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박인숙 씨

엄마의 입담, 그 추임새

by 이선남

어르신들은 박인숙 씨를 “떠벌아”라고 부른다. 어디서나 튀어나오는 입담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박인숙 씨는 유독 속담을 즐겨 인용한다. 한 번은 아버지가 자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장판 바닥만 내려다봤다. 그때 주방에서 박인숙 씨가 큰소리로 혼잣말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집안을 다 흩뜨려 놓는당께!”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화는 그 말 한마디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또 한 번은 작은언니가 딸을 데리고 친정에 왔을 때다. 당시 작은언니 딸은 고3이었다. 조카와 여러 학과를 찾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마늘을 까던 박인숙 씨가 한마디 했다.

“여기저기 껄떡대지 말고, 첨에 한다던 과로 한 우물만 파라잉!”


박인숙 씨는 대명사를 유난히 많이 쓴다.

“거시기, 그 뭐냐, 그 양반 있잖여. 거기 웃거티 사는 그 옛날 이장 말이여.”

그러고는 말끝마다 꼭 확인한다.

“뭔 소린지 몰러?”

하루는 초저녁에 내게 전화를 걸어 황당한 사건을 말해 준다고 했다.

“웃거티 거시기 삼촌 있잖여? 그 양반이 기르는 소가 새끼를 낳았잖여. 근디 소 새끼가 집을 나와서는, 그 뭐냐 우리 딸기밭 있잖여. 뭔 소린지 몰러?”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나는 얼른 대답했다.

“알아요. 그래서요?”

“하필 니 아부지가 전동차를 타고 비니루를 가지러 갔잖여. 그리서 니 아부지 오능가 내다봤더니, 시상에 거기로 막 달려오는 거시여. 그리서 내가 니 아부지 보고 ‘시영 아부지! 시영 아부지!’ 막 불렀는디.”

그러고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말했다.

“아고, 가만있어 봐라잉. 나 개동이 밥 줘야는디.”

그러곤 전화를 끊어 버렸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박인숙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날 박인숙 씨는 개동이는커녕 아버지 밥도 안 주고 마을회관에 갔다고 한다. 목적은 십 원짜리 화투였다.


박인숙 씨 입담의 가장 큰 강점은 추임새다. 몇십 년 전, 여동생을 만나러 친구가 친정집에 온 적이 있다. 결혼을 일찍 한 그 친구는 사연이 참 많았다. 감정이 격해진 친구는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어릴 때 흑흑… 가난해서 흐흐흑… 그게 싫어서 결혼을 일찍 했는데 흐엉, 흐어엉….”

박인숙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아이고, 어찌까잉.”
“와마.”
“잉.”
“그라제.”
“글지.”
“시상에나.”

한참을 토해낸 여동생의 친구는 한결 가벼운 얼굴로 돌아갔다. 친구가 가자마자 박인숙 씨가 내게 물었다.

“자, 뭐라냐? 시방 굉장히 힘들구먼.”

박인숙 씨는 귀가 잘 안 들린다. 나도 친구가 울면서 한 말은 “흐엉, 흐어엉”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 건, 순전히 박인숙 씨 덕분이었다.


박인숙 씨는 자식들을 부를 때 ‘ㄹ’ 받침을 유난히 강조한다. 남동생을 부를 때는 “아더얼~” 딸들을 부를 때는 “따아알~”이라고 길게 늘인다.

요전 추석, 제일 먼저 도착한 남동생에게 박인숙 씨는 말했다.

“아더얼~ 내 말 좀 들어 봐라잉. 느그 아부지가 얼매나 복장 터지게 허는지.”

세 번째로 온 여동생을 보며 또 말했다.

“따아알~ 내 말 좀 들어 봐라잉. 느그 아부지가 얼매나 승질나게 허냐면.”

꼴찌로 도착한 나에게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작은언니가 끼어들었다.

“엄마, 입 안 아파?”

“잉? 뭔 소리여. 인자 입 뗐는디!”


아쉬운 건, 박인숙 씨의 이승 나이는 일흔여덟이고 저승 나이는 여섯 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뭔 소린지 몰러?” 그 말을 들을 수 없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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