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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6. 2024

운명의 선택

 

 12월 4일 (화)


눈을 뜬 현우는 머리가 아팠다. 어제 우울한 기분에 취해 자신의 주량을 넘겼던 것이다. 입이 바짝 마르고 갈증이 느껴져 물을 마셨다. 탁상시계의 시침은 낮 1시를 지나고 있었다.

‘우선 배를 채우고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잠자리에서 일어나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찌개도 끓였다. 누나가 준 반찬까지 더하니 식탁이 풍성해졌다. 그는 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행복한 고민이 생겼어. 이걸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누나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 이런 습관이 나타났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혼잣말을 하곤 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스펙트럼을 이루며 벽에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었다. 현우는 그 속에 필름들을 하나씩 재생시켜 나갔다. 

상가에 있는 K은행에서 동수와 낯선 사내를 만났다. 자기앞 수표를 발행한 후 잠실 K은행에서 시디로 교환했다. 그때만 해도 비자금 세탁으로 알았다. 시디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명동에 갔을 때 거래신청서 원본이 없어 교환을 못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동수가 체크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 ‘사고가 났다’고 했을 때도 그저 ‘일이 꼬이네’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자기앞 수표가 사고수표로 지급 정지되었을 때 비로소 이 일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심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동인과 사채업자의 통화를 듣고 나서야 사기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피해자인 잔고업자가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500만 원도 아닌, 무려 5억 원을.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거금을 손해 보고도 말이다.

"저번처럼 현금으로 찾자고 했잖아! 그랬으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거야." 

이 말은 이전 작업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동인의 차만 보더라도 최신형 그랜저다.

“이 차 풀옵션으로 5천만 원이야.”

차 자랑을 하던 동수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룸살롱에서는 비싼 시바스리갈을 시키고 팁을 남발했다. 1년 전 카드깡을 할 때의 서민적 생활은 완전히 사라졌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아니, 우연일 리가 없다. 만약 우연이라면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기적이라는 말인가?”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건 틀림없는 팩트이다. 인생에서 한 번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시간, 돈, 그리고 기회. 바로 그 기회가 지금 내 앞에 왔다. 마지막으로 대박을 잡아야 해!”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구차한 월급쟁이로 살아야 할 거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겠지. 어쩌면 나는 선택받은 행운아일지도 몰라.”

심장이 요동쳤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지만, 내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내 인생에서 달은 한 번도 차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한 번쯤은 차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이 작업으로 내 운명을 바꾸는 거야. 기회는 한 번만 노크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좋아,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괴물이 되는 거야!”

항상 그렇듯, 혼자 나눈 대화의 끝은 서늘하다. 하지만 늘 결정을 내린다. 현우는 흥분한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동인아, 나 현수 형이야. 우리 언제 만날까?”

탁상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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