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철 Sep 01. 2024

원수들을 경마로 - 2

<정의의 베팅1>에서 이어집니다

도 실장오늘 룸살롱에서 화끈하게 쏠게.”     

“어떡하죠? 저녁에 소스 준 선배와 약속이 있어서요. 인사치레라도 해야 다음번에 또…”       

치우는 '다음번에 또'라는 말에 강조를 두었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세두는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치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술을 얻어먹으면 이 자식이 다음에 손을 벌릴 때 거절하기 힘들어질 거야. 그러면 이놈의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그날 이후로 세두는 술집과 도박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치우의 소스를 철석같이 믿고서.       


“민 여사님, 투자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치우는 통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벌써 민 여사에게서 6억이 들어왔다. 조교사의 빚을 갚는 데 2억이 나가고, 마 박사와 고 선생, 창고에게 계약금으로 10%를 지급했다. 또 지나의 이자, 임차료, 직원들 수당, 경비 등으로 지출되었다. 앞으로 연놈들에게 경마 배당금을 주려면 아직도 10억 정도의 작업비가 더 필요해.'       

“민 여사님, 오늘 제가 분위기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어디로 갈 건데?”       

“저만 믿으세요.”       

그는 드라이브 코스인 송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시원한 캔맥주를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 지나가 홀짝홀짝 마시며 신이 나서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차는 한적한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근처에 경치가 아주 멋진 곳이 있어요. 거기서 맥주 한잔 하시죠?”       

“정말 좋은 생각이야.”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치우는 트렁크를 열어 휴대용 돗자리를 꺼냈다.       

“저기예요.”       

얕은 언덕 위에 있는 큰 고목 아래로 아담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사실 그는 이 동네에 친구가 있어 일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밀회 장소로 선택했다.       

“어때요?”       

“아! 분위기 죽이네.” 

치우는 풀밭에 돗자리를 펼쳤다. 두 사람은 캔맥주로 건배를 나누었다. 그녀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풀 내음에 취한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민 여사님께 노래 한 곡 들려드릴까요?”     

“무슨 노래를?”     

“다이내믹한 노래가 좋으세요, 아니면 발라드가 좋으세요?”     

“나는 발라드를 좋아해. 근데 노래를 불러주려고?”     

“아니요.”     

그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곡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나탈리’였다.     

“역시 자기는 센티멘탈해.”     

지나는 야외의 해방감과 울려 퍼지는 노래에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은밀한 나무숲 속에서 둘만이 있다는 감정에 서서히 흥분이 고조되었다.     

그때 치우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바닥에 눕히며 얼굴을 포갰다. 두 사람의 숨소리는 점점 가빠졌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는 감미로운 훌리오의 노래에 묻혀갔다. 지나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그의 입술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치우의 혀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쇄골에서 가슴으로 내려갔다. 마치 달콤한 사탕을 빨아먹듯이.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 지나인가!     

“당신 너무 멋져! 사랑해!”     

치우는 혹시라도 자신에게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그녀를 대했다. 그래야만 남은 작업비를 정확히 빌리고 맛데기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혜원에게 이해해주길 바라며, 미안하다고 절실히 외쳤다. 보육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그들이 떠난 장소에서 차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호텔 앞에 멈췄다. 열린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치우의 볼을 때렸다. 밖은 자욱한 안개가 풍경을 삼켜 답답함이 밀려왔다. 지나가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어느새 사락사락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먹구름에 쫓기듯이 오는 느낌이었다. 그 상황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는 빗방울에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당신이 그리워라. 아, 죽는 순간에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리라. 내 마음속에 사랑의 불꽃을 태우고 지는 해에 실어 보낸 내 사랑아! 나는 곧 당신에게 돌아갈 거야.’     

세찬 비가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가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치우는 금문성을 찾아갔다.      

“요즘 푹 쉬더니 얼굴이 좋아졌네. 근데 웬일로 저녁을 사겠다고?”      

“휴가를 주신 것에 감사해서요.”      

짠돌이인 금문성이 이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치우는 두 사람을 고급 한정식집으로 데려갔다. 식사 중, 치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금문성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9경주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왔어? 온 거야?” 

경마 소스라고 직감한 세두가 흥분하여 호들갑을 떨었다. 이 전화는 시간에 맞춰 민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금문성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무슨 소식이야? 빨리 말해!”      

금문성이 세두를 다그쳤다. 세두는 맛데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어디서 나온 소스야? 내가 청진기를 대보면 진짜인지 구라인지 딱 진단이 나와.”      

금문성이 가볍게 입질했다.      

“친한 선배가 조교사인데… 거기서 받았어요.”      

“그럼 20% 정도는 믿을 수 있다는 거네.”      

치우의 밑밥에 금문성은 시큰둥하게 나왔다.      

“20%라니요?”      

세두가 급히 물었다. 

“소스의 신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기수가 훈련하고 기승할 때의 신뢰도는 50%이고, 관리사가 조교했을 때는 30%야. 그리고 가장 개소스가 마주에서 나오는 것으로 10%라고 봐. 개미들에게 소스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소스 경마를 시작하면 베팅액이 커지고 또 다른 소스에 의지하게 돼. 진정한 소스가 존재한다면 극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나누지, 우리에게까지 오겠어? 결론적으로 소스에 빠지면 더 많이 죽는다는 거야. 경마 세계에는 이런 격언이 있어. 말과 기수, 소스를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  소스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금문성이 미끼를 물지 않자, 치우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금문성은 지난주 경마장에서의 참패를 떠올렸다.      

‘어쩌면 이렇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완벽하게 편성을 짰는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첫 경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여러 경마지을 검토하고 여유롭게 마권을 구매했다.     

쾅! 첫 경주부터 터졌다. 조합이 가능한 마번이었지만 배당을 그 정도까지 잡지 못했다. 연속으로 대포를 맞으니 식욕도 없다. 오전 장에서 사람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옆에 있는 적중의 대가인 할아버지도 랜덤으로 터지는 배당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환호하는 사람을 찾기보기가 힘들다. 오늘따라 바닥에 떨어진 미적중 마권이 유난히 많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내가 경마를 추리하는 건지, 아니면 끌려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도무지 구멍 수를 좁힐 수가 없다. 경마를 한 지 20여 년 만에 이렇게 흔들린 적은 처음인 듯하다. 마사회에 정말 머리 좋은 놈이 입사한 것 같다. 결국 100만 원이 날아가고서야 일어났다. 만약 치우의 소스가 정확하다면 이번에 경마에게 복수할 기회가 아닐까? 못 이기는 척 한 번 해볼까?’     

그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도 실장 소스는 진짜 믿을 만해요. 제가 계속 죽다가 그 소스 한 번에 2천만 원을 벌었어요. 사장님, 이번에 한 방 노려보시죠?”       

“한 번에 2천만 원이라니!”       

금문성은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럼 어디 가서 검증해볼까? 맛데기장이 어디야?”       

“...”       

“치우야, 나도 한 번 가면 안 될까?”       

“소문이 나면 선배가 곤란해 질 수 있어서…”       

“그러지 말고 좀 데려가 줘. 응? 응?”       

‘드디어 물었어! 이제 나는 낚싯대를 움켜잡은 조사로서 당기기만 하면 돼.’       

금문성의 간절한 애걸에 치우는 마지못해 승낙하는 척했다.               


이전 01화 연재소설 <정의의 베팅> 관련하여 공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