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는 맛작업에 참여할 사람을 물색하기 위해 장외발매소를 방문했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줄을 서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들은 집에서 어떤 핑계를 대고 나왔을까? 얼굴에는 생기가 넘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될 것이다. 생사의 총! ’
한 번 맞으면 치료가 어렵고, 두 번 맞으면 회생이 불가능하다. 사인펜이라는 총은 끝까지 손에 쥐고 있지만, 총알은 지킬 수 없다. 총알이 많은 사람들은 대우를 받으며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총알에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 세종대왕이 가장 큰 명성을 얻었지만, 이제 신사임당이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대별 전투를 하다가 점차 개별 전투로 전환된다. 어둠이 깔리면 스나이퍼들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사회 곳곳에 이미 자리를 잡은 그들은 타깃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거리를 재고 풍속을 계산하며 정확히 우리의 인중을 겨냥하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이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급한 연락을 받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내일 죽더라도 오늘만큼은 이기겠다는 신념으로 다시 한 번 소총을 장전한다. 스나이퍼들은 서서히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한다. 그들의 수는 알 수 없다.
오직 단 한 발!
‘탕’ 하는 소리에 수만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전투 중인 우리는 동료들을 외면하려 애쓴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겁에 질린 이들은 집으로 도망친다. 1층의 소총수들은 거의 전멸 상태다. 스나이퍼들은 이제 숨어 있지 않고 각 층으로 자리를 옮긴다.
‘탕!’, ‘탕!’
30분 간격으로 저격이 계속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진다. 마지막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총수들은 돈을 환급받기 위해 긴 줄을 선다. 그러나 그들은 스나이퍼들이 자신들을 놓친 것이 아니라, 다음 주에 더 큰 고통으로 영혼을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치우는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를 보러 들어가는 야구팬들처럼 끊임없이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특전사 시절 요인 암살 작전 훈련을 떠올렸다. 그는 입구에서 경마지를 사서 손에 쥐고 중얼거렸다.
“과천 경마장은 사람들이 많아 작업에 필요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힘들겠지. 많은 사람들이 말들이 뛰는 모습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여가를 즐기러 오겠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돈을 따려는 도박꾼들이니 마력이 더 나을 거야.”
즉,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를 찾기에는 과천보다 지점이 더 낫다는 결정이었다.
치우는 입장권을 구매하고 각 층을 오르내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여기서도 본장처럼 각 층마다 설치된 수십 대의 모니터 중계를 보며 환호와 탄식이 이어졌다.
입장권 가격에 따라 경마팬들의 대우는 달랐다. VIP 층에서는 음료와 간식이 제공되며 제한된 인원으로 안락한 좌석에서 여유롭게 베팅할 수 있었다. 반면 일반 층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사먹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무제한 인원으로 북적거렸다.
돈을 잃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입장부터 빈부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에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마사회는 고액을 베팅하는 VIP들을 우대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치우는 일반 층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베팅에 더 신중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곳에서 작업에 필요한 세 명을 선택해야 했다. 그는 뒤에 서서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감 3분 전 방송이 나오자, 배당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람들은 구매표에 마킹을 하고 우르르 창구로 몰려갔다. 유리벽 너머로 여직원들이 돈을 마권(구매권)과 교환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며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마치 고시 공부하듯 경마지를 보며 대부분 모든 경주에 베팅을 한다. 매 경주에 베팅하는 것은 욕심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만큼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경주에 뛰는 말이 평균 12두라고 해도, 하루에 15경주에 출전하는 약 180마리를 모두 분석할 수 있을까?
“벌써 80만 원을 잃었어요. 뭔가 보이는 게 없나요?”
식당 아주머니 차림의 여자가 옆자리 남자에게 물었다. 서로 초면인 것 같았다. 여자의 손등 주름을 보니 힘든 삶을 살아온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더 심각하게 대답했다.
“저는 어제 100만 원을 잃고 오늘도 150만 원이 죽었어요. 지금 저도 앞이 캄캄합니다.”
그들의 의자 아래에는 미적중 마권과 현금 인출기 영수증이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의 행색이 궁색해 보였는데,어떤 돈으로 그렇게 베팅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앞에 앉은 젊은 사내는 몇 경주 만에 50만 원을 잃고 자리를 떠났고, 뒷자리의 부부는 200만 원가량을 잃고 지쳤는지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 관전만 하다가 가끔 일어나 창구로 가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변색된 바바리와 낡은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연륜이 느껴지고 풍채가 좋았다.
남자의 손에는 폴더폰이 들려 있었다. 여기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 드물었다. 아마도 비싼 스마트폰을 구입할 돈으로 베팅하는 것이 더 짭짤한 투자라고 확신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옆 자리가 비자, 치우는 얼른 가서 앉았다. 남자의 손에는 암호 같은 기호가 빽빽이 적힌 수첩이 있었다. 그는 경마지와 수첩을 번갈아 보며 구매표의 특정 숫자에 마킹했다.
남자는 여태껏 참았던 베팅을 이번 경주에 하기로 결심했다. 경마에서는 기다림과 절제가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경마를 할 자격이 없다.
‘이제 가는구나.’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전형적인 3파전 경주로, 3두를 중심으로 배당이 요동치고 있다. 주력으로 팔리는 두 마리에 강베팅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어한다. 구멍수를 늘리면 맞을 확률은 높아지지만, 환수 면에서는 손해를 볼 수 있다. 압축해서 때리고 받히는 마권이 이상적이다.
경주가 시작되었다. 남자가 노린 말이 1착으로 결승전을 통과하고 뒤이어 주력 말이 뒤따랐다.
그는 자신의 추리가 맞아떨어진 것에 약간 흥분한 듯 보였다. 경마에서 쌓인 쓰라린 기억이 많을수록, 예상한 말이 들어오면 쾌감은 배가 된다.
남자는 창구에서 마권을 현금으로 교환하고 돌아왔다. 치우가 슬쩍 보니 20여만 원으로 크게 베팅한 금액은 아니었다.
“적중하셨나 봐요?”
치우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물었다.
“그렇지요.”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치우는 그의 반응에 뻘쭘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치우는 매점에서 비싼 음료를 사와 그에게 건넸다. 남자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경마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이 벌써 지옥행 열차를 타려고 하나? 하지 않는 만큼 따는 거라네.”
그는 훈계하듯이 대꾸했다.
“이번 경주는 안 하세요? 마지막 경주인데요.”
“이 경주는 공부해도 소용없는 경주요.”
음료수 작전이 통했는지, 그의 말투가 처음보다 부드러워졌다.
“그럼 일어나시지요?”
“아니요. 그래도 어떤 말이 어떻게 뛰었는지를 알아야 다음 경주에 그 말을 참고할 수 있어요. 지금 뛰는 말들은 한 달 후에 또 출전하니까 머리에 입력해 두어야 해요.”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
치우는 속으로 외치며 경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르신, 경마에 대한 지식도 배울 겸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요.”
“오늘은 좀 피곤하니 나중에 합시다. 그리고 나를 만나고 싶다면 이 기원으로 오세요.”
남자는 쌩하니 객장을 나갔다.
“하긴 나라도 경마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을 거야.”
치우는 허기가 느껴져서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