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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신의 위압질

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by 장웅진

* 註: 자타국(子他國)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고대 가야의 소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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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는 신하들을 다 본 뒤 자기 옥좌 앞에 으스대며 서 있는 신라 사신을 바라봤다. 황색 공복(公服)을 입은 젊은이였다. 관계(官階)를 물어보니 소오(小烏)라 했다. 신라의 벼슬아치들 중 밑에서 두 번째 자리다.


신하들도 어이가 없었다.


‘저런 하급 귀족 따위를 사신으로 보내다니! 골품(骨品)마저 백성들의 바로 위인 사두품(四頭品)일 것 같구먼. 이런저런 꼬라지를 보니까 말이지. 흐흥, 저런 자를 사신으로 보낸 걸 보면 법운왕은 이 자타국을 무시하는 건가? 신라의 일개 마을 정도로 여기는가? 그나마 풍채 하나는 봐줄만 하구먼.’


한기는 불쾌했다. 하지만 사신의 신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신분이 어떻든 멧돼지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저 젊은이는 신라의 왕을 대리해서 왔으니까.


한기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온유하게 물었다.


“신라의 대왕께서는 어이하여 이 소국에 귀공을 파견하셨소?”


사신은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혀 읍(揖)하고서 대답했다. 말투가 상당히 거만했다.


“백잔(百殘: 백제의 낮춤말)의 군주 부여창(扶餘昌: 위덕왕)이 반파국 왕과 왜국 왕을 꾀어 우리 신라를 공격한 걸 아실 겁니다! 그렇지요?”


“으음, 소식은 들었소. 무역상들이 말해주더이다. 옛 금관국 땅을 빼앗은 뒤 셋이서 나눠가지기로 했다고 말이오. ‘다행히’ 실패했다 들었소.”


한기는 일부러 ‘다행히’를 유독 강조했다. 자신도 신라 편이라는 걸 애써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사신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봐요, 한기! 그걸론 부족해요!’


뒤이어 육성으로 이렇게 일갈했다.


“그럼 우리 신라군이 취한 백잔군의 수급이 천 개가 넘는다는 사실도 아시는지요? 왜군과 반파국군을 제외하고도 말이지요, 하하하!”


“으음…,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도 듣긴 했소. 대왕께 경하 드리겠소.”


한기는 나름대로 대국의 왕에게 적절한 예를 표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사자는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았다.


한기는 사신이 보여주는 미소에서 피비린내를 느꼈다.


역시나 사신이 뒤이어 한 이야기는 끔찍했다.


“경하를 드려야 할 일은 그것만이 아니지요, 한기! 왜군 장수들이 지 구차한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뭘 한 줄 아십니까? 아 글쎄, 바다 건너 이국(異國)의 전쟁터까지 끌고 왔던 제 여편네들을 우리 신라의 장군들께 바쳤단 말입니다, 하하하! 장군들께서는 그 어여쁜 계집들을 ‘상당히 귀여워해 주셨다’고 합니다, 한기! 정말 즐거우셨다더군요.”


“신라의 장군들께서 모두 미인을 첩으로 취하셨나보구려. 뭐, 신분이 높은 사내한테는 미인보다 좋은 전리품이 없지요. 이 또한 경하 드리오.”


신하들은 한기가 대답하는 말투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한기는 그저 이 사신과의 짜증나는 대화를 어서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발언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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