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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떼기장을 세팅하다

by 이인철

고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치우 씨, 나와 창고가 그 조교사를 조사했어요. 짐작대로 포커판 꽁지에게 무려 2억 원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시달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치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지나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꽁지를 만나 조교사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그 채권을 양도받았다. 이후 춘식과 민수를 대동하고 조교사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다.

“빚을 당장 갚거나 신체 포기 각서에 서명해!”

“제발 시간을 좀 더 주세요.”

춘식의 엄포에 조교사는 겁에 질렸다. 이전처럼 문신과 회칼을 보여주며 조폭처럼 행동하자 그는 벌벌 떨었다. 이때 치우가 끼어들었다.

“빚을 탕감해 줄 테니 한 달에 약 150경주 중 다섯 경주의 복식 소스를 알려줘. 마사회나 다른 마방에서 의심받지 않을 중저배당이면 좋겠어. 이 정도면 당신의 빚과 상계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까? 지금 당신이 선택할 상황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목숨과 바꿀 기회를 주는 거야. 내 말 한마디면 당신은 저 사람에게 생매장당할 수 있어.”

“이봐! 조선 경마는 마방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거 다 알아! 빨리 결정해!”

춘식이 회칼을 만지작거리며 위협했다. 조교사는 잠시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는 손해가 아닌 거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즉시 빚을 갚을 방법도 없었고, 중저배당 소스는 의혹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발각되더라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조교사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한 달에 다섯 경주 중저배당이면 소스를 줄 수 있습니다.”

“단, 당신의 말은 무조건 2착 안에 들어와야 해. 그리고 다른 마방의 말은 참고만 할 테니 함께 알려줘. 소스는 일주일 간격으로 전날 저녁에 메시지로 보내.”

치우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5번밖에 없는 소스를 1~2주에 몰아서 받으면 금문성과 지나가 베팅 자금을 끌어모을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개소스를 주면 가족과 야산에 묻어버릴 거야!”

춘식이 책상에 회칼을 탕 꽂으며 소리쳤다. 그 순간 조교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치우는 그를 안심시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약속만 지키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조교사와의 거래 내용이 마 박사와 고 선생에게 전해졌다.

“댓길 경주에서 축을 맞추는 건 자신 있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게다가 다른 마방의 정보까지 더하면 적중률은 100%라고 확신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있게 장담했다.

치우는 적중마 선택 회의에 일부러 창고를 부르지 않았다. 그의 마력은 마 박사와 고 선생에 비해 조금 떨어져서였다. 말을 선정하는 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창고가 끼면 세 명이 되므로 견해가 다를 경우 일치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차라리 두 명이면 조율이 쉽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치우는 여러 개의 비상구가 있어 비교적 도망치기 쉬운 건물을 찾아다녔다. 그런 빌딩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00여 평의 사무실을 무보증금에 세 달 임대료를 선불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얻었다. 한 달만 사용할 예정이라 돈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음벽을 설치하고 대형 모니터, 환전 창구 등 장외 발매소와 똑같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갔다.

사무실 한쪽에서는 창고가 직원 서너 명에게 캠코더와 엑스플릿의 작동법을 설명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과천 경마장에 잠입하여 보안요원 몰래 경주 영상을 실시간으로 마떼기장으로 전송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마사회를 제외하고 경주 실황을 중계하는 것은 불법이다. 여기서 직원이란 고 선생과 창고의 지인들로, 경마꾼들이었다. 그 숫자는 무려 100명이 넘었다.

치우는 엑스플릿을 본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기계 장치를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무선 캠코더로 촬영하더라도 마떼기장 모니터로 전송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마사회는 자체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각 지점으로 송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때 떠오른 대안은 인터넷의 사설경마 사이트였다. 이들은 해외 서버를 통해 경주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법 사이트에 연락해 공유하자고 요청할 수는 없었다.

"너 미친놈이냐?"

이런 반응이 돌아올 것이 뻔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맛작업 회의를 소집했다. 모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민수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 직원들에게 이 문제를 논의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곳에서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죠.”

모든 직원이 마떼기장에 모였다. 비록 그들은 경마로 인해 폐인이 되었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각자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엑스플릿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를 거액에 매입했다. 이런 일이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로써 실시간 경마 중계가 가능해졌고, 완벽하게 마떼기장을 세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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