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발매소 근처에 위치한 식당이라 그런지 손님 대부분이 경마꾼들이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 역시 경마였다. 설렁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가득했다.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내가 정년퇴직한 지 10년이 넘었고, 경마를 한 지는 30년이야. 예전에는 한 푼이라도 벌 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쥐꼬리 같은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어. 경마 날이면 마권을 사서 2~3분 만에 휴지 조각이 되지. 어쩌다 봉사 문고리 잡듯이 몇 푼을 만지면 술값으로 쓰고 남는 건 달랑 사인펜 한 자루뿐이야. 이런데도 경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걸 보면 정말 중병이지? 자네가 치료 방법 좀 알려주게.”
“예끼, 이 사람아. 그걸 알았다면 내가 지금 자네와 이 자리에 있겠나?”
“그건 맞는 말이네.”
두 노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옆 자리에서는 중년 남성이 두 명의 젊은이에게 경마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가까운 자리였기에 그의 목소리가 잘 들려왔다.
“경마에서 이기려면 버려야 할 세 가지가 있어. 첫째, 경마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른 도박과는 달리 경마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 이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하지만, 만약 공부하지 않으면 더 크게, 더 빨리 죽게 된다는 거야.”
“두 번째는 뭐예요?”
부지런히 필기하던 젊은이가 물었다.
“경마는 돈이 많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 경마로 망한 사람들은 100% 이 생각을 해. 만일 돈만 있으면 이기는 것이 경마라면, 누가 사업이나 장사를 하겠어? 수십, 수백억을 가진 부자들은 경마를 하지 않아. 수십억 재산이 금방 수백억이 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겠어? 돈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경마야. 경마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마음을 바꾸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좋지. 특히 카드, 대출, 회사 공금 등으로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해. 더 깊이 빠지면 최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자살 사건의주인공이 될 수 있어.”
어느새 치우는 그의 열강에 빠져들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맛작업에 필요한 인물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셋째, 소스가 있다는 거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확실히 존재해. 매년 몇 개의 마방이 해체되고 조교사나 기수가 국립학교로 가는 현실이니까. 마장에 가면 그럴듯한 소스가 넘쳐나고, 그 말이 들어오면 난리가 나. 하지만 그들의 수명보다 그런 정보가 없는 우리 개미의 생명이 더 길다는 거지. 소스는 존재하지만 믿지 말라는 거야. 100% 죽는 길이고 가짜 정보라고 보면 돼. 본인이 직접 조교사나 기수에게 받는 소스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리고 공짜 소스는 없어.”
남자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치우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렇다면 조교사나 기수에게 소스를 얻는다면 확실하다는 말인가!’
치우는 마치 그 남자가 구세주처럼 보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세 사람은 계산대에서 서로 먼저 돈을 내겠다고 몸을 밀쳤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설렁탕과 소주만 주문했지만, 유일하게 이들의 테이블에는 수육이 있었다.
세 사람의 대화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경마장에서 만난 사이로, 고수인 남자에게 경마 지식을 배우고 있는 듯했다. 그 결과 오늘이 승리의 날인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들은 식당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치우는 남자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붙잡고 싶었고, 애원이라도 해서 이 맛작업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복장과 차량을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 작업에 적합한 사람은 돈이 절실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리더인 치우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치우는 일찍 장외발매소에 도착했다. 1경주 시작 30분 전부터 자리표가 배포되는데, 이 표를 받지 못하면 마지막 경주까지 8~9시간을 서서 지켜봐야 한다. 두세 경주가 지나자 객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에 주저앉는 이들이 늘어났다.
“더 당겨, 이 자식아! 버터 새끼야!”
앞자리에 앉은 복부인 같은 여자가 거친 말투로 계속 욕을 내뱉었다. 매 경주마다 자신이 응원하는 말이 들어오지 않자, 말꼬리를 당겼다느니, 채찍을 사용하지 않았다느니, 외곽으로 돌았다느니 하며 악다구니를 쳐서 치우는 가까이 있기 힘들었다.
5경주에서 그녀가 응원하던 말이 4코너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기수가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낙마하게 되었다. 말은 다리가 부러진 듯 외곽으로 절뚝거리며 나갔다. 잠시 후, 기수가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났다.
