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내리던 눈이 내 마음속까지 스며들던 그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순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하는 건 참 신비한 일이야. 모든 흔적과 어제의 고단함조차 눈 속에 묻혀 버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손끝으로 내리는 눈송이를 받았다. 찰나에 사라지는 그 차가움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졌어. 언젠가 나도 저 눈송이처럼 누군가의 손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날은 참 고요했어. 소음으로 가득하던 거리가 눈에 덮여 조용해진 것처럼, 내 머릿속도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눈 내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듯했지. 어쩌면 그 고요함이 나를 더욱 나 자신과 마주하게 했을지도 몰라.
“나, 지금 괜찮은 걸까?” 혼잣말이 입술을 떠나지 않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 눈이 내리는 동안 나는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 그냥, 그 순간만큼은 나도 눈처럼 가벼워지고 싶었어.
눈밭을 천천히 걸으며 발자국을 남겼지. 그런데 뒤돌아보니 금세 다른 눈이 내려 발자국마저 덮어버리더라.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어. 내가 남기는 흔적들은 결국 자연스레 지워질 거라고.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내가 그 눈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차를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았어. 눈 내리던 거리와 그날의 고요함이 차 한 모금에 천천히 녹아들더라. 잔잔히 피어오르는 차의 향기처럼, 그날의 추억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은은하게 남아 있을 거야. 눈 내리던 그날은 그렇게, 내 안에서 따뜻한 온기로 기억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