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례 집

담장 없는 집, 개동이, 그리고 엄마의 방식

by 이선남

“옴마, 첨 봤네. 무쉰 개새끼를 다시 델꼬 왔다냐!”

아랫집 아주머니가 혼잣말을 다 들리게 했다. 나는 남편을 힐끔 봤다. 삽으로 땅을 파고 있던 남편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야, 철망이 비틀어지잖아. 똑바로 잡으라고!”

남편의 큰소리에 내 손이 움찔했다. 친정집 텃밭에서 남편과 나는 개동이 집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아랫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몇 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이어 말했다.

“이장댁이 생각코 개장시한티 부탁혔다는고만. 개장시는 두 마리만 된다 혔는디, 사정사정해서 새끼까정 다 보냈다는고만.”

그때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던 윗동네 아주머니가 대꾸했다.
“무쉰 개장수여. 큰일 날 소리 허네. 개 보호소지.”
“그려, 그 보호해 주는 디!”

아랫집 아주머니 목소리가 커지며 눈까지 흘겼다.
‘일 났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던 일을 멈췄다. 남편도 어느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두 어르신의 눈이 우리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남편도 고개를 숙였다.


분명 우리는 집안 텃밭에 있었고, 두 어르신은 큰길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이렇게 대화가 가능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삼례 집에는 담장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담장 대신 짧게 자른 사철나무가 있고 대문은 없다. 정류장에 앉아 있노라면 누구든 본의 아니게 집 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된다.

원래부터 담장과 대문이 없던 건 아니다. 오래전 엄마는 자식들 손 하나 빌리지 않고 담장과 대문을 없앴다. 아버지가 걷지 못해 집 안에만 있던 때였다. 키도 작고 삐쩍 말랐던 엄마는 그 작은 체구로 길고 단단한 벽돌담을 혼자서 다 허물었다.
“무쉰 뼈가 걸어 다니는 것 가터.”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다시 윗동네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삼남이냐?”
내 이름을 고쳐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대신 대답했다.
“네, 셋째 딸 선남이에요.”

아랫집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동네서 개 키우는 집은 너네 집뿐이다!”
윗동네 아주머니도 거들었다.
“긍게, 사룟값은 또 얼매나 드는디!”

나는 남편 눈치를 살피며 낮은 소리로 답했다.
“네.”
남편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어미가 자꾸 일을 만들어서 제가 힘들어요.”
아랫집 아주머니가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엄마가 없던 일도 맹들어 혔어. 개새끼들을 막다 풀어놓고 키웠잖여.”


삼례 집은 친정집이다. 아니, 친정집이었다. 친할아버지가 여기서 태어났고, 아버지와 우리 오남매가 살았다. 결혼 전에도 직장에서 지치면 불쑥 찾아왔다. 한숨 자고 나면 기운이 돌아왔다. 막 결혼했을 때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던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럴 때면 큰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었다. 초저녁이 되면 일어나 다시 시댁으로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도 잘 못하는 큰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물었다.
“니 엄마, 아빠랑 싸웠냐?”


뜨거운 어느 여름날, 엄마가 돌아가셨다. 삼례 집에는 아버지와 개동이만 남았다. 개동이는 십 년 된 들개였다. 딸기밭에 처음 온 날부터 개동이 밥은 엄마가 챙겼다. 희한하게도 개동이는 아버지를 더 따랐다. 개동이가 새끼를 낳자, 간병인이던 이장댁은 개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버지가 새끼들 밥까지 챙기기란 무리였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확신에 찬 나는 수소문 끝에 개 보호소를 찾아냈다. 거기서 개동이와 남은 새끼 두 마리까지 데려왔다. 그렇게 개동이는 다시 삼례 집에서 아버지와 살게 됐다.


삼 년 뒤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아무도 삼례 집에 가지 않았다. 부모가 없는 집은 더 이상 친정집이 아니었다. 들개가 된 개동이는 집을 떠나 들로 돌아다녔다. 삼례 집은 폐가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쯤 지났을 무렵,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개동이가 윗집에 새끼를 낳은 것 같아.”
“개동이가 새끼를 낳았어? 몇 마리나?”
“우리가 삼례 집에 자주 갈 수도 없고,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해야지.”

말끝을 흐리는 남동생에게 나는 남편을 불렀다.
“여보, 개동이가 새끼를 낳았대. 어떻게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하냐고요!”

부모를 잃은 슬픔을 빌미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당직을 마치고 퇴근길에 철물점에 들러 철망과 덮개를 사 왔다.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삼례 집으로 갔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우리는 꼬불꼬불한 울타리를 완성했다.

울타리 안에 개동이 집을 들여놓고 있을 때 윗집 아저씨가 말했다.
“갱아지는 고추 말리는 비닐 안에 있다.”

나는 개동이를 불러 멸치죽을 주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날 만큼 삐쩍 마른 개동이는 허겁지겁 죽을 먹었다. 그동안 남편은 개동이 새끼들을 울타리 안으로 옮겼다. 그날 이후 남편은 개동이 밥을 주러 삼례에 자주 갔다.


어느 일요일 오후, 삼례 집에 온 나는 개동이 줄 명태죽을 끓였다. 죽을 식히는 동안 현관 앞 아버지 의자에 앉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버스정류장에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정겹게 들렸다. 해 질 무렵,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며 윗집 아주머니가 내려왔다.
“나 여기 앉아서 냉이 좀 캔다잉.”

윗집 아주머니는 텃밭에 털썩 주저앉아 냉이를 캐며 한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왜 이 집에는 담과 대문이 없어야 했는지, 엄마가 동네 사람들 먹거리라며 모종을 왜 그렇게 많이 심었는지, 개동이가 낮잠을 자던 자리가 누구에게 가장 잘 보이는 곳인지, 궂은날에도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아버지가 왜 온종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왜 요즘 자주 가요?”
남편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술김에 이렇게 말했다.
“꼬물꼬물 그 작은 것들이 움직이는데, 눈에 자꾸 밟히더라.”

삼례 집에 오기만 해도 누구든 친정엄마를 닮아 간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