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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한 강국이던 금관국(금관가야)의 몰락

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by 장웅진

* 註: 자타국(子他國)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고대 가야의 소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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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고구려군)에 박살난 금관국이 쇠퇴하면서 변한 일대에는 맹렬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고려라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인 신라는 금관국과의 분쟁 지역들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며 힘을 키웠다. 금관국 왕은 이를 갈며 어라하와 다시 손을 잡았지만 결과는 상당히 끔찍했다. 덕분에 고려군의 침공을 면한 데다 금관국에서 온 피난민들까지 흡수해 백성의 수효를 늘린 반파국이 득을 보기는 했다. 한때는 영역을 크게 넓히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반파국도 결국 신라와 백제 사이에 끼인 신세로 전락한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기존의 강국인 금관국이 몰락하면서 변한의 질서는 망가졌다. 안라국(安羅國: 아라가야)마저 백제와 신라, 왜국의 사신들까지 참석한 안라회의를 주최하며 변한의 새로운 패권국 행세를 하기까지 했다.


이러니 자타국은 주변 강대국들의 ‘황금을 지고 가는 나귀’로 전락했다. 백제와 신라는 대놓고 뜯어갔고, 반파국과 안라국은 신라나 백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서 스리슬쩍 뜯어갔다. 여전히 시장은 흥청거렸지만, 자타국 한기의 대저택은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장사하던 상인들 중에도 가게를 정리하고 떠나는 이들이 나타났다.


한기가 세금을 크게 늘려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거상(巨商)의 친인척 혹은 그 자신이 대지주인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했다.


조정에 재물이 부족하니 도적과 맹수로부터 자타국을 지켜주던 군대마저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자 신라의 왕은 자기네 무역상에 더해 자타국 백성들까지 대신 보호해주겠다며 신라군까지 주둔시켰다. 누가 봐도 ‘기다렸다는 듯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자타국에서 한기가 직접 부릴 수 있는 병력이라곤 대저택을 경비하는 자들 수십 인이 전부다. 서라벌의 부가옹(富家翁)도 이보다 많은 머슴들을 무장시켜 거느릴 수 있으리라.



한기는 정전(正殿) 안 좌우에 늘어선 도열한 신하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자타국의 귀족들은 금관국의 복식을 모방하여 두꺼운 비단으로 종아리까지 닿게 지은 예복인 장유(長襦)와 흰 바지인 고(袴)를 입고, 검은색 가죽신을 신었으며, 긴 깃이 둘 달린 검은색 관모(官帽)를 썼다. 금관국과 다른 점이라면 짙은 청색으로 물들였다는 거다. 예복을 처음 제정한 아주 먼 선대 한기는 남강의 푸른 물에서 생각을 취했다고 한다. 금관국에서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좋아하던 붉은색을 좋아했었기에 온 백성들이 붉은색을 숭상하여 예복도 붉게 물들였었다.


한기는 왕권이 미약해서 관모 위에 왕관을 덮어 쓰지는 못했다.


‘한기’라는 칭호도 다른 나라에서는 일개 벼슬아치의 칭호다. 즉, 자타국 한기가 왕관을 썼다면 웃음거리라든가 침공을 당하는 명분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한기는 금관국 왕처럼 수정구슬 목걸이와 금귀고리를 착용했으며, 짙은 갈색과 옅은 갈색이 조화를 이룬 큰 사슴의 꼬리로 제작한 털부채인 주미(麈尾)를 손에 들고, 발등 위까지 오는 포(袍)를 입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이 군주임을 드러낸 것이다.


금관국 왕의 포는 검붉었었다. 한기는 그 색이 금관국 백성들의 피 색깔 같다고 여겼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이렇다. 금관국의 마지막 왕 김구형이 30년 전 신라에 나라를 들어 바치면서 금관국 자체가 사라져서다.






제 대체역사 웹소설인 <광개토대왕의 철혈번국왕이 되다>가 금관국 세자 김좌지가 국가 멸망의 위기를 번영의 기회로 만드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저 웹소설 시점에서 1,600년 뒤 여주인공 김경랑 / CHAT GPT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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