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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생 Nov 17. 2024

막막한 현실

눈을 뜨니 집 안으로 해가 널찍이 들어와 있다.
불도 환하게 켜져 있고 티비도 켜져 있다.
여자는 옆에 있는 리모컨으로 티비를 껐다.
불도 끄고 화장실도 가고 싶 다리에 힘을 주자 말도 못 할 통증에 악 소리도 내지 못해 무음으로 입만 벙긋거린다.
골반뼈에 금이 간 채로 많이도 돌아다녔다.
조금 긴장이 풀리니 이제 모든 통증이 몰려오나 보다 여자는 생각한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본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복기해 본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아.'
일주일 전만 해도 멀고 먼 타지에서 열심히 하루하루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어 지금은 한국에 와 누워있다.
누운 채로 옆을 쳐다보니 짐이 널브러져 있다.
어제 이불이 없어 가방에서 두꺼운 옷들을 전부 깔고 덮고 해서 정리도 되지 않은 물건들이 이리저리 널려있다.
'다 나을 때까지 그냥 누워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계속 누워있자니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 생각을 다 처리하기엔 여자는 지금 너무 나약한 상태다.
여자는 해야 할 일 목록을 쓰고 싶다.
이제부터 나에게 남은 돈이 얼마인지,
이걸 어떻게 잘 나눠서 써야 할지.
얼마나 일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여자는 다치고 나서 골반뼈가 얼마나 소중한 부위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움직임에 골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워있어도 앉아있어도 서거나 걸어 다닐 때도 모두 골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앉는 데까지 10분이 걸린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겨우 일어났다.
힘이 들어 얼굴이 벌게져있다.
겨우겨우 서서 보일러를 낮추고 불을 끈다.
이제 다시 누우면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라 모든 것을 하고 눕기로 한다.
물건들은 가방에 모두 넣어버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나온다.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물이 없다.
어제 정직하게도 청소용품만 사가지고 왔다.
공항에서 마시던 물은 어제 청소를 하고 다 마셔버렸다.
여자는 고민한다.
수돗물을 마실까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그러고 보니 이 집엔 부엌이 없다.
뭐지. 왜 부엌이 없지.
어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가스레인지도 그 무엇도 없이 부엌 자리엔 책상과 미니 냉장고만 덜렁 존재하고 있다.
'이래서 저렴했군.'
화장실 물이라도 마셔야 하나 하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여자는 결국 나가기로 한다.
동네 마트까지 걸어가기에 무리가 있어 오르막길 중간에 있던 조그마한 슈퍼에서 물과 빵을 사 왔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걷는데 식은땀이 난다.
헉헉헉.
집에 들어오자마자 물건을 내려놓고 잠시 서 숨을 고른다.
필요한 물건을 옷으로 만든 이불 더미 근처에 모두 갖다 놓은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눕는다.
눕는데도 약 5분이 걸렸다.
드디어 모든 일을 마치고 누워 갖다 놓은 노트 위에 글씨를 적는다.
나의 전 재산과 지금 필요한 물건과 한 달 예산과 내가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목록을 죽 정리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은행 앱으로 들어가 잔액을 확인하는데,
여자는 눈이 동그래진다.
잔액 0원.
'0원? 왜?'
여자는 너무 놀라 앉으려고 팔을 바닥에 집고 일어나려다 극심한 통증에 소리를 지르고 다시 누웠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튀어나갈 것 같다.
분명 여기엔 거의 팔백만원 가까이가 들어있었다.
보험비가 빠져나가고 넉넉하게 남아있었어야 했다.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새로고침해서 확인하지만 잔액은 변하지 않는다.

거래내역을 보고 여자는 좌절한다.

그리고 수중에 남은 돈을 계산해 보니 이백만원 남짓.
여자는 자신이 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꾸역꾸역 참아왔던 우물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눈물이 뚝뚝 옷가지로 떨어진다.

울컥거릴 때마다 골반뼈의 통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막막한 현실에 여자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그저 머리맡에 있는 옷이 젖을 때까지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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