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냐, 이남이냐?”
빨간 고무대야를 머리에 인 윗집 할머니가 물었다.
1982년 3월 3일 새벽이었다.
일곱 살인 나는 초등학생인 두 언니와 마을회관 국기 게양대 앞에 서 있었다. 애향단 깃발을 들고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 모이던 자리였다.
큰언니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작은언니도 따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두 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큰언니의 손이 날아왔다. 딱 소리와 함께 내 허리가 접혔다.
“아, 안녕하세요.”
“잉, 삼남이구먼. 누나들 따라 핵교 잘 댕겨 와라잉.”
‘누나들?’
할머니는 또 나를 남자아이로 착각했다. 심지어 엄마가 나를 낳을 때 산파로 받아 준 분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했던 말을 큰언니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고, 어쩐디야! 몸은 영락없이 아덜인디 있을 것이 없네.”
큰언니랑 작은언니는 쌍둥이처럼 연보라색 멜빵 주름치마를 입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무늬 없는 파란 체육복이다. 머리 모양도 달랐다. 언니들은 긴 생머리였지만 나는 엄마가 가위로 대충 자른 상고머리였다.
이게 다 7년 전 그 사건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1975년 추석이 지나고였다. 스님 한 분이 시주를 하러 우리 집에 왔다. 스님은 엄니의 배를 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이고, 장군감을 임신하셨군요.”
엄니는 놀랐다. 임신을 한 건 맞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상태였다. 기분이 좋아진 엄니는 흰쌀로 후하게 시주했다. 스님은 보답이라도 하듯 내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선녀도 아닌 선남이가 되었다.
다시 일곱 살의 새벽이다.
아이들이 다 모였는데 동갑내기 선옥이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작은언니가 물었다.
“오빠, 선옥이는?”
“아부지가 데려다 주신디야.”
그제야 나는 맨 앞줄에 섰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논길이 나왔다. 울퉁불퉁한 논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넘어졌다. 그때마다 큰언니 손이 뒤통수로 날아왔다.
석전유치원이 보이자 큰언니가 말했다.
“인자 희경이 니가 델다 주고 와.”
작은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언니 손을 잡았다.
“언니, 애덜 올 때까정……”
“짜증 나게 하지 마라.”
내 말을 싹둑 자른 작은언니가 길모퉁이로 사라졌다. 나는 느티나무 쪽으로 갔다. 내 키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나무였다. 양말을 벗고 양손에 퉤퉤 침을 뱉었다. 발바닥에도 침을 발랐다. 양손으로 나무를 끌어안고 두 발을 걸어 올렸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작은언니 뒷모습이 보였다. 큰길을 건너는 작은언니는 점점 작아졌다.
“얘, 너 누구니?”
임산부 옷을 입은 선생님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후드득 나무에서 내려왔다.
“엄마나 아빠는 안 오셨니?”
나는 고개만 흔들었다. 콧물이 흘러 옷소매로 닦았다. 누렇게 굳은 콧물이 소매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입학식인데 세수는 하고 왔어야지.”
선생님을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엄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선옥이도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왔다. 보라색 원피스에 빨간 구두까지 신고 왔다. 선옥이의 하얀 스타킹을 보니 내 양말이 생각났다. 나는 고무신을 신고 나무 아래에 던져진 흙 묻은 양말을 찾아 신었다. 소 눈깔처럼 눈이 큰 선옥이를 바라보고 있자 남자아이가 물었다.
“야, 너 저 여자아이 좋아하냐?”
유치원에 다니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인형 대신 구슬과 딱지로 놀았다.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나 치마도 없었다.
여러 날 친구들과 지낼수록 내가 남자 같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나는 토방에 철썩 주저앉았다. 댓돌 하나만 오르면 마루였는데 내 발은 딱 거기까지였다. 토방에 놓인 엄니 신발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니, 나는 왜 바지만 있어?”
“…….”
“글고, 입학식이랑 운동회 때 엄니는 왜 안 오고?”
“…….”
“인자 나도 치마 사줘! 선옥이 마냥 원피스도 사주라고!”
방문 사이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날 나는 악을 써 가며 분이 풀릴 때까지 울어댔다. 토방에 놓인 엄니 신발만 내 눈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43년이 지나 엄니와 대화할 수 없는 나는 언니들에게 물었다.
“언니, 나는 왜 엄니가 남자처럼 키웠을까?”
“뭐래, 니가 남자 같이 행동했지. 감나무며 국기 게양대며 지붕까지 다 올라 다니고, 말도 느린 것이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바지만 입겠다고 막 우기고.”
작은언니 말에 큰언니가 보탰다.
“글지, 노는 것도 꼭 돈 드는 구슬치기랑 딱지치기만 혔지.”
“근디, 나만 왜 머리가 짧았어?”
작은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야, 니 별명이 왜 짠남인지 몰러? 니가 하도 안 씻어서 머리에 이랑 서캐가 겁나 많았잖아. 긍게 머리를 짧게 자를 수밖에 없지.”
“하하, 난 왜 엄니가 나만 남자처럼 키운 것 같지?”
큰언니가 말했다.
“넌 오히려 니 맘대로 컸어.”
작은언니가 맞장구쳤다.
“맞어. 유치원도 너만 다녔잖여. 선옥이가 다닌다고 너도 가고 싶다고 혀서 보내주고, 수능 끝나고는 메리야스 공장 잘 다니다가 느닷없이 대학 가고 싶다고 때려치우고, 그날 아부지가 너한테 재떨이 던지고 너는 집 나간다고 난리 쳐서 엄마가 곗돈 오십만 원 미리 타서 보태 줬잖여.”
작은언니 말을 듣던 큰언니가 말했다.
“글도 엄마가 선남이 임신하고 할머니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혔어.”
줄줄이 딸을 낳다 보니 임신했다고 해도 친할머니는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스님이 했던 말을 듣고는 바로 보약을 지어 오셨다고 했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말했었다.
“고된 밭일을 하다가도 선남이 너 벤 배만 봐도 좋았어야.”
엄니는 언니들 때보다 더 많이 나온 배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니 할미도 선남이 임신하고 며늘아기라고 하더라.”
처음으로 친할머니에게 며느리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토방에서 울고 난 다음 날이 떠올랐다. 엄니가 내 왼쪽 가슴에 큰 옷핀으로 손수건을 달아 주던 모습이었다.
내가 시장에서 파란 체육복을 골랐을 때도, 나보다 두 배는 더 큰 짐자전거를 탄다고 우겼을 때도 엄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머시마, 가시나가 어딨서! 뭐시든 기양 혀!”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엄니가 있는 선산을 향해 소리쳤다.
“언니들 말이 맞지, 엄니?”
바람만 마당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