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생 Nov 10. 2024

새 보금자리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달려 경기도 외곽에 있는 조그마한 동네에 도착했다.

이곳의 시내일 것 같은 동네 초입은 순댓국집과 콩나물국밥집, 이불집과 이름 모를 스포츠용품점이 눈에 띄었다.

근처에 공장들이 많은 동네라 해장국집이 주를 이루고 이런 곳은 월세가 싸다.

몇 안 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시내를 지나면 주택지가 나오는데 빌라들이 즐비하고 저기 산 쪽에 아파트들이 모여있다.

아파트라고 해도 오래된 구식아파트들이다.

택시는 한 오르막길에서 좌회전을 하더니 어느 빌라 앞에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커다란 이민가방을 한 번에 턱 하고 내려주시고는 택시는 유유히 떠나버렸다.

여자는 부동산중개인에게 전화하기 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번호를 누른다.

'뚜르르르르르-'

신호가 가는데 저기서

'곤드레만드레-나는 취해버렸어-'

벨소리가 들리며 점점 가까워온다.

인상 좋은 중년의 남성이 여자를 보더니 핸드폰 전화를 끊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방 보러 오신 분?'

'네 맞아요. 지금 바로 볼 수 있을까요?'

'아이 그럼요. 오늘 바로 들어가도 돼요.'

'저 이 짐이 있는데..'

'아, 크네. 이거 잠시 1층 구석에 두었다가 방 보고 그다음에 올리던지 하세요.'

'네에.'

성격이 시원시원하니 호방한 사람이다.

'다시 한번 설명드리면서 올라갈까요? 월세는 500/30.

싸죠? 여기는 서울로 나가려면 저어기 올라오다 보이던 마을버스 표시판 거기 앞에 서서 타고 나가도 되고 아님 밑에 시내 쪽으로 가면 일반버스도 많아서 거기서 버스 타고 나가도 돼요.'

'마을버스는 자주 없고 일반버스는 꽤 있어서 걸어 나가서 타는 게 좋을 겁니다.

시내에서 버스 타면 역까지 15분 정도 걸려요.'

'그래서 월세가 싼 건가요?'

'그것도 있고, 공장 근처 월세룸들이 많이 생겨서 여기가 예전만큼 인기가 없어진 거죠 뭐. 여긴 그냥 주택단지라고 보면 돼요.'

'아, 네에.'

집은 3층이었고 한 층에 4 가구가 사는 원룸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굉장히 신축에 복도도 깔끔했다.

'주인이 신경 써서 지었는데 갑자기 이 동네 인기가 떨어져 버려서. 여기 진짜 괜찮은 집이에요.'

중년남성은 집 문을 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꽤 평수도 넓고 좋죠?

화장실도 괜찮고 티비 인터넷 포함이고, 신발장도 잘 갖춰져 있어요.'

여자는 집 문을 열자마자 여기로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상태였지만 따로 원하는 게 있었기에 말을 아꼈다.

'네에.'

'왜 별로인가?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데.'

'주인도 오늘 계약하면 바로 올 수 있다고 하고.'

'그래요?'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저 그럼, 보증금을 300으로 낮출 수 있을까요? 되면 지금 바로 계약서 쓸게요.'

중년남성의 표정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 흘렀다.

'오우 이것도 꽤 좋은 가격인데? 흐음, 나가서 한번 물어는 볼게.'

여자와 남성은 집을 나왔고 남성은 멀찍이 집주인과 통화를 하더니 마치고 다시 여자에게로 왔다.

'그렇게 하자네요. 바로 계약하실 거죠?'

여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될 줄 알았는데, 조금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네. 바로 계약할게요. 정말 죄송한데 짐을 올려야 하는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계약하고 바로 들어가실 거죠?'

'네. 바로 들어가려고요.'

'그래요. 올려드릴게.'

중년남성은 땀을 뻘뻘 흘리며 20킬로가 넘는 가방을 3층에 있는 방까지 올려주었다.

빠르게 계약을 마치고 모든 잔금을 바로 지불한 후 부동산을 나왔다.

여자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으나 입술이 꾹 깨물며 근처 슈퍼에 가서 방을 청소할 용품들을 사서 방으로 들어왔다.

여자가 방을 결심한 이유는 비워져 있었는데 냄새가 나지 않았고 곰팡이도 없었으며 창문이 크게 나있었다.

여자는 가방은 현관문에 두고 마스크를 끼고는 청소용 밀대로 천장부터 벽, 바닥을 모조리 닦았다.

닦고 또 닦고 더 이상 그 무엇도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쓸고 닦고를 반복했다.

서 있는 상태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바닥을 걸레질할 때 특히 구부려 앉아 구석을 닦을 땐 비명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눈을 몇 번 찔끔 감았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즈음, 여자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선 화장실을 모조리 청소한 뒤 그 뒤에 씻기 시작했다.

여자는 화장실을 청소하며 주인이 정말 신경 써서 지은 집이라 생각했는데, 환풍기가 좋은 건지 이전사람이 잘 사용한 건지 타일도 깨끗하고 물때도 없었다.

모든 청소를 마치고 씻고 나왔다.

상쾌해진 여자는 집이 너무 고요해 티비를 틀었다.

이불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집이다.

(여자는 침대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불을 사 올걸. 생각도 못했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바닥에 그래도 온돌이 있어 방 온도를 세게 높여본다.

정말 서늘하고 추운 나날이었다.

베개도 이불도 없으니 가방에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이불대신 깔고 덮는다.

온돌 온도가 점점 올라오며 집이 후끈해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한없이 움츠렸던 몸을 조금씩 펴본다.

'아. 따뜻해.'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불도 티비도 켜놓은 채 여자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이전 11화 파란 하늘과 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