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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부유하던 나라에 도둑처럼 찾아왔던 몰락

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by 장웅진

* 註: 자타국(子他國)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고대 가야의 소국입니다.




자타국은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작지만 부유한 나라였다.


서쪽의 마한과 동쪽의 진한, 그 사이에 있는 변한의 소국들이 남강과 육로(陸路)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대개는 들르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북쪽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해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던 마을에는 각지의 물산이 거래되는 시장이 생겼다. 물론 이 시장을 이용하러 온 외지인들이 쉬면서 밥을 먹을 곳들도 생겨났다.


시장에서 노래를 들려주고 춤과 손재주를 보여주는 자들도 모여들었다.


자타국 농민들이 재배한 곡식과 과일로 빚은 각종 술들을 파는 주점들은 타지의 미녀들까지 고용해 손님들을 끌었다.


하도 흥청거리니 다른 나라의 군주나 귀족도 지나가는 상인인 양 변장하고 찾아와 막대한 재물을 쓰며 놀고 가기 일쑤였다. 이런 ‘귀하신 분들’을 상인들은 자기들끼리 ‘황금을 지고 가는 나귀’라고 불렀다. 재물을 가진 바보라는 뜻이었다.


술과 요리를 파는 집은 다양한 쓸모의 병과 그릇과 항아리 등을, 여인과 고귀한 사내는 장신구나 관(冠)을, 오가는 길 위에서 재물이나 상품을 노리는 도적과 호랑이며 표범으로부터 제 몸을 스스로 지키려는 자와 사냥꾼은 무기를, 상인은 수레를, 농부는 농기구를, 그리고 주민들 모두가 제 몸을 가리거나 치장할 옷감과 등불을 밝힐 기름을 시장에서 찾았다.


이런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工匠: 기술자)들도 각지에서 모여들어 공방(工房)을 차렸다. 시장 서쪽 끝에 사는 탐하리는 녹옥색 그릇을 만들고, 바로 옆에 사는 신보의 대장간에서는 낫과 검을 만들었다. 이에 비례해서 시장은 활기차졌고, 한기는 시장에서 세금을 거둬들여 국부(國富)를 늘렸다.


변한의 다른 소국 군주들이 대궐이랍시고 커다란 초가집을 덜렁 짓고, 지붕을 덮은 이엉조차 다듬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지경을 가장 일찍 면한 나라는 김수로왕이 등극한 금관국이었다. 그마저도 배를 타고 금관국으로 망명을 온 김수로왕의 부인인 먼 나라의 공주가 막대한 재물을 가진 부자인데다 철물(鐵物)을 잘 만드는 공장들까지 데려왔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 왕비의 성인 허씨가 김씨와 함께 국성(國姓)이 되었겠는가.


자타국의 한기는 조정이 백성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만으로 기와를 얹은 대저택을 지었다. 김수로왕의 자손인 어느 금관국 왕도 자타국을 방문했다가 한기의 대저택과 시장을 보더니 배탈이 났다며 그날 안에 귀국하기까지 했다. 변한의 대표 국가임을 자부하던 금관국의 왕이니 오죽했으랴.


자타국이 몰락하기 시작한 건 정확히 162년 전이었다. 고려의 젊은 태왕 고담덕(광개토대왕)이 위기에 처한 신라를 돕겠다며 금관국을 침공했을 때부터다.


이 당시 금관국은 몰락하고 있었다. 철물을 사주던 큰손들인 낙랑국과 대방국이 고려에 패망해 사라져서다. 이 위기를 타개하겠다며 어라하의 제의에 따라 왜인 용병들을 앞세운 백제군과 더불어 신라를 침공했다. 처음에는 신라의 수도 금성(金城: 경주)을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나 고담덕이 직접 지휘하는 고려군 5만 명에게 등짝을 보이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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