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날과 달랐다. 쿵쿵거리는 마음에 눈이 떠졌다. 새벽 네 시였다. 일어난 김에 집안일을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이른 약속이 있었다. 대면하기는 어렵지만, 매일 보고 싶은 지인과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에 이십 분 먼저 도착했다. 잠시 뒤 코앞에 차가 멈추더니 스르르 창문이 내려갔다. 지인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유?”
능청스럽게 인사하는 내게 딴 사람이 화답했다.
“별일이쥬.”
뒷좌석을 보니 나를 보고, 그것도 두 사람이나 웃고 있었다. 손뼉을 치며 내가 말했다.
“어머나, 회장님하고 소장님까지 오셨네요. 참말로 별일이네유.”
서로 반가워하는 우리를 바라보며 지인이 말했다.
“오늘은 제가 쏩니다. 선남 샘, 멀리 나가도 괜찮아요?”
“암만요. 뭐시든 다 좋아유.”
금산사 입구에 다다르자 떨어지는 벚꽃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와, 벚꽃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네요.”
감탄하는 내 말에 소장님도 거들었다.
“그러네요. 오늘은 유난히 벚꽃이 많네요.”
그때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신 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가 끊겼다. 문득 ‘또 콧줄을 빼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에게 다시 전화하려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삼 주 전에도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아부지가 또 콧줄을 빼셨나 봐. 병원에 가볼 수 있어?”
“또? 누나 지금 일하고 있는데.”
“나도 고객 만나기로 했는데, 어떡하지?”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는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 연하 재활 중이라 콧줄 식사를 한다. 콧줄을 뺀 상황이라면 삽입 시술을 위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 예약이 꽉 차 있으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식사를 못 하게 된다. 그전 병원에서는 없던 일이 재활병원으로 옮긴 뒤 벌써 세 번째였다.
“그럼, 누나가 시간을 조정해 볼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남동생이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누나… 그리고 아부지 콧줄 시술할 때마다 앰뷸런스 비용까지 오십만 원 든다고 좀 말해 줘.”
“응, 누나가 따끔하게 말할게.”
따끔히가 아니라 뜨끔했다. 엄마 수술비와 병원비 대출도 아직 갚지 못했다. 삼 년 전부터 돈을 걷는 날이 잦아졌다. 결국 삼례 집을 팔자는 말까지 나왔다. 삼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매달 사백오십만 원씩 나가는 간병비부터 줄여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효사랑 재활병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병원 1층 접수처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침대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바디!”
호들갑을 떨며 양손을 흔들자 아버지도 왼손을 들어 답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아버지 왼쪽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부지, 음식 드시고 싶어서 콧줄 뺐어요?”
……
아버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간병인과 간호사를 힐끔 보며 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맞죠? 음식 드시고 싶은 거죠?”
아버지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앰뷸런스 안에 단둘이 있고 나서야 나는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부지, 조금만 기다려요. 코로나 곧 끝난대요. 그럼 예수병원 때처럼 매일 제가 병원에 갈 수 있어요.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거 싹 다 가져갈게요. 뭔 말인지 알죠?”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꼭 잡고 다시 물었다.
“아부지, 알았죠?”
그제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 예수병원에서는 의료진 몰래 ‘맛보기 놀이’를 했다. 뇌경색으로 말을 못 하는 아버지에게 음식을 보여 주며 이름을 불렀다.
“이거는 딸기 요거트, 이거는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라는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메리카노 당첨! 아, 해요.”
내가 따라 하자 아버지도 입을 벌렸다. 아메리카노 몇 방울을 혀에 떨어뜨렸다.
“아!”
그 ‘아’는 아버지가 아주 맛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식당에 도착했다. 유명한 맛집이라더니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예약했다는 지인의 말에 직원은 자리를 안내했다.
밥을 먹던 중 남동생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고개를 돌려 낮은 소리로 받았다.
“누나, 지금 어디야?”
“금산사 근처 식당. 왜?”
“아버지가 재활 받다가 신경질을 내셨어. 지금 예수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알았어. 예수병원으로 갈게.”
조심스럽게 일어서며 말했다.
“아버지 일로 지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택시 타고 갈게요.”
지인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택시 잡기 힘들어요. 같이 가요.”
회장님과 소장님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전주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남동생에게서 몇 번 더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내 차로 갈아탄 뒤에야 전화를 걸었다.
“누나, 그냥 효사랑병원으로 오면 돼. 몇 분이나 걸려?”
“예수병원이 아니고 효사랑으로? 아버지 화가 가라앉은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재활 받다 신경질 내셨다며.”
“누나, 아버지 재활 치료 중에 심정지 오셨어.”
“심정지가 뭔데? 왜 아버지가 심정지야? 얼마 전에 내가 봤는데, 왜? 아버지가 왜?”
전화받지 않은 것도, 잘못 들은 것도,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옮긴 것도 모두 나였다. 나는 동생에게 따져 물었다.
손이 떨려 운전할 수 없어 남편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실 문을 열자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을 끌어안았다. 아직 따뜻했다. 마치 잠든 것 같았다.
“아부지… 아버지… 죄송해요. 이제 와서… 아부지 여기 놓고 이제 와서 죄송해요.”
큰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나는 아버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