“저 새끼, 말굽에 밟혀서 죽어버려라!”
여자는 기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 옆에는 남자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양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만 좀 입 닥쳐라. 주둥이가 시궁창인 아줌마야!’
치우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속으로 그녀의 뒤통수에 그 말을 날렸다. 그리고 여자가 버린 마권을 확인한 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경주마다 욕을 하기에 고액이 미적중되어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베팅한 금액은 1천 원 3구멍으로 3천 원이었다. 여자는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했다. 만약 그녀의 베팅액이 10만 원을 넘었다면, 모니터를 향해 윤봉길 의사처럼 폭탄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치우는 이 여자 곁에 있다가는 자신도 미쳐버릴 것 같아 아쉽지만 자리를 포기하고 일어났다.
그때 뒤편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경마 정보를 교환하며 시끌벅적했다. 치우는 그 중에서 후덕한 인상에 목소리 톤이 높은 털보 사내를 주목했다. 그의 고음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을 보니, 그 무리의 대장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저 사람이야!”
치우는 털보를 따라다니며 그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폈다.
“마감 30초 전입니다. 마권 구매를 서둘러 주십시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어 “곧 마감됩니다. 빨리 마권을 구매하세요!”라고 외치며 분주히 움직이는 아르바이트 청년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창구는 다시 한 번 혼잡해졌다. 한 남자가 볼멘소리를 냈다.
“저 마감 30초 전이라는 소리에 우리가 약에 취한 듯 빠져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저 방송은 마권을 더 팔기 위해 경마꾼의 중독 심리를 이용하는 아주 교묘한 강매 방법입니다.”
그는 알바 청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젊은 친구들은 손님을 호객하는 삐끼와 다를 바가 뭐가 있나요? 아마 교육도 받았겠죠. 정말 안타깝습니다.”
친구처럼 보이는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정말 잘 말했네. 국가에서 시행하는 레저라는 것에 강요가 판을 치고 있어!”
마감 카운트가 시작되자 한 남자가 기입을 잘못했는지 창구 앞에서 주춤거렸다.
“저 인간 뭐야?”
“빨리 찍어, 새끼야!”
길게 늘어선 줄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마권을 사지 못할까 불안한 사람들의 고성이 객장을 가득 메웠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치우가 중얼거렸다.
“레저는 개뿔!”
경주가 시작되자 그 무리는 각자 모니터 앞으로 흩어졌다.
털보는 주변을 살피고는 한 남자에게 슬쩍 다가갔다.
“이번 경주는 그냥 끼워 먹는 경주예요. 넣다 빼는 경주라니까요. 이 말이 승부하니까 저를 믿고 다 몰빵하세요.”
“저 말은 어때요?”
“그 말은 안 돼요. 지가 달려봐야 캥거루죠.”
털보는 그의 경마지에 손으로 가리고 마번을 적었다.
그렇다. 그는 경마 초보자의 냄새를 기막히게 맡고 접근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남자는 털보의 해박한 경마 지식에 매료되어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과는 미적중이었다.
“아, 저 말 봤는데! 한 구멍만 더 늘렸으면 맞출 수 있었는데 아쉽네!”
털보는 탄식하며 이런저런 핑계로 선수를 쳤다.
“이번 경주는 진짜 내가 노리던 경주예요. 배당판을 볼 필요도 없어요. 한 장만 베팅하세요.”
여기서 '한 장'은 10만 원을 의미한다. 천만다행으로 6배 정도의 배당에 적중했다. 그러자 털보는 뽀지를 달라고 생떼를 썼다. 남자는 조금 전 바닥에 버린 자신의 마권을 잊고, 덕분에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얼마를 주었다.
치우는 그가 마음에서 우러났다기보다는, 접착제 같은 시달림에 준 것 같았다. 즉,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이고, 적중되면 공짜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털보는 경주마다 뽀지를 뜯어냈고, 연속으로 미적중이 되면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원망하며 날린 돈을 돌려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마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털보는 경마장에서의 앵벌이였다. 그는 이렇게 강탈한 돈으로 베팅을 하곤 했다.
털보가 담배를 피우려고 흡연실로 들어가자, 치우도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