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처럼 웃으십시오.
이상한 명령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전자가 무슨 모양인지 생각한다 그 또는 그녀 또는 그들이 원하는 주전자는 목이 기다란 스웨덴의 주전자일까 통통하고 키 작은 벨기에의 주전자일까 은색 몸을 뽐내며 우아하게 선 독일의 주전자일까 어쩌면 말이야 양은 주전자일지도 모르지 잘못 끓어 넘칠 때마다 변색한 주둥이와 곳곳이 뭉개진 몸통과 딱 맞물리지 않는 뚜껑을 가진 그것 그리고 나는 그 또는 그녀 또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양은 주전자인 척을 한다
불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색종이로 접어 보십시오.
명령이라기보다는 권유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상적인 길이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다는데 가로 한 뼘 세로 한 뼘 우리 모두는 왼손과 오른손의 크기가 다르지 않은가 뻗을 때마다 나의 신체가 품은 일관성을 잃어 가고 정중앙부터 계산하자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모서리 값을 구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괜히 말해 보며 나 역시 모서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차갑게 빗맞는 유년처럼 나를 향한 끄덕임에 부응하기 위해 맞물리지 않는 뚜껑을 퉁퉁 쳐서 넣어 본다
작은 색종이를 건물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권유라기보다는 규율로 자리 잡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작다는 것은 무엇일까 선물 받은 빨대가 기존의 빨대 케이스에 들어가길 거부할 때의 낭패감일까 옆자리의 동료가 작은 색종이를 들고 나갔다는데 그 색종이는 도무지 작지 않아 낭패감의 기원조차 더듬을 수 없다 그 또는 그녀 또는 그들이 작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라 회신하고 나는 보글보글 끓어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대로인 뚜껑 이는 맞지 않는 아귀 때문이다 구태여 중얼거린다
열리지 않는 뚜껑을 착용하십시오.
그러나 열려야 할 때 열리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한다고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해야 한다보다 한다고 한다 사이의 고에 집중한다 그 고는 대체 무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함몰 접기를 하는데 점선이 희미하다 눈을 비벼 다시 본다 일정한 간격이라는 점은 유추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대가리를 뒤집어씌우라니까 군말은 삼키면서 한다 북북 찢어지는 소리에 옆구리를 긁어 본다 그 또는 그녀 또는 그들이 다가온다
이런, 주전자를 접으셨군.
종이에 베이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줄 요량이었던 나는 반듯하게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