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보내주세요
우리 부서는 출근을 하면 주차마다 번갈아 가면서 담당하는 분야가 다르다. 한 달을 주기로 업무가 돌아가서, 쉽게 설명하면 1주 차는 몸이 힘든 주, 2주 차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주간이다. 그리고 셋째 주는 아주 한가로운 주, 마지막 넷째 주는 반반의 확률로 바쁠 수도 있는 주이다. 게다가 6주에 한 번 부서원 앞에서 일주일간 아침에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발표 준비는 일요일에 2시간 정도, 평일 내내 아침에 40분씩 일찍 와서 준비해야 하는 주간이다. 한주 내내 어질어질한 상태로 생활하기 때문에 업무 주간 담당을 잘 확인하고 개인 스케줄을 짜서 체력을 분배해야 한다. 스케줄이 잘못 서로 물려버리면 주 7일제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주기를 반복하는 스케줄을 보면서 미리 기대하거나 절망하면서 내 미래를 대충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다. 이번 주는 몸이 힘든 주와 발표주간이 겹쳤다. 일하다가 일하기 싫으면 SNS를 통해 동물 사진을 보는데 그럼 조금 많이 기분이 나아진다. 가볍게는 고양이, 강아지부터 시작해서 멀리 사는 판다, 웜뱃, 코알라도 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벨루가 돌고래까지 간다. 이번주는 스케줄이 극악이어서 그런지 동물사진을 봐도 회복이 불가능했다. 이번 주를 지내면서 학교 다닐 때 지겹게 들었던 회복탄력성이 생각났다.
회복 탄력성이란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자신을 적절하게 제어하여 성공적인 적응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살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한다. 학생 때 회복 탄력성이란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사실 힘든 일 하면서 자기 기분까지 관리해서 열심히 버티는 거다. 타격이 있는데 회복까지 하라니 정말 욕심이 많은 단어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면 물론 좋겠지만 지금 당장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그저 단순하게 출근했으니까 일을 해야 하고 그냥 힘들면 힘을 내면 된다. 졸리면 잠을 깨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하튼 오늘은 스트레스를 견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앞에서 말한 방법은 미래의 희망과 기운을 당겨서 쓰는 방법인데 최근에 너무 많이 당겨서 쓴 거 같아서 희망 파산에 이르렀다. 나는 희망 불량자.. 그렇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 없다.
기운을 내는 두 번째 시도는 간식 먹기다. 하지만 오늘은 편의점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므로 실패. 세 번째는 친구한테 연락하기이지만 연락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실패.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중간에 시간이 잠깐 나서 친구한테 구조신호를 보냈다. “살려줘. 희망 파산이야.”라고 보내니 친구는 깔깔 웃으면서 “8월 말이라서 그러니 9월이면 희망이 새롭게 충전될 거야”라고 했다. 희망은 백지수표래나.. 이러면서 아르바이트하는 자기 사진을 보내줬는데 웃겨서 희망이 충전됐다. 어떤 방법으로 희망이 회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효과가 꽤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대충 힘을 내서 남은 일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물론 내 덕에 빨리 끝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그동안 근무시간을 넘겨서 적립해 둔 시간을 털어서 1시간 반 일찍 퇴근했다. 퇴근했는데 아직 하늘이 너무 대낮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윈도우 xp 배경화면 같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집으로 갔다. 이번 주 나도 이제 종료해야겠다. 다음 주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주간이다. 모처럼 빨리 퇴근해서 긴 주말을 얻었으니 다음 주는 앞으로 3일간 만이라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