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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들을 경마로 유인하다 - 1

by 이인철

치우는 춘식과 민수를 데리고 세두를 일식집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자기가 계산을 한 후, 2차로 룸살롱에 가자고 했다. 치우가 고급 양주를 주문하고 아가씨들에게 후하게 팁을 주자, 세두는 평소와는 다른 그의 씀씀이에 놀랐다.

“조 실장님, 며칠 전에 도 실장이 경마에서 큰돈을 따서 한 턱 쏘는 거예요.”

민수가 슬며시 밑자락을 깔자, 경마장에서 항상 오링이 되는 세두는 귀가 번쩍 띄었다.

“자세히 말해 봐! 빨리!”

세두가 흥분하며 재촉하자, 치우는 나지막히 말했다.

“전에 나에게 신세를 진 선배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선배가 경마 조교사로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에게 소스를 받아서 베팅해서 돈을 좀 벌었어요. 글구 이건 비밀인데, 앞으로 가끔 소스를 주기로 했어요.”

“정말? 도 실장, 나에게도 알려줄 수 있어?”

“연락이 오면 신경 써보겠지만….”

“제발 부탁이야. 나 경마에서 만날 오링되는 거 잘 알잖아. 이제부터 모든 진상 일은 내가 처리할게.”

치우는 미적거리며 확답을 주지 않았다. 더욱 안달 난 세두가 애원하자,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지. 네가 1순위다.’

금요일 오후부터 경마장에 언제 가냐는 세두의 성화로 전화기가 불이 났다.


드디어 토요일 저녁, 조교사에게서 첫 번째 소스가 왔다.

“조 실장님, 소스를 받았어요.”

“그래?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세두는 당연히 과천 경마장이나 장외 발매소에서 만날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저는 마떼기장에서 해요. 경마장은 거액을 베팅할 수 없고, 100배 이상 맞추면 22%를 공제하니 큰돈을 벌기 힘들어요.”

“맞아, 그렇지.”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경마에서는 한 경주에 마권 구매 금액이 10만 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로또와 유사한 규칙이다. 하지만 이 규정은 자금이 부족한 경마꾼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경마장 창구나 로또 판매처에서 이러한 규칙을 단속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이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한다면, 마사회나 로또 운영 기관은 파산할 것이다. 물론, 창구를 돌아다니거나 무인 발매기에서 연속으로 마권을 구매할 수 있지만, 그에도 한계가 있다. 한 경주에 1억 원을 베팅하려면 1천 장의 마권을 사야 하는데, 경주 간격이 30분이기에 그 시간 안에 모두 구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큰손들이 여러 명을 동원해 부지런히 구매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두도 이 정도는 알고 있다.

“이 마떼기장에 들어가려면 기본 지참금이 500만 원 이상이어야 해요. 그래서 잔챙이들은 들어올 수 없죠.”

치우는 은연중에 큰 마떼기임을 내비쳤다. 세두는 잠시 고민한 후 함께 가자고 했다.

‘원수를 갚으려면 원수를 경마장으로 유인하라는 말이 있지.’

치우는 쓴 미소를 지었다.


그 시각, 과천 경마장에서는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롱코트를 입은 세 사람이 발주대 정면에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품속에 캠코더를 숨기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가림막 역할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전 연습을 했기에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떼기장 근처에서 치우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세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했다.

“저, 고객인데요. 지금 올라가니 문 좀 열어주세요.”

그가 윙크를 보내자, 세두는 기분이 들떠 어쩔 줄 몰랐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서 내렸다. 치우가 한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경찰의 단속을 감시하는 문방이 살피며 열어주었다.

실내는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북적이며 모두 베팅에 몰두하고 있었다. 중년 여성들도 여러 명 섞여 있었고, 바닥에는 경마지와 마권들이 흩어져 있었다. 모니터에서 중계되는 경주를 보며 고함과 혼란이 가득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고 선생과 창고와 어울리는 경마꾼들로, 수당을 주고 고용된 이들이다. 치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고객 역할을 맡을 바람잡이가 많이 필요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주변의 앵벌이들만 모아도 경마장 트랙을 두세 바퀴는 돌 수 있을 겁니다. 남은 재산은 그 사람들뿐이에요.”

“어렵지 않아요. 아마 면접을 통해 뽑아도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거예요.”

고 선생의 자신감에 창고가 맞장구쳤다. 치우의 지휘 아래 리허설을 열심히 한 덕분에 모두가 배우 뺨칠 정도로 연기를 잘하고 있었다.

