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맑은 하늘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 세상의 슬픔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몸을 태워 노을이 되고 그것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나는 추억해 그 사람을 추억해(...)
슬픈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날은 아름다운 노을이 타고 있었어
그러니까 혼자서 저녁 노을에게 '너 아름답구나'라고 말해보거나 하면
어딘가 가슴이 꽉 조여와서 울기도 하는 거야"
- Radwimps, <내 색깔의 하늘(俺色スカイ)>
독일에 온 뒤로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태양의 궤적에 한층 더 민감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이곳에선 여름과 겨울의 일조량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겨울이면 해가 출근 이후에 뜨고 퇴근 전에 진다), 고층건물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하늘이 더 잘 보이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해가 뜨고 지기 전후 20분간의 블루아워, 해가 뜨고 진 직후 40분간의 골든아워. 하늘이 온갖 색조와 명도로 물드는 그 시간을 나 역시 너무나 사랑하여 매일같이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바람이 술렁이며 마음의 껍질에 균열이 가는 시각. 다가올 아침과 밤이 두려울 때면 연약한 마음의 균열에 불안이 스미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붉은 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예외없이 경이로 물든다. 어린왕자는 슬플 때면 노을이 보고 싶어진다고 했지만 어찌 슬플 때 뿐이랴.
아래는 그 붉은 빛을 기록한 단상들이다.
"밤, 미래, 길다, 무서워, 꿈꾸다, 끝
내일, 빛, 닫다, 창문 속의 세계
밤하늘, 올려다보면, 그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내일, 오다, 내일을 찾는 망상"
- 키노코테이코쿠, <You outside my window>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십이삼 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어떤 화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 갔고 저녁에 근처 피자 하우스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피자를 씹으며 기적처럼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내 손이며 접시며 테이블이며 눈이 닿는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것처럼 새빨갰다. 그 압도적인 저녁노을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 씨를 떠올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어쩌면 태양은, 밤과 낮 동안 쌓인 각종 더러움과 찌꺼기를 한차례 불살라버림으로써 세계가 다시금 새로운 시간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수 억, 수십 억 년을 변함없이,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