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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희 Oct 29. 2024

킹크발화


  재생산에만 기여할 생각을 가진 이는 나와 겸상하지 말라 나나는 달걀말이 위에 케첩을 뿌리며 소리를 지른다 이 망할 케첩을 똑바로 세워 둔 이는 또 누구인가 토마토는 싫어하지만 케첩은 좋아하는 나나 케첩의 엉덩이를 두들긴다 먼저 동일한 강도로 세 번 그리고 모자랄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거세게 때려 준다 그래도 잘 나오지 않으면 이미 노랗게 질린 대가리를 식탁 유리에 처박으며 회유한다 망할 브랫 같으니 그것조차 먹히지 않으면 케첩의 엉덩이를 틀어쥔 채 팔을 뱅뱅 돌린다 원심력에 동작하는 것은 케첩 그 자체가 아니라 케첩의 껍데기이겠지만 나나는 스스로의 수고로움에 탄복한다 밥상머리 앞에서 대단히

  잘하는 짓이다


  튕겨져 나가는 느낌을 즐기는 이들

  달걀 깨지는 소리 거푸 듣는다


  외할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나나의 엄마는 성가대에 다시 들까 생각만 한다 성당에 다시 나가지 않으련 가성으로 묻는다 나나의 엄마는 메조소프라노 발성치 나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위다 나나는 분리배출 가능한 케첩의 껍데기를 허리부터 잘라 내며 말했다 성당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아홉 살의 나나가 받았던 부활절 달걀만 날달걀이었고 그래서 노른자가 104동 예쁜 계집애 핑크색 튀튀로 기가 막히게 미끄러졌을 때부터 나나는 그렇게 여겨 왔다 하나의 계시처럼 밥숟가락으로 케첩 껍데기의 내부를 싹싹 긁는다 나나의 엄마가 손뼉을 치며 묻는다 그래 그 예쁜 계집애 뭐 하고 사는지 아니 

  알 리가 없다


  결혼식 답례품으로 받아온 머그 컵 

  벽에 노른자가 들러붙어 있다


  나나의 엄마는 나나가 달걀말이를 잘하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진즉 갔더라면 축의금도 돌려받고 외할머니도 좋아하셨을 텐데 달걀말이는 애정을 가지고 행해야 하는데 그런 되도 않게 비장한 이론을 우물거리며 나나는 두 번째 달걀 물을 팬 위에 올린다 책임 의식만으로는 그르칠 것이다 나나는 뒤집개로 달걀말이의 앞뒤양옆을 야무지게 때린다 찰싹찰싹 요즘은 부활절에 초콜릿을 주더라 나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시도한다 아니 글쎄 나는 초콜릿이 싫다니까 세이프 워드는 공정 무역도 치주 질환도 다이어트도 아니다 그럴싸한 것을 고를 수는 있겠으나 그리고 때때로 고르기도 했으나

  진실은 아니다


  절대성을 대신할 것들

  쓸데없이 한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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