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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을 포섭하다 - 1

by 이인철

치우는 한우 고깃집으로 향했다. 그의 옆에는 털보와 야구 모자가 앉았다.

“편하게 마음껏 주문하세요.”

“정말 괜찮아요? 가격이 꽤 나올 것 같은데….”

털보는 가격표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가 다시 재촉하자 털보는 인원 수에 맞춰 시켰다. 치우는 서빙하는 여종업원에게 팁을 주었다. 모두가 잘 먹겠다고 인사치례를 하며 게 눈 감추듯 고기와 술을 폭풍 흡입했다. 추가 주문이 이어지고 빈 술병이 쌓여갔다.

여기저기서 경마 운영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번 기회에 경마를 끊어야겠어.”

“나도 그래.”

“알면서 속을 수는 없잖아.”

술이 들어가자, 그들은 혀가 꼬인 채로 공수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낙마 예정을 아는 사람은 누구까지일까? 기수는?”

“기수는 당일 출전 10분 전에나 알 거야. 그러니까 걔는 하수인이지.”

“조교사는?”

“아마 알고 있을 거야. 최소 몇 시간 전에는 알아야 준비를 하니까.”

“마주는?”

“이 사람들이 진짜 범인일 거야. 가장 크게 베팅하는 인간들이니까.”

“재결 위원은?”

“이들도 그 일을 하니까 알고 있겠지.”

“경마 처장은?”

“운영 총괄 책임자니까 당연히 알 거야.”

“마사회장은?”

“그건 모르지.”

“그럼, 청와대 비서실은?”

“거기까지 올라가겠어?”

“주한 미국대사는?”

“설마 그럴 리가?”

“백악관 주인은?”

“걔까지는 안 가겠지.”

“북한 국방위원장은?”

“거기는 경마를 안 하는 곳인데?”

“그러고 보니 그곳이 세계 도박 공화국 중 유일한 청정 지역이네.”

그들의 대화는 점점 유머로 흐르며, 치우는 웃음을 참기 위해 배에 힘을 주었다.

이때 경청하던 털보가 벌떡 일어나 격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영천에 5천억 원 규모의 초호화 경마장을 세우려는 계획을 알고 계신가요? 현재도 전국에 세 개의 대형 경마장과 수십 개의 장외 발매소에서 매년 수조 원의 세금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영천에 경마장을 세워 사람들을 도박꾼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경마장 설립을 저지하여 젊은 경마팬의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만약 그곳에 경마장이 생기면 5만 명 이상이 경마 중독으로 패가망신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흥분하냐고요? 제 주변에 10년 동안 경마를 하며 10억 원 이상을 잃은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경마로 인해 고통받는 동료 경마꾼들의 삶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권 불매운동을 통해 마사회의 재정적 기반을 흔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마사회라도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천 경마장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면 30여 만 명이 넘는 경마팬들 앞에서 마사회가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털보를 국회로 보내자!”

“정부에 건의하여 마사회장으로 추대하자!”

“마사회를 감독하는 농림부 장관에 임명하자!”

그들은 박수를 치고 탁자를 두드리며 환호했다. 치우는 털보의 날카로운 지적과 깊이 있는 비판에 감탄의 눈길을 보냈다. 그제야 이 무리가 그를 따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털보가 리더임을 확인한 그는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모래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듯한 마음이었고, 맛작업의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털보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치우는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따가 동생과 함께 맥주 한 잔 더 하실래요?”

“저는 괜찮지만, 계속 대접받는 게 미안하네요.”

털보는 말과는 달리 싱글벙글이었다.

식당 앞에서 그들은 서로를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치우는 피식 웃었다.

사실 도박꾼들 사이에는 의리와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돈이 사람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돈이 떨어지면 동료도 물어뜯는 하이에나로 변하기에...


세 사람은 근처의 호프집으로 향했다.

“저는 도치우입니다.”

“저는 고수돌입니다. 여기서는 고 선생이라고 불리죠. 이 친구는 안창수인데, 우리는 그냥 창고라고 불러요.”

“창고요?”

“네, 언제부터인가 저를 창고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도박 업계에서 돈을 보관하는 사람을 창고라고 부르는데, 제 이름에 ‘창’ 자가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요.”

창고는 차분한 인상과 얌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치우는 이 작업에 돈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그의 별명과 역할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마흔여덟이고, 이 친구는 마흔다섯입니다. 경마장에서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었네요.”

치우는 일부러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말을 놓으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국 사회에서 장유유서를 중시하는 관습 때문에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술이 몇 잔 돌자, 자리가 편해졌는지 고 선생은 자신의 과거사를 꺼냈다.

그의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였고, 일하는 중에 철근에 깔린 어머니를 구하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고 했다.

“의족을 착용한 엄마는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셨습니다. 노점에서 구걸하듯이 나물을 파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증오하며 언젠가는 벗어나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고 선생은 비록 빈곤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부잣집 자식들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아마 초등학교 4, 5학년 때의 일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학교 가는 길에 시장 모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신 엄마가 창피해서 얼른 도망쳤던 날이었지요. 점심시간에 엄마가 선생님께 드리려고 나물 한 보따리를 들고 절뚝거리며 교무실로 들어갔어요. 엄마가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자, 부잣집 아이인 석현이가 ‘야! 고수돌. 너희 엄마 병신이었냐?’라고 하며 엄마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거예요. 친구들도 그 모습이 우스운지 따라 하며 깔깔대고 웃었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석현이를 정신없이 때리고 교실을 나와버렸어요. 저녁에 집에 돌아가니, 잘 차려입은 아줌마가 어머니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어요.

‘아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돼! 못 사는 티를 내는 거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귀한 석현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엄마가 병신이니 자식이 제대로 클 리가 있겠어?’

엄마는 계속 미안하다며 쩔쩔매셨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울기만 했지요.

그날 밤, ‘차라리 병신인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아무리 어렸어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도 그 말을 너무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후 고 선생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빨리 커서 돈을 버는 것이 꿈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선배를 따라 경마장에 갔는데, 처음에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았어요. 그게 경마 중독의 시작인지 그때는 전혀 몰랐죠. 그러다 엄마가 가게를 얻으려고 평생 모은 돈을 가지고 도망쳤고, 결국 그 돈도 모두 말밥으로 사라졌지요. 그래서 엄마께 죄송한 마음에 지금까지 집에 못 가고 있어요.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술잔을 비우며 고 선생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창고도 그의 과거 이야기를 처음 듣는 듯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제가 가진 것은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 30만 원짜리 방, 그리고 통장에 몇십만 원밖에 없습니다. 조강지처와는 6년 전에 사별했어요.”

그는 말을 마친 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저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도 경마에 미쳐 있었으니까요."

그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갔다. 그의 눈앞에 걸레질하며 엉덩이를 흔드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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