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증인 심문 - 1

by 이인철

오후에 재판이 시작되었다. 법정에 들어선 도희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검찰 측에서 심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인의 소속은 무엇인가요?”

“속초 소방서 구급대원입니다.”

“증인은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셨죠?”

“네.”

“그때 상황은 어땠나요?”

“한 차량은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다른 차량은 전복되었으며, 안에 있던 두 사람은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당시 피고인에게서 술 냄새가 났지요?”

“네.”

“피고인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혼절한 것 같아서 깨웠더니 의식이 있더군요. 그래서 부축하여 구급차로 이동했는데,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횡설수설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이상입니다.”

“변호인, 심문하시죠.”

“방금 증인은 피고인이 ‘술에 취했는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술 냄새가 났고,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는 뒷목을 어루만지며 말을 더듬었다.

“당시 피고인은 머리에 상처를 입었죠?”

“네, 피를 흘렸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이 머리 부상으로 비틀거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또 증인은 피고인이 횡설수설했다고 하셨죠?”

“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친구들이 차에 있어요. 누가 119를 불러줘요’라고 했습니다.”

“피고인도 심각한 부상 중에 친구를 걱정한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네.”

방청석에서 피고인을 칭찬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증인은 부상자를 꺼낼 때 차의 창문이 열려 있었나요, 닫혀 있었나요?”

“경황이 없어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때 기탁은 구급대원을 포섭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의 증언은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에게 애매하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탁은 구급대원을 매수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약점이 없었고 소방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이 강해 자칫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에 포기했다.

“속초 경찰서 교통조사계의 구천달 경사가 출석하셨습니다. 검찰 측에서 심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인은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이시죠?”

“네, 맞습니다.”

“사고 경위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가해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피해 차량의 측면과 충돌하면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을 병원으로 데려가 혈중알코올농도 검사를 요청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에게서 강한 술 냄새가 났다고 진술하셨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상입니다.”

“변호인, 심문해 주세요.”

지상은 구 경사에게 바짝 다가갔다. 심리적 압박을 주려는 의도였다. 어딘가 찝찝한 냄새가 느껴졌다.

“증인은 사고 현장에서 가해 차량을 조사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때 에어백은 어떻게 되었나요? 터졌나요?”

“터지지 않았습니다.”

“정말요? 상대 차량과 가로수의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에어백이 터지지 않을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에어백은 충돌 시 좌우 30도 이내의 각도에서 속도가 30km/h 이상일 때 작동합니다. 그러나 가해 차량은 측면 충돌 후 한 바퀴 회전하면서 속도가 감속된 상태에서 가로수에 부딪혀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변호인이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가로수가 움푹 파여 있던데요?”

“저희가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그렇습니다.”

“물론 교통사고 처리 전문가시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지상은 미리 원고를 준비한 듯한 그의 답변에 불신을 떨칠 수 없었다.

“재판장님, 변호인은 국민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는 경찰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은 발언에 신중하세요."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그럼, 당시 차량의 창문들은 닫혀 있었나요?”

“확실히 열려 있었습니다.”

“증인은 기억력이 꽤 좋으신 것 같네요. 앞쪽 창문인가요, 뒤쪽 창문인가요?”

“그, 그 부분까지는…”

구 경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끔벅거렸다.

“정말 이상하네요. 창문이 열렸다고 확신하는 증인이 앞뒤 창문을 구별하지 못한다니 이해가 안 되네요. 아마 차 안이 어두워서 착각한 것 같군요.”

“절대 아닙니다.”

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 모습을 본 기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요원 1이 물건 하나는 제대로 골랐네.”

“증인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인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하셨는데, 그 냄새는 몸에서 났나요? 아니면 입에서 났나요?”

“그, 그건…”

허를 찌르는 심문에 석낙이 후다닥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 법정은 피고인의 죄를 가리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변호인은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재판의 초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정당한 심문입니다.”

지상의 고성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 판사는 분위기를 살피고는 말했다.

“검찰의 반론을 기각합니다. 변호인 계속하세요.”

“증인은 피고인과 대화를 나누었나요?”

“아니요.”

“바로 그 점입니다. 탑승자 모두가 술을 마셨기에 차 안의 술 냄새가 피고인의 몸에 배어날 수밖에 없죠. 만약 그 냄새가 정확히 입에서 났다면 모르겠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 피고인이 만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증인은 현장에서 가해 차량을 조사했죠? 그때 블랙박스를 확보했나요?”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해서…”

“교통사고 담당 경찰의 의무는 뭔가요?”

“무슨 말씀인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블랙박스 확보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증인은 직무 유기로 처벌을 받아야겠네요?”

“네? 그렇지만…”

지상의 으름장에 그는 겁먹어 덜덜거렸다.

“이상입니다.”

“검찰 측 반대 심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석낙은 힘없이 대답했다.

구 경사는 자리로 돌아가다 요원 1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며칠 전, 속초의 바닷가에 있는 횟집에서 구 경사와 요원 1이 만났다.

“선배님, 태양로펌에 채용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그런데 자네 관할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지? 가해 차량에 도원그룹 후계자가 탑승하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자네가 담당이라면서?”

“네, 맞아요. 그 사건에 증인으로 법원에 가야 해서 성가셔 죽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요원 1의 말이 길어질수록 구 경사의 얼굴은 환해졌다.

“그거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챙겨주시고 감사합니다. 나중에 저도 태양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암, 당연히 후배님을 이끌어야지.

“오신 김에 신선한 회도 마음껏 드시고 가세요.”

건배 구호가 있을 때마다 서빙하는 종업원의 손길이 분주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7화아군을 확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