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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홍식과 김종화

단편 추리소설 <김홍륙 독다사건 전말기>

by 장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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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보시오, 소장! 일국의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저하께서 드실 음식이잖소!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군주가 다른 나라의 외교관저로 도망을 가 숨어 살아야 할 만큼 기강이 엉망이었지만, 독 검사마저 대강 할 지경은 아니었다오!


허나 전의와 돌아오신 외숙부께서는 털썩 주저앉으시더니 “다 끝났다!”고 하셨소.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토하시고서 말씀을 내뱉으시던 외숙부의 그 모습, 지금도 종종 꿈에서 보곤 한다오.


물론 코오피를 내온 궁녀들, 그걸 만들어 바친 서양 요리 담당 숙수인 공홍식이, 창고지기 김종화가 제일 먼저 용의자?

아, 용의자 맞지요, 소장?


그래요. 그러니까 용의자로 체포되어 조사받았지요.

그중 공홍식이와 김종화는 아라사어(俄羅斯語, 러시아어) 통역관이던 김홍륙이에게서 당시 돈으로 무려 천 원이라는 막대한 거금을 받고 일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는 얘긴 들었소.


아, 소장께서도 이 얘긴 잘 아셨구려.

하긴 소장께서도 이것 또한 잘 아시겠지만, 그 김홍륙이가 정말 많이 해먹었다는 건 그 시절 온 경성 사람들이 다 알던 사실이지.

고려가 망하고 500여 년간 나라의 문을 꽁꽁 닫고 산 데다, 인조 대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은 뒤로는 그나마 터 있던 중원과의 교류도 끊다시피 해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걸 영 몰랐으니 말이오.


뭐, 이것도 잘 아시겠지만, 김홍륙이가 말이오, 양반도 아니었잖소. 그런데도 그놈이 출세한 게 말이오, 함경도에서 관리들 몰래 국경을 넘나들며 아라사인들과 교류한 덕이 아니겠소.


마침 그놈 말고는 양인들의 사정은커녕, 말조차 할 줄 아는 인재가 조정에 없었으니까요! 다들 공자 왈, 맹자 왈 할 줄이나 알았지….


그래요,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소장.

조선에 인재가 없어 이 지경이 되었다지만, 근본도 모르는 놈을 황제 폐하께서 곁에 두고 쓰셔야 했다니….

그만큼 황제 폐하께서 정녕 제대로 된 자들을 깊이 믿지 못하셨다는 뜻이기도 하오!


하긴 나라를 위해 크게 쓰시려고 열심히 키웠던 인재들이 갑신년의 정변 때 그 대역죄인 김옥균이를 수괴로 하여 그 난리까지 일으켰으니….

내지 분들이야 김옥균이를 일본과 손을 잡고 조선을 개혁했을 큰 인물이자 아까운 인재라 하시지만…, 난 평생 중 대부분을 조선 사람으로 살아서 말이오.

김옥균이를 좋게 보진 못하겠소.


각설하고요, 사람이란 게 말이오, 소장께서도 똑똑히 기억하셔야 할 것인데, 일단 귀하게 쓰이면 그만큼 수신(修身: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함)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김홍륙이는 역시나 근본도 없이 자라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보지 못했을 테니 그런 걸 어이 알았겠소.


맞아요, 맞아, 소장!

김홍륙이 그놈이 바른 말하는 이를 뵙고 가르침을 청하기보다, 지처럼 재물과 아부에 눈이 먼 어중이떠중이를 가까이 한 덕이지요.


그래요! 욕심을 절제할 줄 몰라서 그놈들이 갖다 바치는 대로 다 받아 먹다보니, 어느새 제 분수마저 잊고 지가 황제 폐하 자신인 양 한 거지요.


물론 황제 폐하의 귀에도 그 얘기가 들어갔을 거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황제 폐하께서는 김옥균이에게 크게 데이신 이후로 당신 주변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셨다더군요.


그래요, 소장 말씀대로 의심이 많으셨지요.

그리하여 김홍륙이는 그러모은 재물을 다 뺏기고 흑산도로 유배를 당했소.

그래서 눈이 뒤집혀 황제 폐하를 암살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실토한 게 아니겠소.

그런데 어차피 고문을 받으면 다들 술술 불 테니, 곧 들통 날 범죄란 건 소장처럼 훌륭한 순사가 아니더라도 뻔히 알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왜 저질렀을까요?

더군다나 황실 분들을 시해하려다 들키면 삼족이 모두 거리에서 목이 뎅겅뎅겅 잘려나갈 걸 뻔히 알았을 텐데 말이오.


그래요, 다들 그러더군요.

사람이란 눈이 뒤집히면 바른 생각을 못 하게 된다고요.

소장께서도 긍정하시니 이 늙은이가 덧붙일 말이 없구려.

하지만 나는 말이오, 그렇기에 더더욱 김홍륙이가 그런 어마무시한 일을 저질렀을까 지금껏 의심해왔다오.


아, 왜 그런지는 곧 얘기해주겠소.

일단 왜 내가 이 잔을 구했는지부터 말해야 할 듯하오.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소?


아, 그렇군!

아무튼 곧 법부(法部) 사람들이 우리도 조사하려고 왔다오.

하지만 그 모든 게 일어나던 동안 제 할 일만 묵묵히 하던 우리를 법부 사람들이 털어서 나올 게 뭐가 있겠소.

허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부 사람들은 그 ‘단서’라는 게 될 만한 걸 털어보려고 악착같이 달달 볶더군요.

기가 막혀서 원!


아, 글쎄 그게 이치에 따라 따지고 보면 우리 잘못도 아니잖소!

부황(父皇)이 냄새만 맡으시고도 “독이다!”라고 외친 판에, 못난 황태자 저하께서는 맛도 제대로 안 보고 벌컥벌컥 들이켠 게 그 날벼락의 원인이었잖아요!

소장. 집안이 망할라치면 말이오, 못난 자손부터 태어나는 법이라던데….

일국의 황태자 저하가 남의 집 족보 말고는 관심도 없고, 여기서 말하기도 좀 무엄합니다만…, 심지어 고자라는 말도 있잖소.

오죽했으면 모후가 그 아들내미를 위해서 진령군이라는 엉터리 무녀를 고용해 치성까지 들이다가 임오년에는 군대가 폭동을 일으키고, 동학인가 남학인가 하는 농민 봉기까지 초래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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