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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7. 2024

작업의 시작

12월 5일 (수)


현우가 다방에 들어서자 구석에 앉아 있는 동수와 동인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탁자 위의 사각형 화면을 내려다보며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모양들이 반짝였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모양은 빠르게 회전했다. 그들이 바라는 행운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일명 미니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한숨 소리와 함께 쌓여 있던 동전은 바닥났고, 몇 장의 만 원권을 교환한 후에야 게임이 끝났다.

“형, 동수 형과 같이 사무실 좀 알아봐 주세요. 한 달 안에 끝낼 거니까 무보증금으로 기본 집기가 갖춰진 사무실로요.”

드디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설계는 동인이 맡았고, 의견 차이가 생기면 무조건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현우도 그의 리더 역할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작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동인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동수도 그에게 돈을 타쓰는 처지였다.

“저녁에 다시 만나서 회의하기로 하고, 저는 먼저 나가볼게요. 동수 형, 그거 꼭 확인하고.”

그는 동수에게 눈을 깜빡이며 급히 밖으로 나갔다.

“뭘 확인하라는 거야?”

“CCTV.”

“CCTV?”

“감시 카메라가 없는 사무실을 찾으라는 뜻이야. 대부분의 건물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까, 절대 우리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거지.”

지역 정보지에는 빈 사무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동수는 비슷한 조건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 방문한 사무실은 크기도 적당해 마음에 들었지만, 우려했던 대로 관리실 정면에 CCTV가 있어서 퇴짜를 놓았다. 일반적으로 임차인들은 보안을 위해 CCTV 설치를 선호하지만, 그들의 작업에는 치명적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전철역과 가까워야 하고, 은행이 밀집한 곳이어야 해.”

“왜?”

“작업상 대출 손님들이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는데, 교통이 불편하면 전화만 하고 오지 않거든. 또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어야 하니까 은행이 몰려있는 게 좋지.”

“작업상 대출 손님이라니?”

“우리가 잔고업자의 돈을 슈킹한 즉시 다른 사람의 통장으로 여러 번 이체해야 해. 그래야 지급 정지를 피할 수 있어. 이미 이체한 후에는 은행이 통장 명의자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지급 정지를 할 수 없거든. 지난번 작업이 실패한 이유는 이체할 통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동수가 입을 쩍쩍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통장을 확보해야 해. 정보지에 대출 광고를 내는 것도 손님 명의로 통장을 발급받아 이체할 때 사용하려는 거지.”

“손님에게 대출은 해 주는 거야?”

“그건 각본이야. 가짜라는 말이지. 지금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는 현우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저놈도 프로가 다 됐네.’


다음 사무실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철역에서 거리가 멀었다. 세 번째 사무실은 택시를 타고 간 보람이 있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환승역 근처로 출입구마다 다른 은행들이 위치해 있었다. 1번 출구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3층 상가 건물이었다. 무엇보다 CCTV와 관리실이 없었다. 게다가 1층에는 유명 가구점이 있어 그 상호만으로도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건물 옥상에는 집기 등을 보관하는 허름한 창고가 있었고, 현우는 나중에 이 창고가 보조 작업실로 이용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건물주는 연락이 닿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수다스러운 중년 남자였다.

그들이 임차할 201호는 생각보다 넓었고 큰 창이 있어 내부가 밝았다. 책상, 탁자, 소파, 냉장고, 정수기 등도 준비되어 있어 몸만 들어가면 될 정도였다.

“이 집기들은 저번 사람이 새로 장만한 건데 제가 얼마를 주고 구입했어요. 아마도 젊은이들이 복이 있는 것 같네요. 하하하.”

그는 선심을 썼으니 고마움을 알아달라는 듯 너털거렸다.

“근데 무슨 사무실로 사용할 건가요?”

“그러니까….”

동수가 머뭇거리자 현우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이에요.”

“역시 예상한 대로 IT 관련 사업이군요. 처음 봤을 때부터 엘리트 느낌이 확 들었어요.”

주인은 현우에게 미소를 지었다.

“몇 분이 있을 건데요?”

“현재는 저희 둘인데, 상황에 따라 한 사람이 더 올 수도 있어요.”

동인을 염두에 둔 대답이었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 대신 두 달 치 임차료를 선불로 지불하셔야 해요.”

“통화할 때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요?”

“다른 사무실도 다 그렇게 해요. 어차피 몇 개월은 계실 거잖아요?”

“잠시만요.”

동수는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주인은 자수성가로 이 건물을 샀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금 계약하죠.”

아마도 동인에게 전화해 승낙을 받은 것 같았다. 동수가 임차 계약서와 물품 확인서에 서명을 마쳤다.

“주민등록증 좀 주시겠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현우는 가슴이 덜컥했다. 만약 주민증을 주지 않으면 의심을 받거나 계약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준다면 범인임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순간 현우는 현기증이 핑 돌았다.

“여기 있습니다.”

동수는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주민증을 내밀었다.

‘어, 이게 아닌데?’

현우는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주인은 계약서에 적힌 인적 사항과 주민증을 대조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끔 불상사가 생겨서요.”

임대료를 받은 주인은 사무실 열쇠를 주고 나갔다. 그가 복도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현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야, 미쳤어? 네 주민증을 보여주면 어떡해!”

“괜찮아.”

