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상대등(上大等) 김이사부 장군께서 반파국으로 진격 중이십니다. 아, 오늘내일 중으로 알터(고령군)를 총공격할 거고요. 곧 이곳에도 반파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겠네요, 하하하!”
기분 나쁠 정도로 크게 웃어대는 사자에게 한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반파국의 왕은 어찌 되는 거요?”
“어쩌긴요! 우리 신라의 대왕께 복종하기로 맹세했고, 또 그래서 다양한 혜택을 봤던 주제에 백잔의 군주와 손을 잡고 신라를 침공했잖습니까! 당연히 죽어 마땅하지요, 하하하!”
반파국이 신라에 비해 소국이라지만 그 왕을 중죄인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얘기를 타국 군주 앞에서 거만하게 선언하는 사신의 언동에 한기도, 신하들도 할 말을 잃었다. ‘처신 잘하라’는 협박 같아서였다.
사신은 이런 분위기를 읽어서인지, 아니면 이제야 생각난 건지 이 말을 덧붙였다.
“우리 대왕께서는 참으로 관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을죄를 지은 반파국 왕의 머리를 깎고 절에 보내겠다고 하셨지요, 하하하! 반파국 왕은 절에서 평생 자신의 죄를 반성하면서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겠지요, 하하하!”
“으음, 반파국 왕에게도 처자식이 있을 텐데요?”
한기가 조심스럽게 물으니 사신은 그게 뭐 대수냐는 투로 대답했다.
“속세와의 연을 끊고 승려가 되는데 처자식을 신경 쓸 수가 없겠지요. 당연히 처는 신라의 적당한 귀족 분과 재가를 할 것이고, 자식들은… 대왕께서 마련해주신 양부모 슬하에서 신라인으로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사신의 이 말에 한기도, 신하들도 대놓고 고개를 돌렸다. 처자식과의 생이별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자식들을 어미와 떨어뜨려놓겠다니 말이다.
한기는 이쯤에서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 물었다. 덜덜 떨면서….
“반파국이 이렇게… 사라지면… 이 자타국은… 어찌 되는… 거요?”
한기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처자식의 장래가 걱정되어서다.
사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뭐…, 한기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전까지는 우리 신라도, 저 백잔도 이 자타국을 함부로 건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로를 침공하려면 여길 통하는 게 가장 좋긴 하지요, 하하하! 허나 상인들이 싫어해서 말이지요. 상인들의 세상에서는 재물 앞에서는 나라도, 아비·어미도 없지요. 아니, 재물이 곧 그들의 나라요, 아비·어미라나요, 하하하! 그래서 이 자타국의 시장이 망가질까봐 걱정된 겁니다, 하하하!”
“그렇구려. 이 자타국의 시장에서는 세금만 잘 내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장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 자타국은 천하의 모든 상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까, 하! 하! 하!”
한기는 자타국의 필요성을 사신의 마음속에 단단히 박아주기 위해서 분위기 전환까지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법운왕한테서 지시를 받고 온 사신한텐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