이때, 한 사내가 마떼기장이 울릴 정도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적중한 듯한 사람들이 우르르 창구로 몰려가 마권을 돈으로 교환하느라 소란스러웠다.

그 사내에게 배당금을 주던 직원은 돈이 부족한지 창구에서 나와 점잖게 앉아 있는 노신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깍듯이 회장님이라 부르며 속삭였다. 회장은 비서인 듯한 남자에게 눈짓을 했다. 비서가 곁에 쌓아둔 대형 캐리어에서 5만 원권 뭉치 10여 개를 꺼내 창구 직원에게 건넸다.

여기서 회장은 마떼기를 운영하는 마 박사이고, 비서 겸 총매니저는 고 선생, 창구 직원은 바로 창고이다. 따라서 이 마떼기에서의 승패 싸움은 마 박사와 고객 간의 대결인 셈이다.

창고는 환호성을 지른 사내에게 대여섯 뭉치를 주었다. 5만 원권 한 다발이 500만 원이고, 한 뭉치가 5천만 원이니, 얼핏 봐도 3~4억 원은 될 법했다. 돈을 건네는 시간은 불과 십여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므로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큰 가방에 돈을 가득 담은 사내는 어깨에 매고 룰루랄라 밖으로 나갔다. 세두는 부러운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돈은 전부 가짜였다. 마떼기장에서 컬러 복사한 것이었다. 이 가짜 돈을 만들기 위해 고성능 복사기를 수십 대 구입하고, 모든 직원이 A4 용지를 자르고 띠를 묶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짜 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만일 100억 원을 준비하려면 5만 원권으로 20만 장이 필요하다. 언제 그 많은 돈을 복사할 수 있겠는가!

그때 민수가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는 지폐 수백 장만 복사해 돈다발의 위아래에 깔고, 가운데는 백지로 채우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재치에 모두가 감탄하며 실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방법은 착각이었다. 돈다발의 옆면이 흰색으로 드러나 버렸다. 진짜 돈다발은 금색이기 때문이다. 비록 눈속임은 실패했지만, 다행히도 치명적인 실수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했다. 직원들이 각본에 따라 고배당에 적중한 것처럼 거액을 찾아가게 된다. 분명 세 사람은 이 광경을 지켜볼 것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이나 부러움의 대상을 깊이 관찰하는 경향이 있어 가짜 돈임이 금방 발각된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며칠 밤을 새우며 원시적인 방법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세두가 마침내 일어났다.

“조 실장님, 소스 경주를 하려면 아직 몇 경주가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할게.”

치우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세두는 씩씩하게 창구로 갔다. 그는 욕심이 앞서 고배당 위주로 베팅을 했다. 역시나 연속으로 미적중이었다.

드디어 소스 경주인 서울 10경주가 시작되었다. 치우는 지금까지 관전만 하고 있었다.

축은 여러 경마지에서 첫 번째로 올라와 있는 말이다. 마 박사와 고 선생도 이 말은 주로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반드시 2착 안에 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교사 마방에서 출전한 말과 함께 마킹하면 적중하는 것이다.

경마는 한 경주에 8~14두가 뛰며, 적은 수의 말보다 많은 말이 출전하는 경주의 배당금이 높다. 이는 확률적으로 맞추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조교사의 말은 경마지에서 4위에 올라와 있었다. 소스 복식의 배당률은 4.8배로 마감되었다. 치우는 1천만 원을 베팅하고 그에게 구매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세두는 망설였다. 베팅이 계속 실패하면서 가져온 600만 원 중 50만 원밖에 남지 않아서였다. 오늘 단 한 번의 소스 경주에서 본전이라도 회수하려고 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세두는 돈을 빌리기 위해 그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치우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성했던 구매표를 버리고 새 용지에 500만 원을 마킹한 후 남은 500만 원을 건넸다. 이에 감지덕지하며 세두는 650만 원을 베팅했다.

총성이 울리자 동시에 게이트가 열렸고, 축은 처음부터 혼자서 빠르게 질주하여 결승선을 통과했다.

조교사의 말은 3코너까지 중위권을 유지하다가 결승점 50m를 앞두고 기수가 힘껏 채찍질하자 앞으로 뛰어나가 2위로 들어왔다.

세두는 기쁨에 치우를 얼싸안았다.

본전을 제외하고도 2천여만 원을 딴 그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세두에게지급될 배당금은 지나에게 빌린 진짜 돈이었다.



<정의의 베팅 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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