동수는 씩 웃으며 지갑에서 다시 주민증을 꺼냈다.

“위조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 사진만 빼고 전부 가짜야. 네 것과 비교해 봐.”

그는 자기 주민증과 동수의 주민증을 가까이 대고 하나하나 비교했지만 도저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태극 모양, 직인, 홀로그램이 모두 똑같아서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네.”

“글씨체의 굵기가 다르지 않냐?”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내 것이 조금 더 진한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말 구분이 안 돼. 어떻게 만든 거야?”

“인터넷에 이런 업자들이 많아.”

“어떻게 찾아?”

“검색창에 대출, 카드 할인, 사채 같은 단어를 입력하면 관련 카페가 많이 나와. 나도 동인한테 배운 거야. 그 자식은 이 분야의 전문가야.”

동수는 계약서를 주머니에 넣고 동인과 통화했다.

“현수야, 동인이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우리 먼저 퇴근하라고 하네. 둘이 저녁 겸 한잔할까?”

밖은 어느새 겨울의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술 마시자고 조르는 동수를 물리치느라 그는 진땀을 흘렸다. 현우는 비록 반기는 사람 없는 냉골의 자취방이지만,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동수가 알려준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동시에 다가올 위험의 대비책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한 그는 노트북을 켜고 포털사이트로 들어갔다. 검색창에 ‘CCTV’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왜 CCTV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단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중 한 블로그에 올라온 ‘CCTV에 감시당하는 현대인의 하루’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독특한 제목에 클릭했지만, 읽어 내려갈수록 현우의 표정은 굳어졌다.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강남의 직장인 모 씨는 CCTV가 만연한 한국에서 하루에 거의 100번 가까이 감시를 받는다. 거리 곳곳의 CCTV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행동 반경을 줄여도 최소 87번은 찍힌다.

출근할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 천장 구석의 돔형 CCTV에 찍히고, 출입구 상단의 CCTV에도 또 찍힌다. 이 카메라는 4~5미터 범위에서도 얼굴을 식별할 수 있다.

버스를 탈 때는 운전석 모서리에 있는 소형 카메라가 교통카드를 꺼내는 모습을 찍는다. 운전사는 운행이 끝난 후 그곳에 저장된 메모리 카드를 회사에 제출한다.

삼성역에 내린 그는 강남구청이 설치한 가로등형 CCTV에 포착되고,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에스컬레이터 위의 CCTV에도 또 다시 찍힌다. 이어 개찰구 위에 설치된 세 대의 CCTV가 그의 앞, 뒤, 옆모습을 모두 기록한다.

그는 코엑스몰 야외 광장으로 나가기 전과 들어올 때 각각 한 번씩 촬영된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천장에 설치된 네 대의 CCTV에 찍히고, 대로와 골목길의 여러 CCTV가 그를 지켜본다.

최근의 신형 CCTV는 200미터 거리에서 사람과 차량 번호를 식별할 수 있으며, 360도 회전과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보안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CCTV의 수는 약 300만 대로, 이는 국민 15명당 한 대에 해당한다. 매년 40~50만 대의 CCTV가 새로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CCTV가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자신이 범죄 피해자가 되어 CCTV의 혜택을 보았다면, 그것의 설치에 열렬한 지지자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블로그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문장에서 현우도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그는 ‘대출’, ‘카드할인’, ‘사채’를 검색했다. 카페마다 불법 정보가 넘쳐났다. 그 중 ‘모든 신분증과 증명서류를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을 만들어 드립니다. 중국에서 제작하므로 4박 5일이 걸립니다. 수수료는 150만 원입니다. 등본, 인감증명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도 가능합니다. 소요 기간은 2~3일이며, 수수료는 20만 원부터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010-****-****로 연락 바랍니다.’ 그 외에도 세금계산서 자료를 사고판다는 정보가 많았다.

이어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검색하자 관련된 사이트들이 쏟아졌다. 현우가 대포폰을 떠올린 것은 며칠 전 그들을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은 여러 대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우에게 전화할 때와 다른 곳에 통화할 때의 휴대폰이 달랐다. 

이상함을 느낀 그가 동수에게 묻자, “이건 대포폰이야”라고 대답했다.

오늘 사무실을 알아보는 동안 동수가 사용한 전화는 대포폰이었다. 그러고 보니 은행 과장, 명동의 사채업자, 잔고업자와의 통화도 각각 휴대폰이 달랐다. 

판매 사이트마다 자신들의 대포폰과 대포통장이 안전하다며 홍보하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대포폰과 대포통장 자체가 불법인데 어떻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현우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 핫뉴스를 검색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CCTV, 대포폰, 대포통장… 맞아!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끝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돼!’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일은 분명 범죄야. 완전범죄란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완전범죄를 만들어낼 거야. 하지만 그들에게 사고가 생기면 나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잖아. 선한 일에는 우정이 있지만, 악한 일에 무슨 의리가 있겠어? 결국 나를 지키는 건 나 자신이 조심하는 것뿐이야.’

현우는 퇴근하면서 복제한 사무실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잠자리에 든 그의 귀에 동인의 속삭임이 맴돌았다.

“현수 형,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돼요. 어쩌면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비단길을 가기도 하고 가시밭길을 걷기도 해요. 물론 선택은 형의 자유지만, 지름길을 선택하길 바라요.”

오늘도 정리되지 않은 불규칙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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