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에서 시음 잔을 든 채
아직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은
깨지는 성질의 미래를 상상했다
어째서 사람들은 깨지지 않을까
공중에 아주 머무를까
요란하게 바닥과 조우한 것들이 무수했다는데
듣지 못했다
바닥을 스치는 감각 아래
미시의 언어들
타인을 위해 사서 타인에게 안겨 주었는데
결국 나의 것이 되었다
손을 뻗자 닿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아주 오래 존재하는 법이므로
나의 손에 들린 것을
나의 손에 들린 채로 두는 일에 집중했다
품에 안자 발이 떴다
영원히 가벼웠으면 좋겠다
변명거리로 삼겠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송병선, 민음사, 2011,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