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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8. 2024

완전범죄의 서곡 - 1

12월 6일 (목)


현우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8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전철을 타고 오다가 일부러 두 정거장 전에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이는 출퇴근 모습이 전철역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때 동인과 동수가 컴퓨터와 모니터를 들고 들어왔다. 썰렁했던 사무실이 비품들로 채워지면서 활기가 돌았다. 마지막으로 벽시계와 액자를 걸자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동인아, 사무실 괜찮지? 이거 얻느라 정말 힘들었어.”

동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형들, 고생했어요. 이제 사무실도 완비됐으니 회의를 시작하죠. 저는 손님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해요. 현수 형은 말솜씨와 인상이 좋으니 전화와 대출 상담을 맡아주세요. 동수 형은 서류 관리와 외근을 담당하고.”

“동인아, 여직원도 채용해야 하지 않겠어?”

“그 부분에 대해 고민 중이야.”

“여직원이 있어야 커피도 타고 청소도 하잖아.”

“현수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여직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말하거나 행동하는 데 제약이 생길 것 같아. 또 일이 노출되면 위험할 수도 있고.”

그의 의견에 불만을 품은 동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현우는 이 작업에 제3자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창가에서 골몰하던 동인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형들, 우리끼리 하죠.”

두 사람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 형, 우선 전화부터 설치해야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요. 전화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가방끈이 긴 형이 대출 광고 문구를 작성해 주세요.”

동인이 지역 정보지를 그에게 건넸다. 정보지의 금융 면에는 100개 이상의 대출 광고가 실려 있었다.

“형, 우리가 광고를 내는 이유는 이체 통장과 작업 손님 확보를 위해서예요. 빨리 구하려면 광고 문구가 중요하죠. 손님들이 이 많은 광고에 다 전화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는 펼쳐 놓은 정보지의 대출 광고 하나를 가리켰다.

“이 광고가 괜찮네요. 이것을 참고하고 ‘신용불량자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세요.”

“신용불량자도 대출이 되나?”

“형, 우리는 진짜 대출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체 통장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지. 그리고 이체할 은행에 연체가 있으면 돈이 빠져나가니까, 먼저 손님에게 물어보고 그 은행의 통장 발급은 제외해야 해요. 휴대폰 요금 연체는 상관없어요.”

동인은 답답한 듯 머리를 흔들었다.

출입문 가까이 현우가 앉고, 맞은편에 동수, 뒤쪽에는 동인이 자리했다. 동인의 자리는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어 일어나지 않는 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형, 저기 있는 가방 좀 줘.”

가방 안에는 10개가 넘는 휴대폰이 들어 있었다.

“현수 형,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앞으로 작업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휴대폰과 CCTV예요. 한 곳과 통화했던 폰은 다른 곳에서 사용하면 안 돼요. 반드시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거죠. 이 폰들은 형이 관리해요.”

휴대폰 뒷면에는 번호, 구입한 업체 이름, 대포폰과 선불폰 구별 등이 작게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어제 검색했던 업체도 있어 반가웠다.

“동인아, 왜 여러 곳에서 휴대폰을 구입했어?”

“일부러 그렇게 한 거예요. 한 곳에서 다 사면 판매업자를 통해 우리를 추적할 수 있잖아요. 덕분에 힘들었지만요.”

현우는 그의 철저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거기 전화국이죠? 전화 신청을 하려고요. 4대요. 신청인 통장 계좌번호는 ****-***-****입니다. 급해서 그러니 내일까지 가능할까요? 두 대는 끝자리가 연결되는 번호로 부탁드릴게요.”

동인은 통화를 마치고 두 사람에게 윙크했다.

“동수 형, 문구점 가서 이 주민증 사본을 전화국에 팩스 보내고 와.”

“이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전에 작업할 때 손님의 인적사항인데 나중에 쓰려고 보관했던 거예요.”

현우는 그의 예지력에 감탄했다.

전화 신청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신청인 명의의 자동이체 통장 계좌번호와 주민증 사본만 있으면 여러 대를 설치할 수 있었다. 만약 본인이 모른다면 몇 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말도 동수가 덧붙였다. 현우는 어제 검색할 때 본 ‘대포 유선전화도 판다’는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면 전화 요금은 어떻게 되지?’

해외 통화를 하거나 게임 머니를 구매하면 요금이 폭탄처럼 나올 수 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 요금 연체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현우는 주민증 사본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광고 제목의 글씨를 진한 고딕체로 바꾸고 칸을 넓히니 다른 광고들에 비해 눈에 확 띄었다.

“역시 현수 형은 창의적인 일에, 동수 형은 단순한 일에 잘 어울려.”

“난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 단순한 게 장수에 좋은 거야. 아마 우리 중에서 내가 제일 오래 살걸.”

동인의 놀림에 동수가 광대뼈를 씰룩거리며 맞장구쳤다.

“동인아, 정보지 회사에서 이 계좌로 광고비를 보내면 월요일부터 나갈 수 있대.”

“그래서 은행에 가려고요? CCTV에 찍히는 거 몰라요? 작업이 끝나면 광고를 추적할 거고, 뻔히 이체한 사람도 의심할 텐데. 형 몽타주가 전국에 깔릴 일 있어요? 사무실에 와서 받아가라고 해요.”

동인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 계산하지 못했던 그는 할 말이 없어 입맛만 다시었다. 동수는 주민증 사본과 광고 문안을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무료해진 현우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형, 인터넷 하려고요?”

