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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2. 2024

원수들을 경마로 - 3

<정의의 베팅1>에서 이어집니다

다음 날세 사람은 맛데기장 근처에서 만났다. 실내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소스 경주는 일요일 12경주로, 마 박사와 고 선생은 조교 상태 등을 분석한 결과, 강력한 축이 정해졌다. 이 말은 여러 경마지에서 1순위로 평가받고 있다. 조교사의 말은 경마지에서 5위로 랭크되었다.     

금문성도 이 축을 인정했지만, 2착 예상마는 2~5위 말들이 비슷비슷해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금문성은 관전만 해왔고, 그의 대단한 인내심에 치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우는 두 사람에게 단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마감 3분 전 방송이 흘러나왔다. 반신반의하던 금문성이 구매표에 1천만 원을 마킹했다. 평소 베팅금에 비해 상당한 금액이었다. 세두는 역시 참지 못하고 몇 경주 연속으로 미적중하여 50여만 원도 남지 않았다. 그는 금문성이 알지 못하게 치우에게 500만 원을 빌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치우는 세두에게 200만 원을 주고 300만 원을 마킹했다. 너무 많은 금액을 베팅하면 금문성에게 도박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였다.   

“치우야, 왜 그것만 베팅해?”      

“아무리 소스라고 해도 혹시 모르잖아요.”      

“그건 맞아.”      

금문성은 살짝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소스 마번 복식 배당은 4.2배로 마감되었다. 2착 예상마가 여러 마리라 배당이 그리 높지 않았다. 

총성이 울리자 조교사 마방의 말이 치고 나왔다. 그 뒤로 강축이 바짝 붙었다. 두 마리는 종반까지 그런 형세를 유지하다가 결승점도 동시에 통과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베팅한 말이 먼저 들어왔다며 아우성이었다.

아나운서의 중계도 1착이 불분명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곧이어 모니터에서 결승선을 지나는 슬로우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강축이 겨우 코 차이로 1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본전을 제하고도 3천200만 원을 딴 금문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금문성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2착 말을 정확히 맞춘 치우의 소스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본전을 제하고도 3천200만 원을 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반면 세두는 적중의 기쁨보다 적은 배당금에 실망한 표정이었다. 

“치우 소스는 불법이 아니면 노벨상감이야. 도 실장, 저녁이나 같이 할까?”      

호칭이 자연스럽게 치우에서 도 실장으로 바뀌었다.      


세 사람은 일식집으로 향했다.      

“소스는 언제 또 나오는데?”      

“지난번에 번 돈으로 선배에게 사례도 하고 술도 대접했으니 소스를 받을 수 있겠지만, 몇 번이나 가겠어요? 꼬리가 길면 사고가 나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기회가 올 때 한몫 챙겨야 해.”      

금문성이 맞장구를 치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맞아. 소스는 오래가지 않아. 저놈에게 떼를 써서라도 소스를 받아내야 해. 이번에 지나의 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찬스야.’      

“다음에 소스가 오면 내게도 알려줄 수 있지?”      

“…”      

“왜? 싫어?”      

“그게 아니라… 소문이 퍼지면 선배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날 못 믿어? 내 별명이 묵비권이잖아.”      

“나는 벙어리야.”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치우가 확답을 하지 않자 그들은 안절부절했다.

“야! 조 실장, 뭐 하고 있어? 빨리 룸살롱 예약해!”      

금문성이 그를 일으키고 세두는 힘껏 등을 밀었다. 치우는 마치 포로가 된 듯 술집으로 끌려갔다.      

비위를 맞추느라 바쁜 이들에게 치우가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소스가 오면 알려드릴게요.”      

두 사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세두가 화장실에 갔다. 그 틈에 그는 금문성에게 속삭였다.      

“금 사장님, 민 여사의 자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도 실장, 고마워. 그렇게 신경 써줘서.”      

세두가 돌아오자 그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과 헤어지며 치우가 중얼거렸다.      

“입질만 하던 월척이 확실히 미끼를 물었어. 이미 뜰채는 준비되었으니 건지기만 하면 돼.” 


과천 경마장 관람대 아래,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멀리서 화려한 액세서리와 호피 코트를 입은 지나가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치우가 일부러 그녀를 불러낸 것이었다.     

