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나는 또다시 낡은 시집을 펼친다. 반쯤 감긴 눈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 내려간다. 일출이 나를 잠들게 하기 전까지 시집 속 문장들은 내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없어 날카로워진 눈빛도, 지나친 기대도 내 어깨 위에 짐처럼 얹혀 있다. "나에게 무슨 문제 있는 건가요?"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결국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벽을 지켜본다. 시집 속 글귀들을 곱씹으며, 그 속에서 나를 찾으려 애쓴다.
일출이 나를 비추고 난 뒤에야 겨우 잠에 든다. 언제쯤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까? 인생이라는 놈은 참 모질고도 묘하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 가진 것 없이 시작했으면서도 끝없이 무언가를 바라게 하고, 결국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린다. 나는 그동안 허송세월을 보내며 살았지만, 인생은 벗겨내고 벗어내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의 앞길을 방해하고, 고독이라는 놈을 남기고는 뒤돌아선다. 어느새 밤잠마저 앗아간 인생이, 나에게 고독과 새벽이라는 고요한 시간을 남겨두고 떠났다.
새벽은 고독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가장 투명한 시간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 속에서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은 마치 어둠 속에 피어오르는 생각의 연기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새벽은 낮처럼 찬란하지 않고, 밤처럼 완벽히 어둡지도 않다. 그 경계 속에서 나는 스스로와 대화한다. 새벽은 어둠과 빛의 사이, 끝과 시작의 틈새에 존재하는 순간이기에, 인간의 불안과 질문들이 가장 진하게 떠오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야속하게도 새벽은 언제나 짧다. 아침에 비해 너무도 짧게 느껴지는 새벽 속에서 홀로 고민에 잠기곤 한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왜 인생은 내게 이 고독한 새벽을 주었을까?
나는 또다시 밤을 새운다. 언젠가 침대에 누워 마음 편히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을까? 불안도, 고독도 없는 밤이 찾아올까? 그런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새벽을 곱씹는다.
그러나 어쩌면 새벽은 고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 고독은 때때로 나를 무너뜨리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재정립한다. 새벽은 아침이 오기 전의 마지막 어둠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가장 순수한 시간이다.
새벽은 언제나 짧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고, 조금씩 자라난다. 아마도 인생이라는 놈이 내게 새벽을 준 이유는, 고독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게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이 짧은 새벽을 붙잡고, 끝나지 않는 질문 속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간다.