“응, 인터넷 바둑이나 한 판 두려고.”

언제 왔는지 동인이 그의 손에서 마우스를 빼앗았다.

“그럴 줄 알고 왔어요. 형 아이디는 누구 것으로 되어 있어요?”

“누구 거라니? 내 거지.”

“불속으로 다이빙하려고요? 나중에 이 사무실 인터넷으로 접속한 IP를 추적하면 바로 형의 정체가 드러나잖아요. 여기 중에서 새로 아이디를 만들어요.”

동인이 용지를 내밀었다. 용지에는 여러 사람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전 작업에서 수집한 자료로 보였다.

‘그동안 수많은 범죄자들이 피시방에서 검거된 이유가 아이피 주소 때문이었구나. 역시 저놈은 타고난 꾼이야.’

현우는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면서 자신의 무지함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동수가 들어왔다.

“동인아, 전화국과 정보지 회사에 팩스를 보냈고, 사무실 간판은 월요일까지 만들어 주기로 했어.”

동수는 근처에 간판 가게가 없어 추운 날씨에 두 정거장이나 걸어야 했다고 투덜거렸다.

“사무실 이름이 뭐가 중요해? 저번처럼 한빛기획으로 하면 되지. 골치 아프게.”

“아니야. 그때와는 스케일이 다르잖아. 신뢰를 주고 세련된 금융 사무실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

동수와 동인은 상호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두 사람의 언쟁에 현우는 끼어들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여러 이름이 오갔지만, 동인의 주장대로 ‘다한컨설팅’으로 결정되었다.

“형, 그 간판 가게에서 명함도 만들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알았어. 현수 형, 제가 디자인한 명함 좀 봐요. 마음에 안 들면 말해 주세요.”

명함 하나에는 실장 강수현이, 다른 하나에는 부장 장성식이 적혀 있었다.

“어때요? 괜찮죠? 이제부터 현수 형은 강 실장님으로, 동수 형은 장 부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특히 손님이 있을 때는 서로의 직함으로 불러야 해요. 그래야 품위가 나고 저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니까요. 알겠습니까? 강 실장님, 장 부장님.”

동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흉내를 냈다.

“근데 강수현은 뭐야? 내 이름이 아니잖아?”

혹시 현수라는 철자를 잘못 썼을까 싶어 그가 물었다.

“앞으로 작업하다 보면 명함을 줄 일이 많을 텐데, 진짜 네 이름인 현수를 쓰면 큰일 나지.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현수야, 이제 난 장성식 부장이니까 잊지 않도록 해.”

동수는 잘 입력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쳤다.

'이름은 고사하고 성까지 바꾸지 않은 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자식,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장성식'이라는 이름이 어디선가 본 듯했다. 바로 동수의 위조 주민증에 적힌 이름이었다. 그는 현우에서 현수로, 다시 수현으로 변하는 자신의 팔자에 허탈감을 느꼈다.

“현수 형, 작업하다 보면 갑자기 상대방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업자끼리도 그럴 수 있고, 손님도 중요한 서류를 맡겨야 하니까요. 그럴 때는 지갑을 두고 왔다고 하면서 대처하면 돼요. 아예 오늘부터 집에 두고 다니는 건 어때요?”

“그렇게 할게.”

현우는 실장이라는 직함이 왠지 어색했다. 실장이란 기업의 임원이나 부서 책임자 등 어느 정도의 레벨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상대방이 비웃을 것 같았다.

“동인아, 나는 실장이라는 직함이 좀 부담스럽네. 대리 정도면 어떨까?”

“대리란 대리 운전 경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너는 없으니까 무조건 실장으로 해!”

동수가 농담을 던졌다.

“현수 형은 참. 전에 형도 이 계통에 잠깐 있었으니 알겠지만, 여기서는 만만한 게 부장, 실장이라는 감투잖아요. 그러니 신경 쓸 거 없어요.”

돌이켜보니 미래금융에서 선배도 두 살 위인데 부장이었고, 다른 사채 사무실의 젊은 직원들도 실장이나 부장으로 자신을 소개했었다.

“명함을 만들어야 하니까 먼저 퇴근할게요. 내일부터는 넥타이 매고 정장 차림으로 출근해요. 이제는 이미지 관리도 중요하니까요.”

가방에 노트북을 넣은 동인이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나갔다.

“돈 얼마 있어?”

“거의 그대로야.”

“우리 진하게 한잔 하는 건 어때? 너랑 마셨다고 하면 동인이도 괜찮다고 할 거야. 나보다 너를 더 인정하니까.”

“미안하지만 이건 공금이라 안 돼. 이해해 줘. 대신 저녁 겸 반주나 하자.”

동수는 아쉬운 듯 입술에 침을 발랐다. 어제 동인이 사무실 경리를 맡기며 그에게 얼마의 돈을 주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간판비, 점심값 등으로 지출한 비용을 금전출납부에 꼼꼼히 적었다.

두 사람은 소주 한 병씩을 마신 후 헤어졌다.

‘동인이의 밑그림은 어느 정도까지 그려졌을까?’

후우, 현우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는 한 번에 내뱉었다. 꽉 막혔던 숨이 조금은 트이는 듯했다. 뚜벅뚜벅 걷는 느릿한 발걸음 뒤로 겨울 달이 가만히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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