“자기, 경마하러 왔어?”      

“아니, 애들 만나러 바람 쐬러 온 거예요.”      

“처음 경마장에 와봤는데, 너무 커서 놀랐어.”      

지나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있다가 우리 경마 공원에 놀러 가요.”      

치우의 말에 그녀는 신이 났다. 두 사람은 어느새 가까워져 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남녀 사이의 경계는 한 번 넘기가 어렵지만, 그 선을 넘으면 자연스레 편안함이 찾아온다.     

민수는 연신 형수님이라 부르며 아양을 떨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또 그 눈치를 적절히 활용할 줄도 안다.    

“제가 본 여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춘식이 허접한 멘트를 날리는데 희한하게도 그게 먹힌다. 두 사람은 그녀를 띄우기에 바빴다.     

지나는 공공연히 애인으로 인정받자 기분이 한껏 들떴다.     


치우와 그녀는 경마공원으로 향했다. 여러 조형물 앞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요?”      

“뭔데?”      

“어느 날 아내가 TV를 보던 남편의 머리를 국자로 때렸대요.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자, 아내가 ‘이 쪽지에 적힌 메리가 누구야?’라고 따졌대요. 남편이 ‘그건 말 이름이야. 난 항상 메리에게 걸어서 돈을 따거든’이라고 하자, 아내는 그가 경마꾼인 걸 알고 사과를 했대요. 일주일 후, 저녁을 먹던 남편의 뒤통수를 아내가 프라이팬으로 가격했대요. 거의 목이 부러질 뻔한 남편이 또 왜 그러냐고 묻자, 그때 곁에 있던 딸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전에 말했던 그 말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빠 퇴근하셨냐고요.”      

지나는 뒤로 넘어갈 정도로 깔깔댔다.   


소스경주가 열리기 전에 두 사람은 경마장으로 돌아왔다. 

“이 경주는 민수 선배가 알려 준 소스경주에요. 지난번에 그 소스로 꽤 벌었거든요.”       

“우리도 이 경주에 베팅할 거예요. 무조건 제가 하라는 번호만 찍으면 돼요.”       

춘식이는 바람을 잡고 민수는 큰소리를 쳤다.        

“자기야, 그럼 10만 원만 걸까?”       

“아니요. 이 경주가 아니면 오늘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나도 많이 베팅할 거예요.”       

“얼마나?”       

“100만 원이요.”       

“그렇게 많이?”       

“저만 믿으세요. 만약 미적중이면 제 돈이라도 드릴게요.”       

“알겠어.”       

지나는 두 사람 앞에서 인색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치우의 체면도 생각해 같은 금액을 베팅하기로 했다. 춘식은 자동발매기에서 10만 원을 마킹한 구매권 20장을 사왔다.       

조교사의 소스라도 경마는 수많은 변수로 인해 100% 적중할 수는 없다. 이전에 맞춘 것이 행운일 수도 있다. 만약 틀리면 따질 것인가? 고소할 것인가? 모두가 함께 콩밥을 먹게 될 텐데….       

치우는 초조해서 마킹한 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나님, 이 경주를 꼭 맞춰 주세요. 만일 미적중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됩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곧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발주대로 집중된 가운데, 마지막으로 문영세 기수의 새 강자가 발주기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일요 9경주가 시작됩니다. 총성과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고 말들이 1,800m의 최장 거리를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자리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선두를 차지한 말은 신철형 기수가 타고 있는 당대불패입니다. 당대불패는 안쪽 펜스를 이용해 앞서 나가고 있으며, 1코너를 지나면서도 압도적인 선행력으로 경주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뒤를 박종태 기수의 빅스피드가 따르고, 세 번째는 김성철 기수의 골드윈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발주기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새강자는 앞말들과 약 20마신 이상 차이로 후미권에 있습니다."     

치우의 복식 마번은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당대불패와 꼴찌인 새강자였다. 당대불패는 다른 마방의 말로 조교사가 추천한 것이고, 새강자는 조교사 마방의 소속 말이다. 치우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만일 이렇게 경주가 끝난다면 지나를 맛데기로 끌어들일 수 없다.     

남은 두 번의 소스는 다음 작전에 사용해야 한다. 선두인 당대불패와 꼴찌인 새강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지나의 표정은 기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변화무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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