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진은 왜 꺼내 놨어?”
작은언니가 물었다.
“잉, 거시기 맹글라고.”
설날이라고 여동생을 뺀 네 남매가 친정에 모였다. 남동생과 사위들은 거실에서 술을 마셨고, 딸 셋은 시댁에서 줄곧 하던 전을 또 부치고 있었다. 명태전에 밀가루를 묻히던 작은언니가 화장실에 다녀오다 거실장 위에 놓인 사진을 발견했다.
“하하, 이 사각턱 돼지는 누구냐?”
작은언니는 웃다 주저앉기까지 했다.
“뭔데?”
큰언니가 뒤집개를 든 채 일어섰고, 나도 뒤따라 나섰다.
“와마, 선남이 아녀? 진짜 뚱뚱했네.”
큰언니도 웃었다.
아버지 환갑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출산 직전 팔십삼 킬로그램, 그때의 나였다.
꽉 끼는 진녹색 저고리와 다홍 치마. 머리를 하나로 묶어 턱살이 도드라져 보였다.
“둘째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거 아녀.”
나는 바로 변명했다.
언니들과 나는 거실에 주저앉아 사진을 넘겼다. 그중 한 장을 들어 보이며 내가 말했다.
“여기 박 여사님은 아예 특수 분장을 했구먼.”
사진 속 엄마는 연분홍 한복을 입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때 신랑 측은 푸른 계열 한복 입어야 한다고 내가 말렸잖아.”
“맞다. 엄마 화장까지 해서 동네 어르신들이 몰라보고 지나쳤잖아.”
엄마는 민망한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다 대뜸 내게 말했다.
“산남이, 니는 한 개밖에 없는 남동상 결혼식인디 한복도 지 결혼식 때 것 입고 왔냐.”
“멀쩡한 한복 있는데 왜 또 맞춰. 다 겉치레잖아.”
“겉치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니는 예의도 몰러?”
“어차피 사각턱이라 올린 머리도 안 어울려.”
엄마는 혀를 찼다.
“급허다. 니 얼굴이 어찌서. 점쟁이가 사진 보고 잘만 산다 혔는디.”
설날이 지나고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엄마는 눈이 침침하다며 안성 외갓집에 갔다.
며칠 쉰다던 일정은 몇 주로 늘어났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 부부가 엄마를 보러 갔다.
“언니, 엄마가 오빠를 못 알아봐.”
나는 여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딸아.”
엄마는 양손을 흔들며 웃었다.
“엄마, 왜 밤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우리 딸이 사 준 썬구리 껴야 잘 보여.”
그러다 엄마는 갑자기 운전 중인 제부를 가리켰다.
“근디 누구요? 이 사람이 나 잡아가요!”
여동생이 엄마를 말리다 통화가 끊겼다.
엄마는 급성 종양이었다. 수술 뒤 며칠은 잘 보인다며 웃었다. 두 달 뒤 식물인간이 되었다. 병실 문을 열자 발에 뜸을 뜨고 누운 엄마가 보였다.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닦고 양치를 해 주었다.
“엄마, 기억나? 작년 이맘때 물놀이 갔었잖아.”
대답은 없었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두개골, 움푹 팬 광대. 장미 향 로션을 발랐는데도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엄마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가 왜 이렇게 됐지. 머리 뒤를 만지니 욕창이었다. 몇 년 전, 엄마는 딸기가 흐리게 보인다고 했다. 나는 정밀검사를 시키지 않았다.
“자꾸 울지 마세요. 다 느껴요.”
간병인의 말에도 나는 “죄송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숨 쉬기도 힘든 팔월이었다. 엄마의 가슴이 기계에 맞춰 오르내렸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봉아, 엄마가 이상해.”
남동생은 정장 차림으로 달려왔다. 마지막 인사에도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 점잖은 옷을 입고 왔다. 언젠가 엄마는 나를 사진관으로 데려갔다. 보자기에서 영정사진을 꺼내 보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사는 다시 찍자고 했다. 엄마는 남동생 결혼식 사진으로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 말대로 해 달라고 사진사에게 부탁했다.
설날에 만들겠다던 ‘거시기’는 그 사진이었다. 장례식장 입구 화면 속에서 엄마는 수줍게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사진 보니 어머님 참 고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