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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작업 회의를 하다 - 2

by 이인철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한경마 팬이 교회에서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일주일에 한 번은 골프를 치게 해 주시고, 주말에는 경마장에 가서 적중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가끔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로맨스를 즐기게 해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이 ‘너, 나랑 자리 바꾸자’라고 하셨대요.”

“요즘 하나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봐요. 글구 경마 적중에는 자신이 없는 것 같네요.”

민수의 말에 마 박사가 질문했다.

“경마가 뭔지 아는가?”

“말기 암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외제차를 몰고 갔다가 스카이콩콩 타고 집에 가는 거예요.”

민수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춘식은 코믹하게 비유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경마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민수가 즉시 대답했다.

“중독 아닐까요?”

“맞아. 경마의 숨 막히는 스릴과 적중의 짜릿함을 경험한 사람은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해. 하루 이틀은 이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깡통 차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중독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경마야. 마약 중독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어. 마약은 상선이 잡히거나 연락이 끊기면 참을 수밖에 없잖아. 근데 경마는 전국에 장외 발매소가 널려 있어.

카지노는 한 번 하려면 정선까지 가야 하고, 보통 며칠을 숙박해야 하니 들통나기 쉬워. 또 포커나 화투는 멤버가 모여야 판이 돌아가니 규칙적으로 할 수 없고, 소문이 금방 퍼지지.

하지만 경마는 혼자서 조용히 할 수 있어서 완전히 망가지기까지 가족이나 친구들도 눈치를 채지 못해. 경마꾼들은 경륜과 경정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수요일부터 경정이, 금요일부터 경륜이 시작되니 마음만 먹으면 이 도박 공화국에서 일주일 내내 도박에 빠질 수 있어. 특히 배당이 높은 경마에 사람들이 몰리기에 패가망신의 급행길이 바로 경마지.

다음은 경마의 매력에 빠져들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 만약 한 경주에 30마리 이상의 말이 출전한다고 가정해 봐. 물론 배당금은 높겠지만, 맞힐 확률이 낮기에 사람들은 큰돈을 걸지 않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을 거야. 아마 로또처럼 운에 맡기고 소액으로 하겠지. 우리는 로또에 수백, 수천만 원을 베팅하지 않기에 도박이라는 인식이 없잖아. 자네들은 경주 간격이 왜 30분인지 아나?”

모두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이미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연구되고 실험된 결과야. 30분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이 말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라는 거지.”

“마 박사님은 정말 경마의 신이시군요.”

춘식의 말에 그는 쑥스러운 듯 손을 저었다. 그때 창고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번 기회에 진짜로 경마를 끊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동생의 결심이 그렇다면 나도 도와주겠네. 꼭 이루길 진심으로 바라.”

고 선생이 창고의 어깨를 두드리며 술을 따라주었다.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마 박사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경마를 하면 가장 큰 손해는 무엇인지 아나?”

“돈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돈은 열심히 일해서 다시 벌 수 있지만, 바로 시간이지. 마치 쓰나미에 휩쓸리듯 청춘이 경마로 인해 사라진다는 거야. 일본 도쿄 경마장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

도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였지. 그런 똑똑한 젊은이가 경마에 빠져 세월을 허비했어.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경마장 한구석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이가 되어, 이제는 젊음도, 기회도, 돈도 없는 초라한 자신을 보며 오열했다는 이야기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잖아. 경마를 하지 않았다면 사회에 기여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 폐인이 되어버렸지.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야.”

마 박사의 눈가에 회한의 눈물이 맺혔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실 저도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얼마 전 지점에서 전에 알던 베터를 만났는데, 10년 전보다 너무 초췌해져 있더군요. 예전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되어 있었어요. 과거에 그분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외면하고요.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파서 몇만 원을 주고 나왔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고 선생이 무겁게 말을 마쳤다. 마 박사는 치우와 춘식, 민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보기엔 자네들은 아직 초보자라서 한마디 하지. 이제부터 경마장과 그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게. 내 충고를 듣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청춘을 잃게 될 거야. 앞날이 창창한 당신들에게 시간보다 더 귀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 말을 무시하면 가족은 해체되고, 좋은 벗들도 모두 떠나게 된다네.”

마 박사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들,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제목은 ‘해 뜨는 집’이지. 이 곡의 가사를 해석하면, '아버지는 마을에서 유명한 도박꾼. 술에 취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삯바느질을 할 수밖에 없네...'

자식은 외지에서 범죄를 저질러 수갑을 차고 고향 뉴올리언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야. 처절한 내용이지만 대히트를 쳤지. 실제로 있었던 실화야. 다만 ‘해 뜨는 집’이라는 동네는 창녀촌이었고, 애니멀스가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라고 알려져 있어. 당시 미국에도 도박꾼들이 많았기에 이런 노래가 나왔던 것 같아. 이 곡이 전하듯이 도박에 빠지면 가정을 돌보지 않게 되고, 자식까지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하게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때 민수가 침묵을 깨려고 의도적으로 제안했다.

“우리의 첫 회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함께 건배하죠?”

춘식이 잔을 높이 들며 먼저 소리쳤다.

“이런 만남은 흔치 않아!”

그들은 따라하며 잔을 비웠다. 두 번째 잔이 채워지자, 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자리는 흔치 않아!”

마지막으로 치우가 외쳤다.

“맛작업의 성공과 모두의 꿈을 위해 건배!”

이렇게 첫 회의는 치우의 구호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들과 헤어진 치우는 집 근처 편의점 의자에 앉아 젊은 연인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오락실 밖에 있는 펀치기 앞에서 주먹 자랑을 하려고 몸을 풀었다. 여자는 그곳에 동전을 넣었다. 남자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주먹을 뻗었다.

‘삐리리 삐리리.’

기계음이 울리며 점수가 나타났다. 여자는 그 점수를 보고 박수를 쳤고, 남자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인은 팔짱을 끼고 그 자리를 떠났다. 치우는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혜원과의 추억에 잠겼다.

‘그녀가 즐겨 하던 두더지 잡기. 그 작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때렸는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남이섬의 하늘 숲길. 내 허리를 감싸고 뛰어내렸던 번지점프… 그녀에게서는 항상 미라클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녀에게 나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치우는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지막이 독백을 했다.

“당신을 잠시라도 잊을 수 없어 내 품에 안았습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행복을 느꼈습니다. 만나고 돌아서도 그리운 사람. 나는 당신에게 장미꽃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안개꽃이 되어버렸다.”

그는 일어나 펀치기로 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듯 주먹을 날렸다.

‘삐리리 삐리리…’

소리가 이어지며 다시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한동안 치우는 그렇게 펀치기와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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