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유별나게 좋아했고 키우고 싶어했다. 견종도감 같은 것을 사서 달달 외울 듯이 읽고, 사촌들이 놀러왔을 때도 고양이에 관한 책만 읽다가 기껏 놀러왔는데 이게 뭐냐고 불평을 들은 적도 있다. 심지어 할머니께서 유괴 방지 대책으로 "누가 과자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아라"가 아닌 "누가 강아지 보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아라"라는 말씀을 하셨을 정도다. 그 외에도 햄스터 같은 소동물을 집에 몰래 들여왔다가 부모님께 들켜서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마저 모조리 끊기는 벌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몇 달 뒤 또 햄스터를 들여와서 또 용돈이 끊기고...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내가 왜 그렇게 간절하게 반려동물을 원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외로웠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더더욱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아이가 외로울 정도로 부모님이 바쁘신데, 동물까지 들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의 비염도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절대 반려동물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은 너무나 합당한 처사였다. 애가 둘인데다 맞벌이 하느라고 부부는 매일 밤 8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토요일까지 일하는데 거기다 털 달린 동물까지 있으면... 아찔하다.
어린 시절의 간절한 바람이 터무니없는 요구였다는 것은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스물두 살 때부터 해외생활을 시작했는데, 내 한 몸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입 하나를 더 늘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반려동물을 허락하는 기숙사가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어린시절 부모님께 아무리 혼나도 꺾이지 않았던 소망은 어른이 되어 생활이라는 것을 직접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는 관계 없는 다른 세계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다른 세계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날이 찾아왔다. 때는 작년 5월 말, 생명으로 충만한 봄이 절정인 시기였다. 나는 마침내 기숙사가 아닌 일반 월세에서 살아가는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직장인으로서의 생활도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교제 중이던 독일인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
누군가 바람을 피운 것도 폭력을 쓴 것도 아닌, 그저 '성격 차이'에 불과한 이별 사유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했다. 정신과 상담을 고민할 정도로 분노했고, 연애란 것 자체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자신과 나의 '성격 차이'를 나의 일방적 '정신적 결함'으로 치부해버린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는 연애에 몇 번이고 실패를 해도 '그래도 다음 만나는 사람은 다르겠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던 나였는데, 그 어처구니 없는 이별 이후로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 절망감 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살 팔자인가 보다 싶었고, 간과 쓸개를 다 내줄 것 같이 굴다가도 어느 순간 서늘하게 뒤돌아서 등에 칼을 꽂아대는 인간들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도 혼자는 싫었다. 무언가를 돌보고 싶었고 보살피고 싶었다.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의 숙원, 냥집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치하고 섣부른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평생 반려동물을 원했다 한들, 기폭제가 된 것은 이별이었으니까. 그렇게 궁상을 떨어놓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은 나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독일에는 길고양이가 없다. 떠돌이 개들도 없다. 길에서 보이는 고양이나 개들은 모두 누군가의 소유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유기견, 유기묘들의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독일이 가장 잘하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냥줍'으로 집사가 될 수 없고, 가정분양을 받거나 보호소를 통해 입양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지역 동물 보호소를 알아보았으나, 당시 내 수입과 집의 크기는 보호소에서 규정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불가했다. 자연히 가정분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몇 군데 연락을 해 본 결과 가장 빨리 답장이 온 곳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분명 갈 때까지만 해도 반드시 여기에서 분양을 받겠다는 마음은 없었고, 몇 군데 더 방문해보고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생명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입양 예약을 해버린 것은, 당연하다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이 때가 이 아이가 태어나고 6주차 되던 때였다. 독일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생후 12주부터 분양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후 6주를 더 기다려 나는 이후 로즈라 불리게 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공식적으로 고양이 집사가 된 날이 2023년 8월 12일이었다. 즉, 어제 8월 12일자로 나는 나의 고양이 로즈와 함께한 지 정확히 만 일 년이 된 것이다.
이 조그맣고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하고 깜찍하고 가끔은 발칙하기도 한 생명체는 내 생활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만약 지금의 내가 2년 전의 나에게 "넌 앞으로 매일매일 청소기를 돌리며 살게 된단다"라는 말을 한다면 "미쳤구나"라는 반응을 듣게 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실인 걸. 고양이 털은 정말 많이 빠지고... 아주 많이 빠지고... 상상 이상으로 많이 빠진다. 그리고 언제나 내 기상 시간 20분 전부터 미리 울어대며 우다다를 하는 로즈 덕분에 사실상 알람이 필요가 없다. 문제는 주말에도 주중 시간으로 깨운다는 것.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고양이라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목청껏 울어제끼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좋은 집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더 좋은 집사에게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보드라운 회색 털뭉치가 내 가슴팍에 올라와 각종 기묘한 자세로 잠이 들고, 배를 내보이며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내가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을 때 살며시 다가와 촉촉한 코를 문지르며 말없는 위로를 보내줄 때면, 가슴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차오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맹렬한 보호본능이 끓어오른다.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최소한 이 아이 하나 먹이고 재울 능력은 잃지 않겠다는 각오 같은 것도.
내게 와줘서 고마워. 나와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 잘 살아보자, 나의 고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