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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3. 2024

원수들을 경마로 - 4

<정의의 베팅1>에서 이어집니다

신철형 기수의 당대불패가 선두를 유지하며 4코너를 돌고 직선주로에 진입했습니다. 2위 그룹과는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당대불패가 1착을 확정할 것 같습니다. 뒤따르는 말들 사이에서는 2위와 3위가 바뀌며 골드윈 뒤에 빅스피드가 붙었습니다. 다른 말들은 직선주로에 들어서기 직전 뭉쳐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 남은 거리는 약 200m입니다.”     

“새강자, 빨리 올라와야 해! 힘내!”      

치우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한편으로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후미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외곽에서 새강자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맨 뒤에 있는 문영세 기수의 새강자가 드디어 스퍼트를 내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숨을 고르며 타이밍을 노린 듯합니다. 다른 말들은 4코너를 돌아 직선주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새강자가 엄청난 속도로 중위권 말들을 제치기 시작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강렬해졌다.     

“새강자, 조금만 더…!”     

치우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는 점차 커져갔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는 100m입니다. 새강자가 중위권을 넘어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3위인 빅스피드를 제치고 2위인 골드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새강자의 불꽃 같은 추입력이 돋보입니다.”     

“새강자, 따라잡아! 제발 잡아야 해.”  

치우의 열렬한 응원은 거의 절규에 가까왔다.   

“남은 거리 10m입니다. 2착을 놓고 골드윈과 새강자의 2파전입니다. 드디어 골인합니다!”     

“잡은 거야? 못 잡은 거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과는 육안으로 간신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차이로 새강자가 2착을 차지했다. 

치우는 역전 드라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흥건히 젖은 속옷을 털어냈다. 지나는 감격하여 그의 품으로 폴짝 안겼다.    

'복식 배당 4.5배 적중!' 

겨우 2~3분 만에 350만 원을 딴 그녀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야, 이럴 줄 알았으면 1억을 갔을 텐데. 억울해 죽겠어.”      

지나는 아쉽다는 듯 치우에게 투정을 부렸다.    

“자, 이제 다들 갑시다.”      

“벌써? 더 안 해?”      

“소스가 없는 경주는 사망선고에요.”      

치우가 일어나자 그녀는 더 하고 싶다며 매달렸다. 그의 설득에 지나는 쫑알거리며 마지못해 따라 나왔다.     


그들은 근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치우 씨, 어떻게 꼴찌였던 말이 마지막에 2등으로 들어오는지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건 다 사전에 짜여진 각본이에요. 그래서 소스가 필요한 거죠.”      

“맞아요. 아니면 그런 극적인 장면이 나올 수가 없어요.”      

춘식의 입발림에 그녀는 맞장구를 쳤다.   

“자기야, 언제 또 소스가 나오는데? 그때는 왕창 베팅해야겠어.”      

“큰돈을 벌려면 여기서는 베팅액에 제한이 있어서 힘들어요. 맛데기로 해야 해요.”      

“맛데기가 뭐예요?”      

민수가 맛데기의 강연을 펼치며 그녀를 경마의 세계로 유인했다. 곁에서 춘식의 흥미진진한 추임새가 더해졌다. 지나는 점점 빠져들며 이미 일확천금을 번 듯 들떴다. 치우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괜히 아는 척하면 자신도 경마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였다.     

“치우 씨, 그럼 나도 거기에 갈게. 꼭 데려가 줄 거지? 약속해.”      

아직도 상상 속에서 깨지 못한 그녀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치우는 망설이다가 승낙의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조교사와 약속한 소스는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소스가 많으면 적들에게 믿음을 주기에는 좋지만, 그만큼 나갈 배당금과 경비가 커진다. 이 두 개의 소스로 승부를 봐야 한다. 복수의 차디찬 칼날을 뽑을 시간은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맛데기장에는 금문성과 세두가 있었다. 잠시 후, 춘식이 지나와 함께 들어왔다. 두 사람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맛데기장에서 만난 것이 서로에게 불편한 상황이었다.     

“민 여사도 경마를 했어?”      

금문성이 비꼬는 말투로 던지자, 지나가 톡 쏘아붙였다. 

“혹시 내 돈으로 하는 거 아니야?”      

“헐!”      

금문성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세두는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를 슬쩍 피했다. 

춘식은 지나를 두 사람과 떨어진 자리로 안내했다. 그녀는 맛데기장의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10여 명의 중년 여자를 발견하자 곧바로 적응했다.     

지나는 초조하게 시계를 자주 보았다. 모두가 치우에게 소스를 받는 처지이라 금문성과 세두도 그를 기다렸다.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갈 수가 없어요. 소스 경주와 마번은 메시지로 보낼게요.”     

같은 내용의 문자가 세 사람에게 도착했다. 두 사람이 경주를 관전하는 동안, 세두는 경주마다 베팅하느라 발걸음이 바빴다. 드디어 이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지나가 1억을 마킹하자, 춘식은 가방에서 5만 원권 20다발을 꺼내 창구로 갔다. 이 모습을 본 금문성은 1억을 적었던 구매표를 찢고 새 용지에 2억을 마킹했다. 세두는 몇십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치우가 있어야 돈을 빌릴 텐데, 나타나지 않으니 출입문만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치우가 알려준 마번의 복식 배당은 3.3배로 마감되었고, 예상대로 두 말이 1, 2착을 했다.     

‘야호!’      

금문성은 두 팔을 치켜들고 방방 뛰었다. 그러나 지나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기쁨을 숨기고 있었다.  

“적중해도 내색하지 마세요.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어요.”      

치우의 말을 그녀는 무조건 따랐다. 세두는 고작 몇 푼의 배당금에 실망하며 바닥을 쳤다.     

“금 사장님, 용달차를 부를까요? 추레라를 부를까요?” 

그는 금문성에게 뽀찌를 받으려 아첨을 떨었다. 그 순간, 서너 명이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모든 이의 부러운 시선 속에서 그들은 창구에서 거액을 교환해 갔고, 대략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보였다.  

금문성과 지나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적게 베팅한 것을 아쉬워했다. 돈을 챙긴 금문성이 지나에게 다가갔다.  

“민 여사, 베팅은 나에게 한 수 배워야겠네. 하하하….”     

금문성이 맛데기장을 나가자, 그제야 춘식이 지나의 배당금을 가져왔다. 만약 그가 있을 때 배당금을 찾았다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는 같은 경주에서 모두 복식으로 적중했기에, 경마 매니아인 금문성이 함께 치우에게 받은 소스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문성은 자신과 세두에게만 소스를 준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그는 지나가 이번 경주에 적중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치우의 지시에 따라 티를 내지 않아서였다. 마지막 경주가 끝날 때까지 치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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