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살짝 따뜻하다 했더니 초미세먼지가 몰려왔다.
흐리고 텁텁한 하루엔 시 한 줄이 필요하다.
처음 시를 읽었을 땐 퍽 난감했다.
항상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보다가 그저 낙엽이 후루루 떨어지다가 강물에 흘러가는 듯한 글을 보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린 마음에 고민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시를 멀리하고 판타지 소설과 역사소설에 매진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판타지 소설의 유행을 잘 모르는데 예전엔 그렇게 죽어가는 드래곤을 우연하게 만나 드래곤하트를 받고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후후.
그리고 라떼는 역사소설하면 김진명 작가님이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보다가 선생님께 1권을 들켜 뺏겼는데 며칠 뒤 선생님이 불러서 쭈글거리며 갔더니 2권을 가져오라고 하셨던 추억이 있다.
(아마 '바이코리아' 였던 걸로 기억한다 후후.)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20대의 어느 순간,
사랑과 이별을 알게 되고 아픔을 책으로 달래기 위해 사랑에 대한 시집을 읽어나갔다.
시집을 읽으며 처음으로 공감에 꺼이꺼이 울었다.
지금은 굉장히 가물가물해서 작가님도 시집 이름도 기억이 나진 않는데 감정을 기억한다.
(보통은 둘 중에 하나라도 기억하는데 계속 생각해 봐도 기억이 안 난다. 잊고 싶은 기억인 걸까.)
콧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작가님도 저와 같은 사랑을 하셨군요 하면서 보았던 기억.
눈물 젖은 빵 대신 나에겐 눈물 젖은 시집이 있었다.
팔진 않았던 것 같은데 본가에 가서 한번 짐들을 뒤져봐야겠다.
그렇게 시집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한 줄 한 줄에 무수한 감정과 그리움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써보고 싶어 이렇게 낙엽이 후두두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 몇 자 적어볼까도 하는데 나의 감수성의 한계를 느끼고 언제나 잘 적힌 시집을 찾는다.
문인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말 다채롭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김영하 작가님이 나오신다고 해서 챙겨본 적이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신문에 이 소설로 등단했다고 나와서 궁금해 읽어보았다가 그때부터 쭉 좋아하는 작가님이 되었다.
아마 첫 화에 통영을 내려가는 버스 안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버스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데 작가님이,
'햇빛이 바삭바삭하네요.'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듣자마자 오오오오오어- 돌고래 소리를 냈다.
어머 햇빛이 바삭바삭하다뇨.
생각지도 못한 표현력에 소리를소리를 질러대었다.
햇빛을 그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이런 다채로운 시각을 시에서 배울 수 있다.
단편으로 세상을 보는 나에게 단편 사이사이에 있는 아주 가느다란 실 같은 골목길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시집을 읽으니 괜히 말이 길어지는 오늘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표현으로 삶을 바라보고 싶을 때 시집을 추천한다.
재미난 시집들도 많으니 가볍게 즐기면 참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박경희 시인의 '벚꽃 문신'이라는 시집을 좋아한다.
표현이 정겹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선 마음속이 아릿해진다.
생각났으니 다시 읽어봐야지.
좋은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좋은 법이다.
오늘은 흐렸지만 내일은 꼭 바삭바삭한 햇빛이 가득하기를!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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