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치우는 고 선생을 만났다.
“고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어머니의 평생 소원인 가게를 열기 위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치우가 마 박사와 비슷한 제안을 하자,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어 창고를 만나 같은 제안을 하자, 그 역시 기꺼이 응했다.
“아내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서 식당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경마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기 전까지는 그 돈을 아내에게 드리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고 선생과 창고에게 각자의 배당금을 비밀로 하라고 했다. 치우가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서로의 배당금 차이를 알게 되면 각자가 작업에 기여한 정도를 비교하게 되어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창고는 가슴이 벅차올라 쉼터에 있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한적한 음식점에서 그는 춘식과 민수를 소개하며 첫 맛작업 회의를 시작했다.
그때 춘식이 팔뚝의 용 문신을 슬쩍 보이며 말했다.
“내가 얼마 전 배신한 망치 놈의 발목 인대를 난도질해 버렸어. 지금 그놈은 다리 병신이 됐지.”
춘식은 민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지만, 세 사람의 귀에도 생생하게 들렸다. 그러고는 바지를 올리며 시퍼런 회칼을 드러냈다. 순간 분위기가 공포로 바뀌었고, 그들은 춘식을 조폭으로 알고 경계했다. 전날 부지런히 연습한 덕분인지 그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치우가 그에게 일회용 문신을 새기게 하고 액션을 시킨 것이다. 돈 앞에서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 거액의 돈을 다루는 순간, 사람은 언제든지 흑심을 품기 쉽다.
이는 앞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돌아가며 통성명을 마치자, 치우가 입을 열었다.
“혹시 조교사, 기수, 마사회 직원 중에 경주 소스를 빼낼 수 있는 사람을 아는 분이 있나요?”
“내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내 술독에 빠지지 않은 놈들이 없었는데, 이제는 거지가 되니까 내 전화번호를 스팸으로 처리하더군. 나쁜 새끼들!”
흥분한 고 선생은 씩씩거렸다. 창고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25조 마방의 조교사가 도박 빚이 많다는 소문이 있던데….”
“나도 얼핏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고 선생이 맞장구쳤다.
“그 조교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식은 죽 먹기죠.”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그 조교사를 작업한 후에 다시 회의를 하죠.”
치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춘식이 마 박사에게 물었다.
“경마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네는 왜 경마를 하려는 거지?”
“돈을 따기 위해서요.”
“베터로서 솔직하군. 무엇보다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사람들은 이기면 들떠서 자랑에 바쁘고, 결국 집중력을 잃어 돈을 날리게 돼. 더 큰 문제는 지고 있을 때의 평정심이야. 올킬을 당하는 날에는 전혀 보이지 않은 경주에 무리하게 베팅하게 되지. 이럴 때는 경기를 관전하거나 과감히 일어나서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하는데, 다시 참여하는 경우가 99%야. 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은 경주당 베팅 상한선을 철저히 지키는 것밖에 없어.
또한 주변이 어수선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지.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야. 타짜들은 집중을 위해 게임 중에 술을 마시지 않고, 심지어 담배도 피지 않아. 갬블에서 승리하는 기본은 얼마나 집중하고 인내하느냐에 달려 있어. 만일 경마가 하루에 두세 경주만 열린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적중할 거야. 왜냐하면 그만큼 집중할 수 있으니까.”
“어휴! 난 이 중에 하나도 없으니 경마에서 돈 따는 건 애당초 포기해야겠네. 아이고, 돌탱아!”
춘식은 자신을 탓하듯이 머리를 톡톡 쳤다.
“고수란 어떤 사람이에요?”
민수가 창고에게 물었다.
“글쎄요. 경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 잘 맞추는 사람, 지지 않고 이기는 사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도 진정한 고수란 더 많은 돈을 잃고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은 사람들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상대에게 경마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사람이야말로 고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고 선생이 깊은 정의를 내린 후 덧붙였다.
“경마는 잘 맞추지 못해야 그만둘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기기 시작하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헤어 나오기 힘들잖아요. 100만 원 잃었던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50만 원 따서 기분 좋다고 히히거리며 웃으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춘식과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사람의 반응에 힘을 얻은 고 선생이 말을 이어갔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과천 경마장을 바라보며 불쌍한 경마꾼들을 보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한 달만 경마 예상을 해줘야지.’ 제우스는 경마꾼들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1경주는 3, 7, 8… 2경주는 4, 5, 9… 금, 토, 일요일 모두 적중합니다. 다음 주에는 소문이 퍼져서 전부가 문자대로 베팅합니다. 집을 팔고 오는 사람도 있고 난리가 납니다.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계속 적중하는데, 어떻게 될까요? 6경주쯤에는 제우스가 알려준 마번의 배당률이 모두 1.0배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베팅을 중단하게 되고, 경마의 신은 ‘이건 아닌 것 같네’라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이번에는 엉뚱한 마번을 알려주는데, 7경주에서는 3, 2, 6… 8경주에서는 4, 5, 11… 적중이 되지 않자 999 배당이 연달아 터집니다. 연속해서 999… 999…올복조로 베팅해도 이익이 생기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또 모든 승식이 1.0배로 고정됩니다.
‘이것도 아닌가?’
다시 한번 적중 마번을 말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경마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경마장 불도 꺼져버립니다. ‘이놈들은 제대로 해줘도 안 되고, 거꾸로 해줘도 안 되니… 에이, 나도 모르겠다’라며 로마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맞아! 아무리 제우스라도 결국에는 오링이 되어 로마행 차비도 날아가는 게 조선 경마일 거야.”
춘식의 한숨에 잠잠하던 마 박사가 슬며시 입을 뗐다.
“그럼 나도 이야기보따리 하나를 풀어 볼까? 하나님을 열렬히 믿는 열 명의 신자가 있었대. 이들은 경마장에서 열심히 기도했다고 해.
‘하나님, 오늘 돈 좀 따게 해 주십시오. 아니면 본전이라도 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 돈으로 저의 어려운 주름살을 펴게 하시고, 나머지는 하나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뜻이 가상하여 하나님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대. 결과적으로 여섯 명에게 본전을 돌려주었지만, 네 명은 도와줄 수 없었다고 해. 왜 그런지 아나?”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멀뚱거렸다.
“마사회에서 세금을 떼갔기 때문이야. 다음에는 본전도 여섯 명에서 세 명으로 줄어들고, 결국에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지.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대. ‘에이, 경마는 안 되겠어. 앞으로 경마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마 박사의 유머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창고는 경쾌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