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측에서 증인으로 신청한 준영이 증인석에 앉았다.
“변호인, 심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인은 피고인과 어떤 관계입니까?”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술집에서 피고인은 술을 몇 잔 드셨나요?”
“아마 3잔 정도였던 것 같아요.”
“피고인은 술을 잘 못하는데, 증인이 권유한 건가요?”
“아, 아니에요.”
준영은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럼, 누가 강요했나요?”
“도진이가…”
“즉, 백도진 씨가 운전할 피고인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다는 말인가요?”
“네.”
이 심문은 지상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다. 그것은 내일 법정에 나올 백도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으려는 밑맙이었다.
“재판장님, 변호인은 사적인 질문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은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세요.”
심 판사는 지상에게 주의를 주었다.
“검찰 측, 심문해 주시죠.”
“술집에서 나와서 운전은 누가 했나요?”
“상태가요.”
“사고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술을 많이 마셔서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고, 사고 소리가 난 후에는 기억이 없어요.”
“그럼, 증인은 피고인과 백도진 씨가 운전 교대하는 모습을 보았나요?”
“보지 못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변호인, 반대 심문해 주세요.”
“증인은 차 안에서 블랙박스를 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창문의 개폐 상태는 어땠나요?”
“술에 취해 그건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심 판사는 배심원석을 향해 말했다.
“오랜 시간 힘드셨죠. 하지만 본인이 재판장이라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휴정하고 증인 심문을 계속하겠습니다.”
세호는 갯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저 멀리 초라한 전파상이 보였다.
‘저런 가게에서 CCTV를 복구할 수 있을까?’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열된 제품들과 도구들은 마치 골동품점에서나 볼 법한 구식이었다.
“서울에서 의뢰한 CCTV 파일을 가지러 왔습니다.”
"아, 연락을 받았는데 어떡하죠?"
"왜 그런 건가요?"
“방금 손주가 놀다가 물에 빠뜨려서 다시 손보고 있어요. 그동안 이곳을 둘러보세요. 바닷가라 경치가 정말 멋져요. 복원되면 전화할게요.”
“혹시 CCTV 영상을 보셨나요?”
“아니요. 보려고 했는데 손주가 사고를 쳐서요.”
이 노인은 지상의 먼 친척으로 설정된 각본에 따라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세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기탁의 전화였다.
“CCTV를 복구하면 삭제하세요. 그리고 잠적했다가 재판이 끝난 후에 만나요.”
세호는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탁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혼자 바닷가를 거닐면서도 외롭지 않았다.
영채가 증인석에 앉았다.
“변호인, 심문해 주세요.”
“증인은 피고인과 어떤 관계인가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당시 증인은 술을 얼마나 마셨나요?”
“평소보다 과음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증인은 피고인과 백도진 씨가 운전 교대하는 것을 보았나요?”
“보지 못했어요.”
채영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사고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도 준영이와 마찬가지로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사고 당시 기절했는지 아무 기억이 없어요.”
“그러니까 3시간 내내 잤다는 거군요?”
“네.”
“차가 출발하자 술기운 때문에 덥다며 피고인에게 에어컨을 틀어 달라고 했죠? 맞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창문으로 새벽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면 한 번도 깨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수는 없었겠네요. 그렇죠?”
“아마 그럴 거예요.”
영채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석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증인의 답변을 피고인 측에 유리하게 교묘히 유도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심문을 중지시켜 주십시오.”
“인정합니다. 변호인은 심문을 유도성으로 하지 마세요.”
“네.”
심 판사가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지상은 잠시 꼬리를 내렸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증인이 3시간 동안 계속 잠들었다는 것은 모든 창문이 닫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니터에 ‘연료기록표’가 나타났다.
“이 표는 가해 차량이 폐차된 후 연료 기록계를 찾아서 분석한 결과 도출된 수치입니다. 출발지에서 사고 지점까지의 거리는 185km이며, 평균 속도로 주행했을 때 약 20리터의 연료가 소모됩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운전한 차량의 연료 소비량은 28리터로, 1.4배가 높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즉, 에어컨을 켰다는 것입니다.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창문을 열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연료기록표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합니다.”
곧 석낙이 반론을 제기했다.
“사람마다 운전 습관이 다르고 도로 상황에 따라 연료 소비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변호인은 이 표가 마치 증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피고인이 운전한 시간은 오후 11시부터 새벽까지입니다. 이 시간대는 도심에서도 교통 체증이 없습니다. 하물며 고속도로와 지방 국도를 경유하는 차량이 평균 연료 소비량보다 1.4배 더 사용할 수 있을까요?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면 말이죠. 그리고 과학적인 정황 증거는 인간의 기억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변호인의 주장은 창문이 닫혀 있었다는 전제에 기반한 추측입니다. 이에 본 검사가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화면에 판결문이 보였다.
“이번과 유사한 교통사고 사건인 판례 2009 고합 1248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차량 충돌 시 열린 창문으로 블랙박스가 튕겨 나갔습니다. 다행히도 근처에서 회수되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은 판례로 인해 변호인의 주장은 실익이 없습니다.”
“그래요? 재판장님, 폐차장 사장님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증인은 나오세요.”
지상이 심문을 시작했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폐차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가해 차량을 폐차했죠?”
“네.”
“차량이 폐차장에 도착했을 때 창문은 열려 있었나요?”
“아니요, 닫혀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검찰 측 반대 심문을 하세요.”
“폐차장에는 증인을 제외하고 직원이 몇 명인가요?”
“4명입니다.”
“그중 누군가가 창문을 닫지 않았을까요?”
“그건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가해 차량은 사고 후 속초에서 렉카를 이용해 서울의 폐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사나 직원들이 창문을 닫을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장거리 운반 시에는 바람의 압력으로 인해 차량이 흔들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증인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다른 폐차들의 창문과 혼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배심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지상은 머리를 푸르르 털고는 심문을 이어갔다.
“갑자기 차량을 폐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차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주란 백도진 씨를 말하는 건가요?”
“아마 그렇겠죠.”
지상은 배심원석으로 다가갔다.
“여러분, 사고 직전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진범이 아닐까요? 이를 밝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고 충격의 부상으로 운전석에 운전자의 혈흔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피고인 측에서 혈흔을 추출하기 위해 폐차장에 갔을 때 차량이 압축기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사장님, 02-733-**** 이 번호를 기억하시죠?”
“네, 차를 폐차하라고 연락이 온 전화번호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 번호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바로 태양로펌의 전화번호입니다. 태양로펌은 현재 피고인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백도진 씨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 의뢰인에게 불리한 무언가가 있어 급작스럽게 차량을 폐차한 것이 아닐까요? 즉, 결정적인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백도진 씨는 중환자이므로, 의뢰인을 대신해 로펌이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변호인께서는 심증만으로 증거 제시를 자제하세요. 잠시 휴정한 후 증인 심문을 속행하겠습니다.”
석낙의 입장에서는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지상에게는 이제 막 전반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