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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앞둔 나라에서의 각자도생 고민

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by 장웅진

* 註: 자타국(子他國)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고대 가야의 소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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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근새근 잠든 어린 아들을 보며 여인은 축 늘어졌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이만 쉬시지요, 공비(公妃)님. 아기씨는 쇤네와 의원이 돌봐드리겠습니다.”


유모의 권유에 여인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났다.


“알겠어요. 잘 부탁드려요.”


여인이 쉬러 가면서 방에는 유모와 의원만이 남았다.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하기에 필요 인원만 남으라고 여인이 지시해서였다.


하지만 이 자타국의 처지에는 군주인 한기(旱岐)조차 궁궐에 많은 고용인을 둘 수가 없었다.




“이 나라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요?”


아이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한 유모가 푸념조로 물었다.


“사로국(斯盧國), 아니 신라와 백제가 성장하면서가 아니겠소. 누구는 말하기를 고려(고구려)의 태왕(광개토대왕)이 신라인들을 길잡이로 세워 금관국(金官國: 금관가야)을 정벌한 뒤부터라더군요.”


작고 고귀한 환자의 안색을 살피던 의원도 이 말을 하고서 한숨을 내뱉었다. 의원의 말은 이어졌다.


“기실 공비님께서 아기씨께 들려드린 얘기를… 요즘 젊은것들은 비웃더이다. 결국은 백제의 첫 어라하(於羅瑕: 왕)라는 온조가 조카인 비류 대왕의 아드님을 잡는 데 성공하지 않았느냐면서요. 하긴 부여구(扶餘句: 근초고왕)가 새 어라하로 등극하고, 아마 그때부터 백제가 마한 전역을 지배할 만큼 강성해지면서 자타국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죠.”


의원은 이 말을 마치고서 소리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너무나도 허약하고 잔병치레를 하는 이 어린 환자가 이 자타국 자체인 것 같아서였다.


자타국 한기의 부인, 즉 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첫 아이가 아니었다. 태어나기라도 한 아이만 기준으로 하면 이 아이가 다섯 번째였다. 태중에서 유산된 경우도 여럿이었다. 그래서 선배 의원들 중에는 목이 달아난 이들도 있었다. 아기씨가 사망하거나 유산된 탓이었다.


이 중년 의원은 간신히 목이 달아나는 것만은 면한 선배 의원에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물려받으실 나라가 조만간 망할 걸 빤히 아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그런 거 아니겠나! 망해가는 집 자식들은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경우를 많이 봤다네.’


의원은 이 말을 다시 곱씹으면서 이어서 다른 생각에 빠졌다.


‘차라리 서라벌(경주)로 가서 다시 시작할까? 신라의 법운왕(法雲王: 진흥왕)은 쓸 만한 재주를 가진 자라면 다른 나라 출신이어도 귀하게 여긴다던데? 반파국(伴跛國: 대가야) 악공 우륵도 타락한 새 왕(도설지왕)한테 실망해 서라벌로 망명했다지. 법운왕에게서 총애도 받고 있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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