고 돌아 언젠가 내 아이에게 온기로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내가 여태껏 느꼈던 냉정하고 야박한 세상이 최소한 내 아이에겐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상처 주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고,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진심으로 전달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으로 때마다 헌혈을 하기도 하고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에 등록하기도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도 내 아이의 마음속에 항상 자랑스러운 엄마로 남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일매일 조금씩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