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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 암살 미수 사건

단편 추리소설

by 장웅진 Feb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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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쓰시므니까?”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린 정복 차림에 장검을 찬 주재소(駐在所. 파출소) 소장 마루야마 다케시가 초가의 사립문 앞에 서 있었다.


다케시를 본 안주인은 나물이 담긴 소쿠리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곧 기겁을 한 건 아닌 척하려고 쏟아진 고구마순을 덥석덥석 집어 소쿠리에 담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 소장님께서 여긴 어인 일이신지?”


“이 태게 조흔 자기께서 계시다고 마루 드러서요.”


닷새 전에 내지(內地, 일본 본토)에서 왔다는 신임 소장께서 왕림하신 거다.

성질 고약한 조선인 통역도 안 달고 와서 ‘조선말’까지 해대시니 황송한 지경이다.


 그런데 ‘좋은 자기’라니? 도대체 무슨 트집을 잡을 속셈인가?


그러고 보니 마을에 후테이센진(不逞鮮人, 독립운동가)이라는 범죄자들이 있는지 직접 캐고 다니더라는 얘기를 어제 장에서 들었다.


혹시 내지인(內地人, 일본인)들 앞에서는 삐딱한 모습을 보이시는 시아버님을 ‘있지도 않은 보물을 감추고 있는 후테이센진’으로 몰아서 주재소 안에 있다는 손바닥만 한 옥에 가두려나?


“내 집에는 왜인 출입 금지요, 소장.”


무너질 듯한 툇마루에 나타난 누런 베저고리에 베잠방이 차림 노인의 말에, 여인은 한숨 돌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시아버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주시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다케시는 툇마루에 꼿꼿이 선 노인의 눈을 마주봤다.


읍내에 일본인 양의사(洋醫師)가 있지만 조선인들에게도 무시당하는 돌팔이일 뿐이다.

 그래서 약초를 잘 아는 이 노인 앞에서는 일본인 유지들도 꼬리를 내리기 일쑤라고 들었다.


 역시나 ‘신임 소장’의 말투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마 주사(主事) 사마, 나도 실은 초선 사람입니다. 나의 피의 이루부는 초선의 피입니다. 나의 시조가 무로쿠경장(文祿慶長)의 전쟁(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쇼군을 따라 내지로 정착한 도공입니다.”


“그렇소? 하하하.”


억지로 웃는 마 주사의 반응을 다케시는 ‘노인네가 마음의 문을 빼꼼히 연 것’으로 해석했다. 다케시는 사립문 안쪽으로 두어 걸음 더 들어왔다.


그런 다케시를 마 주사는 마치 지나가던 개가 밥찌꺼기라도 찾아 들어온 걸 보는 듯했다.


마 주사는 다케시의 조상이 일본에 끌려간 도공이라는 말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부모의 일은 부모의 일이고, 자식의 일은 자식의 일일 뿐이라는 지론 때문이었다.


그보다도 상대방이 저렇게 나왔는데, 이쪽에서 까다롭게 굴다간 온 가족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이왕(李王)’으로 격하를 당하신 마지막 황제께서 순종이라는 묘호(廟號)를 받으신 지 어느덧 5년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 알량한 보위마저 잇지 못한 아우님들마저 싫든 좋든 왜녀들과 맺어지면서 조선은 완전히 왜놈들의 천하가 되지 않았는가!


왜놈들에게 아양을 떨어 한자리 받은 옛 문우들도  서찰을 보내지 않는가!


“광무 황제(고종)께서 붕어하신 직후에 터진 만세 사건 때 미리견(彌利堅, 미국), 영길리(英吉利, 영국), 불란서(佛蘭西, 프랑스)가 침묵하거나, 심지어 왜놈들을 지지한 걸 직시하라”고.


하지만 그러한 서찰이나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저 한양 같은 큰 도시에서 사는 타인들이 소유한 논밭뿐인 이 마을보다 벌이가 훨씬 좋다는 대처로 나간 아들과 두 손자들의 장래를 걱정하기에 이 마대산 노인은 이 불청객이 불쾌감을 토로하지 않을 만큼  예우해주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뭐, 방으로 들어오시오, 소장. 얘, 아가야! 고구마 좀 삶아오너라.”


다케시는 미소 지었다.


돈벌이에 환장한 지주들과 상인들, 이들과 결탁한 정치인들 덕에 조선의 쌀은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 가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자기가 피땀 흘려 가꾸고 수확한 쌀 대신 텃밭의 고구마나 만주에서 들여온 조며 콩 등을 먹어야 한다며 불만이 팽배해 있다.

그런 조선인들이 손님에게, 더구나 일본인 관리에게 고구마라도 내놓는 게 뭘 의미하는지 다케시도 잘 알고 있었다.


다케시가 얌전히 앉아 고구마를 기다리는 동안, 마대산은 다락을 열고 두 팔과 상반신을 집어넣더니 한참 부스럭거렸다.

 그러기를 한 10여 분 하고서야 대패질도 제대로 안 된 초라한 황토색 목제 상자를 꺼냈다.


어느 서양 탐정소설에서던가?

 악당이 탐정의 눈을 속이려고 그 탐정이 찾던 귀부인의 편지를 낡은 봉투에 숨겼더랬지.

 탐정은 그런 줄도 모르고 악당의 집을 몰래 온통 수색하느라 크게 고생했고 말이다.


‘드디어!’


다케시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악당의 평범한 편지함에서 편지를 찾아내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번쩍였다.


‘이것이 바로 이태왕(李太王, 고종 황제를 일제가 격하시킨 뒤 붙인 호칭)이 생전에 다도에 사용했다던 바로 그 자기란 말인가!’


라고 다케시는 노인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뚜껑이 열렸다.


‘어?’


노인이 본 다케시의 얼굴에 떠오른 말이었다.


 높으신 분들이 코오피를 드실 때 사용하는 영국제나 독일제 도자기 잔과 다를 바 없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비록 반짝이는 하얀 몸체를 금박으로 장식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감탄시켰다던 부드러운 유백색 분청사기나, 왕씨 고려의 수도 일대에서 발굴된다는 녹옥 빛 상감청자 같은 것을 기대했을 터이니 실망의 크기도 상당한 듯했다.


“소장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소만, 시골 촌부가 어찌 감히 주재소 소장을 희롱하겠소?”


노인의 진지한 태도가 다케시를 진정시켰다.


하긴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크게 발전한 것에 감명 받아 서양 것이라면 쓰레기마저 큰돈을 주고 사들였다던 이태왕 아니던가.


이태왕 덕에 서양에서 왔거나 서양인과 거래하던 여러 협잡꾼이 큰돈을 벌었고, 그 덕에 조선이 거덜 났다는 이야기는 마을의 내지 출신 유지들과 친일파 조선인들이 늘 술자리에서 안주 삼는 얘기다.


역시나 대단찮아 보이는 이 찻잔의 밑바닥에도 이태왕 일가가 무려 500년간 사용했다던 오얏꽃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문양은 황제 폐하께서 쓰셨던 서양식 찻숟갈도 장식했던 거라오.”


“아, 예.”


허탈감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 다케시는 허기가 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뜨기 전에 고구마나 먹어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볍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랬다! 단지 고구마가 나올 때까지의 지루함을 달래려고 물었다.


허나 그 질문은 그로부터 70년 뒤 오사카의 한 개인병원에서 며느리가 데려왔던 의붓손녀가 손을 잡아준 가운데 눈을 감을 때까지 다케시의 머릿속에서 생생할 것이었다.


“이 무르건은 어더케 구하씨나요?”





고종  황제가  쓴  커피용  티스푼  사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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